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장을 보러 집 앞에 있는 전통시장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명절도 아닌 데 사람들로 벅적대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마다 장바구니가 가득 넘칠 정도로 물건을 담아가는 모습이 마치 전쟁이라고 난 듯 했다. 
얼굴엔 하나 가득 하나라도 더 사겠다는 듯 비장감이 넘쳐흐른다. 가게마다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재난 지원금 환영’ 푯말이 붙어 있다. 그제서야 “아 그렇게 말 많던 재난지원금이 지급됐구나”를 실감했다.
얼핏 지금의 현상을 보면 ‘미쳤다’고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마치 내일 세상이 망하기라도 하듯 사재기 열풍이다. 

 

‘흥청망청’이 미덕


얄팍한 상술을 부리는 상인들은 이 참에 슬쩍 가격을 올린다. 눈에 띄게 올리기가 양심에 찔린 사람은 품목을 바꾼다. 정육점 주인은 삼겹살 대신 오겹살을 사라고 하고, “이참에 한우고기 한 번 잡쒀봐요”라고 꼬득인다. 
가끔 가던 양복점은 스마트폰 문자를 보내 신제품이 나왔는데 재난지원금으로 가능하다고 소비를 부추긴다. 
정부는 기부를 권장하지만 사실 기부보다는 물건을 사서 소비하는 것이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훨씬 더 경제에 도움이 될 듯도 싶다. 그동안 코로나 사태도 빌미를 제공했지만 소비가 영 말이 아니었다. 
전통시장에서 깜짝 놀랐던 것도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장을 보러 오는 사람보다 상인이 더 많아 보였고, 눈에 띄는 고객들의 얼굴도 밝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열기가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다. 
하긴 노력해서 벌지 않고 생긴 공돈은 쌓이질 않는다. 공돈은 새는 물처럼 흔적 없이 조용히 사라진다. 지금 재난지원금이 바로 그렇다. 내일이 기약되지 않아 저축을 하려고 해도 3개월 한정으로 그 안에 쓰지 않으면 저축으로 남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 안에 먹고 싶었지만 구매하기 힘들었던 한우고기를 사먹고, 비싼 과일도 구입하고, 외식도 한다. 평소라면 쓰지 않아야 할 ‘낭비’라고 생각했던 알뜰함도 잠시 접어둬야 한다. 또 그래야 경제가 돌아간다니 말이다. 
재난지원금으로 십수조 원이 투입되고 경제 살리기에 몇 배가 넘는 자금이 소요돼 나랏빚이 얼마가 더 늘어날 것인지, 앞으로  이렇게 쓰다가 한 순간에 쓸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그때의 박탈감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는 나중에 일이다. 지금은 그저 흥청망청이 미덕이다. 
덕분에 5월 소비심리지수는 한 달 전보다 무려 6.8포인트나 올라갔다고 한국은행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좋은 일이겠지만, 국내 전체 산업을 놓고 보면 의미는 별로 없어 보인다. 
일부에서는 재난 지원금이 빠르게 지원됨에 따라 반등 효과를 본 것 같다며 6월 이후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 경기부양책이 잇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또 공돈(?)이 생길까?
그런데 코로나에 묻혀 재난을 재난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접경지역 ASF 예방적 살처분 농가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건 칼에 배인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다. “살려 달라”고 7~8개월 동안 당국자에게 호소해도 소귀에 경 읽기다. 
오히려 ‘농가의 방역 부주의 탓’이라고 책임 전가를 하질 않나, ‘이 참에 지역을 오염시키는 양돈농가를 없애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분위기를 띄우질 않나, 해당 산업을 담당하는 공직자의 자세로 볼 수 없는 잔인함만 확인한다. 

 

‘재난의 차별화’ 잔인


살처분 보상금 지급 대상 234농가 중 231농가의 소유 추정액 86%를 지급했으니 금전적 문제에는 책임이 없고, ASF로 폐사하는 멧돼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위중한 상황이니 발생 상황이 안정화되면 그때 전문가와 신중한 논의를 거쳐 재입식 문제를 추진하겠다고 대답뿐이다. 
농장을 경영해 보지 않았다면 현지 농가의 목소리라도 듣던지, 주변의 실직자에게 일을 잃어버린 심정이 어떤지, 실직을 하고 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정도는 참고해야 하는 것이 해당 공직자의 자세다. 
경제 상황이 너무 나빠 비자발적으로 사업을 접으면 농가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도 빚잔치를 할 수밖에 없다. 보상금은 그냥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아니다. 게다가 재입식에 대한 기약이 없으면 미래 계획도 짤 수 없다. 
상황이 이러면 대출해준 기관으로부터 자금회수 압박을 받게 되고, 완전히 접지 않으려면 그동안의 유지비용은 그대로 나갈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러한 농가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농식품부가 나서서 여타 부서에 호소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생활안정자금도 1년 치를 준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6개월 치도 다 받지 못했다”고 현장의 농가들은 분개한다. 사료 업체들의 가압류로 보상금을 만져보지 못한 농가들도 많다.  
농식품부는 농가들이 이야기를 하면 왜 그런지를 따져 보지도 않는다. 피해 농가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피해다니는 동안 예방적 살처분 농가 3곳이 경매에 부쳐졌다. 줄도산의 시작이다. 
코로나의 피해는 국가적 재난이고, ASF 피해는 개인적 재난이어서 같은 재난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정부는 왜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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