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성장 유지하려면 원료 안정 공급 최우선

원료 90% 이상 수입 의존
현 기후위기 일상화 되면
공급망 안정성 장담 못해
수입 제도 서둘러 개편을

주요 곡물 공급자 독과점
몇몇 국가·메이저가 좌우
최근 들어 인수합병 활발
자칫하면 ‘곡물식민’ 전락

정부·민간·농협, 협력 환영
협의회를 통합 공동 대응
향후 수급 안정 도움될 것
일관성 있는 정책도 시급

우리나라는 주요 곡물 수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비축 등 위기 대응을 위한 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곡물 수입이 일부 국가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배합사료 산업은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물량 면에서 쌀을 능가하고 거래액이나 고용능력을 고려했을 때 농수산분야에서 제일 먼저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사료산업은 동물약품, 단미사료, 운송 및 저장업, 기계산업 등 관련 산업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배합사료 생산량은 1967년 10만 8000톤에서 1983년 590만톤, 1989년 1000만톤을 돌파했다. 1996년 1500만톤, 2007년 1600만톤을 넘어섰다. 2010년 1700만톤, 2012년 1800만톤, 2015년 1900만톤, 2019년 첫 2000만톤을 기록했다. 생산 물량 정체 기간도 일부 있었지만 가축사육 마릿수 증가에 힘입어 배합사료 생산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배합사료는 축산물 생산비의 60~80%를 차지한다. 사료 품질과 가격이 축산물의 생산성 또는 경제성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이에 따라 사료원료의 안정적 공급과 가격이 축산농가의 수익성을 크게 좌우한다. 사료원료의 안정적인 공급의 중요성은 계속 증가한다. 대한민국 축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료원료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배합사료 수요가 계속 증가할수록 사료원료의 해외 의존도는 심화 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사료원료 수입제도로는 대외여건 급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농림축산식품부, 한국사료협회, 농협사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들이 첫 사료산업 발전 협의회를 개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한국사료협회, 농협사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들이 첫 사료산업 발전 협의회를 개최하고 있다.

 

# 살짝 맛만 본 ‘식량안보’

신종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이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사료곡물 수급 불안 상황을 경험했다. 불안감은 빠르게 안정됐지만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사료원료의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코로나 확산 이후 많은 나라들이 국경을 닫았다. 식품사재기 현상에 따른 곡물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서둘러 수출제한 조치를 내렸다.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자국의 곡물 비축을 위해 일시적으로 수출을 중단했다. 러시아는 쌀, 소맥, 보리 등 곡물 수출을 금지시켰다. 파키스탄, 카자스탄, 세르비아 등도 자국 농산물의 해외 반출을 중단했다.

주요 곡물 수출국인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항구에서 수출입을 담당하던 근로자들이 코로나에 감염됐다. 일시적으로 업무가 마비되면서 곡물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해 1000만톤 이상의 사료곡물을 수입하는 우리나라에게 국경 봉쇄와 항구 업무 마비 등의 사태는 “반드시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코로나와 유사한 사태가 장기간 지속 될 경우 곡물 수입국들은 수급 불안으로, 한순간 ‘식량안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임을 확인했다. 다같이 힘든 상황에서 하소연을 할 때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사료원료 구매 구조

주요 곡물 수급이 몇몇 수출국들과 곡물 메이저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국제 곡물 거래는 완전경쟁이 아니라 공급자 독과점 형태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이들이 곡물 가격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 세계 곡물무역은 소수의 곡물 메이저가 지배한다. 최근 들어 곡물 메이저 간에도 인수·합병 또는 사업제휴를 통해 시장지배를 강화함으로써, 독과점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주요 곡물 메이저는 미국의 카길, 콘티넨탈, ADM,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 스위스 앙드레, 아르헨티나 벙기 등 6개 기업이다. 6개사 모두 비공개 기업이다. 대부분 족벌경영 체제로 지극히 폐쇄적이다. 이 기업에서 국제 곡물 거래량의 70% 이상을 점유한다. 이중 가장 거대한 기업은 카길이다. 

