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1일 의무 시행되는 계란 이력제를 앞두고 현장에서는 “못하겠다”는 소리가 대세다. 
한국계란선별포장유통협회는 지난 1일 “소비자의 알권리 어쩌구 하지만 다 현장을 전혀 모르는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면서 “이대로라면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협회를 중심으로 정작 이력제 적용을 받는 계란유통인들의 이같은 반발은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지난 2018년 11월부터 이력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시범사업을 할 때부터 예견됐던 것이다. 

 

전 축종 확산은 무리


소고기에서부터 시작된 이력제는 축산물의 생산 및 유통과정의 이력정보를 조회해 소비자가 안심하고 축산물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소고기에서 성공하자 돼지에 이어 닭‧오리‧계란 등 전 축종으로 확대했다. 
돼지 부분에 이력제를 시행할 때에도 혼란스러움을 겪었지만, 가금과 계란의 경우는 소‧돼지와 완전히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안전’을 구실로 전축종으로 확산한 것부터가 무리였다. 
특히 계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계란의 거래 단계별 정보를 기록‧관리하고 문제 발생 시 이동경로에 따라 역추적해 신속한 조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계란의 이력 확인이 목적이라면 이미 시행 중인 난각 산란일자와 계란 포장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난각에는 산란일자와 농장고유번호, 사육환경이 표시돼 있고, 포장지에는 선별포장업체의 상호와 주소, 전화번호까지 표기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구매하는 계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판매처의 정보까지 없어도 된다는 것이 유통인들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식약처의 난각 산란일자 표시제와 농식품부의 계란 이력제는 같은 제도라는 것이다. 
여기에 소‧돼지처럼 취급 단위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열배에서 몇 백 배 이상이다. 이 많은 계란을 취급하려면 일손을 대폭 늘린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도대체 제도가 왜 시행되어야 하느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계란 이력제에 대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폄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난각 산란일자 등 기존의 제도를 적용하면 되는데 농식품부가 다시 이력제를 시행한다며 중복된 제도를 들이미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제도를 쉽게 자로 선 긋듯 그어버리는 것은 그로 인해 파생되는 현장의 어려움을 완전히 무시했거나, 현장을 알고 싶지 않거나다. 그런 연유로 현장의 유통인들 목소리가 마치 ‘개 짓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농식품부의 시행에 따라 엄청난 취급 비용 등을 다 부담하고 계란을 유통했다고 치자, 그러면 계란 가격은 기존대로 유지될까? 계란 가격이 최소 2배 이상 높아지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부담하려고 할까?

 

차라리 가만 있으라

 

도대체 농식품부는 무슨 생각으로 계란 이력제를 시행하는 걸까? 도무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앞뒤가 맞질 않는다. 소비자의 가격저항으로 구매를 외면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통상인이 떠안게 된다. 
게다가 가정 내 계란은 냉장고에 보관하게 되는데 대부분 겉 포장지를 제거한다. 그럴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추적이 가능할까? 
한국계란선별포장유통협회에서는 소비자단체에서도 이력번호가 불필요하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계란 이력제의 존손 여부나 상당부분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하긴 정부가 정책을 내놓고 그것을 수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애초에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고약한 근성’이다. 
지난 1월 김낙철 한국계란선별포장유통협회장은 간담회에서 “1월 1일부터 시행된 계란이력제가 7월부터 의무 시행되면 유통인은 모두 범죄자가 될 판”이라고 한 것도 불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농장 식별번호를 확인하고 농장별 산란일자 이력번호를 발급해 표시해야 하고, 아울러 거래내역은 전산으로 신고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하루 생산량 4200만개를 취급하는 현장에서 이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뜬구름 잡기’다. 
이 뿐만이 아니다. 김낙철 회장의 말에 따르면 선별포장작업 시 약 15분마다 한 번 꼴로 이력번호를 교체해야 한다. 여기에 각 거래처별로 일련번호를 달리 표기한다고 가정하면 100여개의 이력번호를 표기해야 하기 때문에 자동화작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난각 산란일자 표시 등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행되고 있는 제도를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중복된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는 농식품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정책이나 만들어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일은 이제 자제해야 한다. 좀더 수월하고 편리하게 길을 터주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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