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가 ‘벌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기후위기를 우화로 만들어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게 한다고 하지만 벌의 가치를 따지자면 한 종(種)의 죽음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꿀을 생산하고 의약에서부터 화장품 등 각종 기능적 효과 때문만이 아니다. 출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는 “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이상 살 수 없다”는 벌의 공익적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설명해 준다.
미국의 마샬 레빈 교수는 “미국에서 꿀벌 화분수정이 양봉생산물의 143배에 달하는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일본대학의 미쓰이 이즈미(三井 泉)교수도 “일본에서 추산한 꿀벌 화분수정의 경제 가치는 약 3500억엔 규모로, 이는 직접 생산물 84억엔의 42배 수준”이라고 했다.

 

산업적 가치 무한대


양봉산업에서 꿀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60% 수준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후진국형 산업 구조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치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화분뿐만 아니라 프로폴리스, 밀납 등 체험관광, 의약, 화장업계 등 무궁무진한 산업적 가치가 창출되고 있다. 
‘인간이 벌 없이 4년 이상을 살 수 없다’는 의미는 뭘까? 벌이 무엇이길래? 단순히 달콤한 꿀만 생각하고 있으니 벌이 인류에게 기여하는 공익적 가치에 대해 고민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진의 연구논문을 보면, 꿀벌뿐만 아니라 꽃가루 매개 곤충들이 사라지면 매년 142만명 이상이 사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굶어죽는다는 말이다. 과일의 경우 생산량이 22.9%, 채소의 경우 16.3%, 견과류는 22.3% 정도 생산량이 줄어, 전세계적으로 식량 생산량이 악화될 것이라는 결론이다. 
<자연이 보내는 손익계산서>에서 저자 토니 주니퍼는 “전체 농작물의 3분의 2가 꽃가루받이 곤충을 통해 생산되기 때문에 이들의 멸종은 곧바로 인류의 식량 안보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어떤 경위로 그렇게 되는 걸까? 나비 효과와 같은 일종의 ‘자연의 되먹임’ 때문이다. 중국에서 이미 꽃가루 매개곤충이 많이 사라져 일부에서는 사람들이 일일이 꽃가루받이를 해주고 있다. 
꽃가루 매개자 없이도 사과는 열매를 맺지만 이것이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거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씨앗이나 열매가 아니라 잎, 줄기, 덩이줄기를 먹는 식용식물의 경우에도 꽃가루받이는 씨앗 생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벌이 사라지면 나무 열매나 씨앗을 먹고 사는 새 종류나 동물들은 점점 그 수가 감소하다가 멸종할 것이다. 
그러면 그 새와 동물을 먹고 사는 더 큰 동물들이 먹이사슬의 원칙에 따라 멸종되면서 지구 생태계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생태계 파괴뿐만 아니라 농작물의 수확량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다. 급감하면서 사과, 배, 체리와 메론 등의 과일 값이 고공행진을 하게 될 것이고, 곡식이 태부족으로 모자라게 되면서 기아인구는 더 늘어나고 식량난이 극심해지면 사회는 더 더욱 혼란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인류 4년 이내의 멸종 시나리오’다. 

 

입법했다고 끝 아냐


벌이 그저 꿀을 생산한다는 낙후된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양봉산업법)’이 1년여 준비기간을 마치고 지난달 28일 시행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육성과 지원’이라고 명문화되어 있으니 없는 것보다는 대한민국 양봉산업의 유지‧발전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양봉산업의 중요성과 현 상황에 대한 인식부터가 먼저다. 화분 수정은 그렇다고 쳐도 산업적 가치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세부적인 지원 역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벌꿀에는 박테리아의 감염염증을 억제하는 살균작용이 있어 화상과 피부염 및 각종 상처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함유된 비타민 B6는 피부 건강을 증진시키고 칼륨 성분은 근육기능 조절에 기여한다. 
때문에 꿀, 밀납, 프로폴리스, 화분, 로얄젤리 봉독, 밀원, 수분 등은 산업적 가치가 높아 식품, 영양제, 의약품, 화장품, 발효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한 산물이다. 이 외에도 양봉산업은 교육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도 높아 거의 모든 산업과 접목이 가능해, 휴양산업, 체험관광 등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은 오렌지와 아몬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대대적으로 양봉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이는 꿀벌들의 감소가 농업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양봉산업법을 입법했다’고 해서 정말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 양봉산업을 ‘조금’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봉농가들의 지속적인 호소와 적극적인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무관심에서 한 발짝 들여놓았을 뿐이다. 법이 만들어졌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을 만들어줬으니 됐지 않느냐”는 것은 또 다시 양봉농가만의 몫으로 밀어 넣는 무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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