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장 기간의 장마, 8월 기록적인 폭우로 농축산 농가를 포함한 농촌경제의 막대한 피해. 농협의 11일 18시까지의 피해 집계에 따르면 축산농가는 총 1335호, 폐사 및 유실된 가축은 한우 1296마리, 돼지 6590마리, 닭 108만375수였다. 
이는 조금 특별한 재해였을까? 급격한 기후변화로 기상이변의 기간이 짧아지고 조만간 기후재난은 일상화될 것이라는 미래 전망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인류가 저지른 결과


중국의 퍼붓듯 쏟아지는 비로 우리 전체 인구수와 맞먹는 5000만 명이 넘는 수재민이 발생했고, 세계 최장 길이의 산샤댐 붕괴의 우려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우리도 섬진강 둑이 무너지면서 구례군이 물에 잠기는 초유의 사태도 맞았다. 
아시아가 물폭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면 유럽은 역대급 폭염으로 비상사태까지 발동했다. 7월 말, 스페인 북부 해양도시 산세바스티안은 관측 이래 최고치인 42도, 프랑스는 전체 도시의 3분의 1이 폭염으로 경보가 울렸고, 영국도 38도를 넘나드는 불타는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여름에도 서늘한 북극은 38도,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도 30도를 넘는 열기에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의 데스 밸리도 60도에 육박하는 사상 최고치의 온도까지 올랐다. 이와 더불어 산불 빈발로 지금 불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캐나다에서는 5000년 된 빙모(氷帽), 즉 산 정상을 뒤덮고 있는 빙하 2개가 사라졌다고 한다. 국립 빙설 데이터센터에 따르면 주변 빙하도 10년 안에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상변화는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비효과처럼 ‘되먹임’으로 파급된다. 
기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더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워지는 상황이 생태계를 교란시키면서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지역까지 질병문제를 야기시키며, 처음 접하므로 항체가 전혀 없는 지역주민들의 대형 피해를 유발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빌 맥키번은 1989년 ‘자연의 종말’을 선언하면서, 야생과 기후가, 동물의 왕국과 식물의 세계가 인간의 활동에 의해 더 이상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변형됐다면 그 결과물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의문점을 던졌다. 
그리고 몇 년 후 나온 결론이 ‘인류세’다.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는 네덜란드의 화학자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폴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다.
지질시대를 연대로 구분할 때 기(紀)를 더 세분한 단위인 세(世)를 현대에 적용한 것으로 시대 순으로 따지면 신생대 제4기의 홍적세(洪積世)와 지질시대 최후의 시대이자 현세인 충적세(沖積世)에 이은 전혀 새로운 시대를 말한다. 
하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인류세는 환경 파괴의 경각심 속에서 나왔으며, 인류가 저질러놓은 종말보다 훨씬 지저분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가리킨다. 
최근 몇 년 간 주기적으로 막대한 재난 피해를 일으킨 자연재해에 대해서조차 그 지역에서 벗어나 있는 국가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마치 저개발국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여겨왔다. 

 

굶어죽는 벌 충격적


하지만 앞으로 서구권 사회는 대규모 기후재난을 겪는 이야기가 가장 끔찍한 이야깃거리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2050년 거주 불능 지구, 원제 The inhabitable Earth>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인류가 하나의 지질학적 시대를 끝맺을 만큼 자연 세계를 재설계했다는 사실, 바로 그 사실이 인류세에 담긴 핵심적인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끔찍한 기후재해를 겪으면서도 당장 내 발등의 불이 아니어서 남의 일처럼 태평하게 그 재앙을 바로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의 폭우 피해는 사상 초유의 일이고 어쩌다 나타나는 ‘이상기후’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이러한 재앙은 몇십 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할 재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기가 빨라져 일상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잊고 있다. 지금 대가축이나 중소가축의 경우 열기로 사양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미 그 외의 것들의 피해는 한창 진행 중이다. 
양봉산업은 이미 기후변화의 직격탄으로 초토화 일보직전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생산액 중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적다는 이유로 간과되고 있는 현실은, 우려스럽게도 우리가 기후재난을 바라보는 시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얼마전 강원도 철원의 이동양봉 농가에서 벌들이 벌통 주위에서 떼죽음을 당한 모습이 한 TV에서 방송됐다. 충격적인 것은 그 원인이다. 벌들이 굶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아사직전의 벌들이 궁여지책으로 순서를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령의 벌이 먼저 벌통에서 나오고 적정 마릿수를 유지하기 위해 애벌레를 죽이고 있었다. ‘벌이 굶어죽는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황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 충격이 ‘일시적 놀람’으로 끝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끔찍한 일과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데도 말이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