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기후위기를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책임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원인제공자가 관여했던 행위의 결과에 대해 그가 더 이상 생존해 있지 않아서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는 그의 저서 <기후전쟁>에서 행위의 결과가 기후변화가 세대를 넘어 연장되고 과학적 중개를 거쳐야만 기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내가 행한 기후에 대한 범죄행위가 바로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나타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책임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악성질병 다발 심각

 

또 하나는 기후 변화가 어느 지역에서는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위기’로 다가오지만, 또 다른 지역에서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번영이라는 ‘기회’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아프리카나 동아시아에서는 심각한 기후재난으로 농경지가 사라지고 기아가 팽배해질테지만,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그동안 한랭지역이던 곳들은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 해당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지만 더 미래로 가면 결과적으로 기후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이 어떤 위치에 처할 것인가를 따지기 전에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농‧축산업의 미래를 농민들이 걱정해야 한다면 정부는 왜 존재해야 할까?
자신의 재산은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한다면 그것은 정부가 아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도 아니다. 각 산업이 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형평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 정부의 존재가치다. 
EU는 꿀 생산에만 매달리고 있는 우리와 달리 양봉산업을 화장품업계‧의약업계‧관광산업과 연계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EU 동물제품관리위원회는 2014~2016년도 양봉프로그램에 연간 3310만 유로를 책정했다. 이는 과거에 비해 증가된 액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15년 세계양봉대회를 개최하고, 급증하는 도시양봉으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양봉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시행되지만 말 그대로 양봉산업이 축산업의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다. 
국제교역량이 급속히 늘어나고 기후위기가 닥치면서 양봉산업은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그 첫 번째가 외래 질병의 문제다. 2016년 10월, 국내 경남 밀양‧창녕 등에서 처음 발견된 작은벌집딱정벌레(SHB)는 양봉농가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이 질병은 1998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처음 발견된 외래 해충이다. 이들 해충은 꿀벌의 먹이인 화분을 먹어치운다. 

 

대책은 너무나 미흡


특이하게도 꿀벌은 이 딱정벌레에 대한 적대감이 적어, 오히려 굶고 있는 딱정벌레에겐 직접 꿀을 먹여줄 정도로 친화적이다. 하지만 그 수가 증가하면 벌집이 파손되고 꿀이 변질된다. 게다가 꿀벌 성충과 애벌레 모두를 해치고, 감염이 심각해 벌집이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여왕벌은 벌집을 포기하고 이탈한다. 결과적으로 양봉농가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질병은 살충제를 사용하면 꿀벌의 피해가 크기 때문에, 먹이트랩으로 포살하거나 토양을 소독해 번데기를 구제하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가축전염병예방법의 관리대상이 아니어서 농가에게 강제소각을 명령할 수도 없다. 때문에 한 번 발생하면 쉽게 확산된다. 
또 2010년 발생한 낭충봉아부패병은 토종벌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2009년 38만3410여통에 달하던 전국 토종벌 벌통수를 98% 궤멸시켰다. 양봉협회에 따르면 2016년 9월 현재 1만 여통에 불과했다.  
따라서 지금 양봉업계는 토종벌은 낭충봉아부패병으로 고사위기까지 내몰리고, 서양벌은 작은벌집딱정벌레 발생으로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역당국은 대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등검은말벌의 증가는 양봉농가를 더욱 힘겹게 한다. 등검은말벌은 말벌과의 곤충이다.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인 아열대성 말벌로, 2003년 중국 상하이를 경유해 부산에 침입한 외래종이다. 
2019년 환경부는 환삼덩굴과 함께 등검은말벌을 대한민국 생태계교란 야생동물로 지정했다. 이 등검은말벌이 한반도가 더워지면서 그 수를 급속하게 늘리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정철 안동대학교 교수팀이 지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 간 진행한 ‘전국 말벌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49%에서 지난해 72%로 크게 증가했다. 그 피해액만 약 1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양봉업계의 질병에 대한 고민은 이것만이 아니다. 매년 서양벌 애벌레가 썩으면서 죽는 부저병과 곰팡이에 감염된 꿀벌 애벌레가 굳으며 폐사하는 백묵병 등 각종 세균‧바이러스성 질병이 창궐하고 있지만 이를 연구하는 기관이나 대책이 너무나 미흡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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