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물약품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수의사 A씨를 만났다. A씨는 동약업계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다 지난해 회사를 퇴사하고, 공무원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는 관련 절차(시험 등)를 거쳐 기초 지자체 수의직 7급 공무원으로 임용됐다.  
그런데 수의직 공무원의 일과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수의직으로써 그에 걸맞은 업무를 주로 수행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수의직 본연의 업무 외에 온갖 잡무에 시달려야 했고, 과도한 업무량은 그를 지치게 했다. 경력직으로 들어온 터라 A씨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도 탐탁지 않았다.        
결국 그의 수의직 공무원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근무 시작 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A씨는 사직서를 내고 동약업계로 돌아왔다. 
대한수의사회의 통계를 살펴보면 올해 2월 기준 수의사 면허자는 2만590명이며, 이중 사망 및 미신고자(4170명)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는 현재 약 1만6000여명의 수의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중 공무원은 2500여명으로 이들은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검역본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동물위생시험소, 지자체 등에서 수의직, 수의연구직 등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초 지자체가 수의직 공무원을 충원하는데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7년 8월 농림축산식품부에 방역정책국이 신설된 뒤 시·군 동물방역과와 동물방역팀 등 전문 방역 시스템이 구축되어 구제역, 고병원성AI, ASF 등 악성가축질병 방역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군에서는 수의직 공무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지방 수의직 공무원 채용의 경우 총 377명 공고에 224명이 합격해 전체 TO의 60%도 채우지 못했다. 
낮은 처우와 방역에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근무환경 등 수의사들이 기초 지자체 수의직 근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군 수의직 공무원의 과도한 업무량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017년 고병원성AI 방역에 힘쓰다 경기도 포천시의 한대성 수의사(가축방역관)가 과로로 순직했다. 올해 3월에는 경기도 파주시 수의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정승재 수의사가 ASF 방역 업무를 수행하다 심근경색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故 정승재 수의사는 지난해 9월18일 파주에서 ASF가 발생한 이후 매일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현장 방역 업무에 전념했다.
열악한 진급 가능성도 수의사들이 외면하는 이유다. 최근 대한수의사회가 전국 기초 지자체의 가축방역 및 동물보호업무와 관련된 행정기구설치 조례를 전수 조사한 결과 가축방역·동물보호업무를 담당하는 과에서 수의직 공무원이 과장에 임용될 수 있도록 조례를 둔 지자체는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 중 약 26%인 59곳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기초 지자체에서 7급으로 임용된 수의직 공무원의 과장(5급) 승진이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수의사가 부족하진 않다. 실제로 ‘수의사 실태와 수급 전망’ 등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의사 수는 이미 초과 상태다.
열악한 처우가 개선된다면 시·군 수의직으로 발길을 옮기는 수의사들도 늘어날 것이다. 가축전염병 대응의 최일선에서 헌신하고 있는 지자체 수의직 공무원들의 처우 개선에 정부와 지자체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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