국제 곡물 가격은 기본적으로 선물시장에서 형성되는데 시카고 곡물거래소(CBOT)가 대표적인 선물시장이다. 이곳에서 대형 양곡가공업자, 수출업자, 중·도매상 등 곡물 관련 업자들 간에 3개월 또는 6개월 후의 수급전망을 기초로 선물거래가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사료 곡물 구매에 있어 선물시장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국내에 있는 곡물 메이저들의 지사나 수입 에이전트들로부터 입찰을 통해 구매하고 있다.

현재 국내 사료산업에 소요되는 원료 구매 그룹별 현황을 살펴보면 크게는 농협과 일반사료회사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사료회사의 구매단체는 각 회사의 주 공장이 위치한 항구별로 FBG(대한사료 외 9개사), KBU(고려산업 외 11개사), MFG(카길애그리퓨리나 외 11개사), FLC(서울사료 외 6개사) 등 4개 구매단체로 구성되어 필요한 원료를 공동으로 구매한다.

 

# 사료산업 발전 협의회 

올해 7월 1일 농림축산식품부, 한국사료협회, 농협사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참석한 가운데 사료산업발전협의회가 개최됐다. 사료산업 발전을 위해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민간 사료업계와 농협사료 간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농식품부는 협의회를 매월 개최하고 △사료업계의 현장 애로사항을 파악하며 △규제 완화 △사료 안전성 관리 강화 △국제 사료용 곡물 거래 전문가 양성 등 제도 개선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민간 사료업계와 농협사료 간 사료원료 공동 구매 등 사료원료 안정적 조달을 위한 협력 강화 △코로나 사태 등 예상치 못한 국제 사료곡물 수급불안 등에 대응한 사료곡물 위기 대응 매뉴얼 마련 △사료곡물 공급기반 활용 강화를 위한 협력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또 해외사료 곡물 시장 등에 대한 정보 공유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농경연은 ‘국제사료곡물관측’ 강화를 통해 해외 사료곡물 생산 및 교역 정보를 심층 분석해 사료업계에 제공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aT, KOTRA, 해외 주재 농무관 등을 통해 사료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해외 사료 원료 시장 정보, 수출제한 등 정책 동향, 사료 안전성 관련 정보(SPS) 등을 수집해 제공하기로 했다.

 

#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주요 곡물 수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비축 등 위기 대응을 위한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곡물 수입은 일부 국가에 집중되어 있어 이들 국가에서 생산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품질 및 안전에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국내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반면 일본은 한국과 달리 한국의 농협에 해당하는 전농(zen-noh)과 미쓰비시, 마루베니, 이토츄 등 종합상사들이 30대 70의 비율로 사료용 곡물을 수입해 사료회사에 공급하는 체계를 갖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하림그룹이 일본 이토추가 매물로 내놓은 곡물엘리베이터(미국에 위치)를 매입한 일은 고무적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료원료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유사한 사태가 자주 발생할 경우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식량 무기화’, ‘식량전쟁’, ‘식량대란위기’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줬다. 국제 곡물 시장 환경 변화를 반영해 향후 예상되는 국제 곡물 시장 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한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해외 곡물 도입 정책 진단 및 개선방안에서 “국제 곡물시장 위기 대응을 위해 선도거래, 선물거래 활용 등을 통한 대응 수단을 식별하고, 국가 간 협력관계 구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생산 및 공급기반 확대를 위해 일관되는 지속적인 정책의 추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유용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국제 곡물시장에서 수입하는 사료용 곡물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을 상대로 곡물을 유통시키는 곡물메이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사료용 곡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일은 우리나라 축산업이 지속가능 한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라며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방법으로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양의 곡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또 다른 형태의 자주국방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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