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듯 가족을 이해하자
타인을 이해하듯 가족을 이해하자
  • 권민 기자
  • 승인 2020.05.22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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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축산학과를 다니며 4년 동안 가축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사료 급이부터 농장의 경영‧회계까지 배웠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가 일군 농장에서 하고 있는 일이 뭔지 아세요?
분뇨치우는 일부터 망가진 축사 땜질까지…매일 아버지로부터 지청구를 들으면서 막일로 하루를 보냅니다. 뭔가 아니다 싶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고 건의라도 하면 즉시 돌아오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일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아예 무시당합니다.

 

대물림 자괴감 마저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이론만 배워 말만 앞세운다는 것이지요. 어떤 땐 함께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말보다 더 무시될 때가 있습니다. 조금만 농장 경영을 바꾸면 훨씬 나아질 듯 한데 말이죠.
내가 4년 동안 학교에서 전공으로 축산을 배워 아버지 뒤를 이어 농장을 좀 더 키우고 싶은데…그렇다고 내가 일하는 대가를 충분히 받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네 것이 될 텐데 뭐가 불만이냐며 마치 하인 대하 듯 하니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지 자괴감마저 들더라고요.”
부친의 농장을 이어가려고 학교 졸업 후 뛰어들었거나, 20대에서 30대를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다 귀농한 축산 후계농가가 제일 힘들어 하는 일이 바로 부친과의 갈등이다. 
그렇다고 부친의 입장에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1세대는 무일푼에서 농장을 시작했다. 한 푼 두 푼 모으고 그 자금으로 농장을 키워나갔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피땀으로 일군 농장이 가축질병으로 집단 폐사를 당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가축이 모조리 폐사돼 농장을 접고 타지로 나가 공사판 등을 전전하며 돈을 모아 다시 농장을 시작한 1세대도 많다. 지금 2세대와 함께 경영하고 있는 이 농장은 곳곳에 1세대의 눈물과 땀이 배여 있다. 
조금만 잘못 경영을 하면 이전의 그 악몽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항상 마음속에 가득하다. 그런데 아들은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모른다. 능률을 따지기만 한다. 울타리가 망가져 용접을 해야 하는 데 차라리 일꾼에게 맡기고 그 시간에 다른 연구를 하면 더 효율적이란다. 
수십 년을 몸으로 체득하면서 가축을 키우며 가족이 생활하고 학자금을 대고 지금의 농장을 일군 그 노력을, 아들 녀석은 감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질을 한다. 그 동안의 피와 땀을 한꺼번에 무시한다. 괘심한 녀석이다. 
하루 종일 가축의 상태를 살피고, 축사를 청소하고, 하루 일과를 정리해 오는 일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낙후된 것이라고도 한다. 마치 직장에 출근하듯 설렁설렁 하루를 넘기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지시하는 것이 일이다. 
축산 가업을 잇는다고 하기에 4년제 대학에 보내놨더니 농장에서의 성실함보다 입바른 소리나 하고, 어떻하면 좀 더 쉴까만 생각하는데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모두가 대물림의 갈등으로 힘겨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갈등이 해소된 현장을 가서 들어보면 항상 계기가 있었다. 1세대가 아픈데 농장을 접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아들에게 전권을 이양했더니 생각했던 이상으로 농장이 잘 운영됐던 경우도 있다. 

 

비빌 언덕이 되어야


우수농가 탐방을 다니면서 성공한 유형을 보면 갈등을 잘 극복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건 농장의 대물림에서만이 아니다. 어느 곳이건 1세대가 후대에게 대물림을 하는 경우라면 겪는 사례다. 
하지만 가장 큰 성공사례는 1세대가 후대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이다. 되도록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하고, 그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우선이다. 
가족은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타인과는 신뢰를 맺기 위해 신중함이 필수임을 알고 있지만 가족에게는 아예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막말과 상처입힘은 일상이 되기 쉽다. 그리고도 그것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지 모른다. 
위한다는 의미로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조차 않고 던지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어째서 ‘사랑’이 되는지 의식조차 없다. 그저 나중에 내 입장이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무심히 말하지만 그 입장이 될 리가 없다. 
이미 상처받은 마음은 상대방을 거부하기 때문에 이해하려는 단계까지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아내에게나 자식에게 운전을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타인이라면 타인의 감정선을 생각하면서 언행을 조절하지만 가족에게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말소리가 높아지고, 거칠고, 평소 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언어들이 쏟아진다. 그러면 상대방은 평상시 저 사람이 나를 그렇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생긴다.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며 속에서 어기장이 일어난다. 
가족 내의 갈등은 의도하지 않았던 작은 말과 행동에서 생겨난다. 가족은 소유물이 아님을 자꾸 잊기 때문 아닐까? 타인을 이해하듯 가족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화목’한 가정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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