올해 양봉업계는 역대 최악의 흉작으로 완전히 망했다. 지난 2004년의 기록을 훌쩍 넘는 말 그대로 망쳤는데, 이전과 다른 것은 흉작 다음해에 풍작이라는 되풀이의 공식 틀이 깨져버렸다는 데에 더 큰 심각성이 있다. 
김용래 한국양봉농협 조합장은 “지난 4월 말 이상 기후에 따른 저온현상으로 아카시아꽃대가 심각한 냉해를 입은 데다, 본격 채밀기인 5월에 들어서도 강한 비바람으로 인해 그나마 개화되던 꽃마저 낙화되는 등 채밀에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흉년’ 일상화 우려


양봉협회가 집계한 지난 10년 간 국내 벌꿀 총 생산량에 따르면 2011년 3만여톤, 2012년 5만1000여톤, 2013년 6400여톤, 2014년 1만7000여톤 이후 조금씩 증가하다 2018년 1만2000여톤으로 감소하고 지난해인 2019년엔 무려 6만5000여톤으로 급상승했다. 
흉년과 풍년으로 되풀이하다가 올해 연도말 추정치는 4700여톤으로 지난해의 10%도 안되는 수준으로 폭락했다. 
올해 벌꿀의 특징으로 보면 양봉산업이 지금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이전에는 아카시아꿀이 안 나와도 잡화, 찔레도 있고 때죽도 있었다. 4월엔 유채꿀, 5월엔 아카시아꿀, 6월 밤꿀, 7~8월 싸리꿀, 9월엔 메밀과 들깨 등으로 계절별로 다양한 밀원이 풍부해 어느 정도 생산량을 맞췄다. 
하지만 올해는 모든 꽃에서 꿀이 분비되지 않는 상태다. 이로 인해 꿀벌들이 굶어죽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또 생산량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품질도 크게 떨어졌다. 비가 많이 온데다 기온도 낮게 유지되면서 수분이 30% 이상 함유된 말 그대로 ‘물꿀’이 대부분이었다. 
벌꿀 유통을 위해 수분함량을 조절하는 농축과정을 거치면 실제 생산량은 이보다 더 감소해질 전망이다. 이같은 현상을 설명하려면 기후위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카시아꿀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꽃대 발육과 개화기 날씨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잦은 태풍과 급격한 저온현상, 수시로 내리는 비 등 기후위기는 매년 밀원수 면적을 감소시킨다. 아카시아의 경우 2012년 5만5040ha에서 2017년 2만6465ha로 반토막이 났고, 여타 꿀 채취가 가능한 나무들이 급변한 기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기후위기로 아카시나무의 개화도 땅끝마을 해남과 서울대공원이 동시에 피는 등 남쪽 지방과 북쪽 지방의 개화기 차이가 예년 15일에서 최근 7~10일로 짧아져, 채밀기간이 45일에서 25일로 크게 줄어들어 꿀벌의 수난은 물론 양봉농가도 울상이다.  
양봉농가들이 끊임없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지속가능한 양봉산업을 위해 밀원가꾸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또 최근 농협 축산경제가 ‘축산업 그린뉴딜’를 내세우며 중점과제 중 하나로 양봉 밀원림 조성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양봉산업은 축산업의 타 축종에 비해 규모가 작아 눈에 띠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공익적 가치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 때문에 그다지 주목받아오지 못했다.  

 

현장 목소리 반영을


하지만 축산업의 공익적 가치를 놓고 볼 때, 양봉산업만큼 큰 산업이 없다. 양봉산업 자체만으로 볼 때 생산액수로는 2018년말 기준 양토‧양록 등까지 포함해야 기껏 7000여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국내 농업관련 연구소에 따르면 농업에 기여하는 가치를 따져보면 20배에 달한다. 
정부가 녹색성장 생명산업 육성을 한다며 ‘양봉산업 육성 종합대책’을 마련한 것이 2010년이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고부가가치 신제품 개발을 지원하고 제도를 개선하며 교육시스템 또한 개선하는 데에 정책역량을 집중해 국내 양봉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2015년까지 양봉산업 규모를 7000억원 수준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럼 왜 지금 양봉산업이 위기에 봉착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꿀벌 살리기 운동, 전 국민이 참여하는 양봉산물 시식회, 허니허니데이 행사, 도시민 1가구 1벌통 갖기 운동 등을 전개하고, 농가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해 육성하겠다는 그 ‘결기(?)’가 결국 말의 성찬으로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계성 없고, 양봉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으로는 결국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뜬구름만 잡으며 시간만 까먹었다는 입증에 다름이 아니다. 창궐하는 악성 질병 예방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도 갖추지 못했다. 
꿀벌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질병과 외래 해충의 확산으로 앓다가 죽거나, 나무들이 고사하면서 먹을거리가 없어 굶어죽고 있는 데도 전문적인 연구 인력조차 제대로 육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육성해야 산업이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면서 어떻게 해야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방향을 모른다는 뜻이다. 육성법은 시행됐지만 그것으로는 육성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디테일하게 접근해야 하는 지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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