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이 닥치면 우리가 평소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회의 난맥상들이 일시에 드러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당혹감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말로만 들어와서 남의 일인 양 무관심했던 그 지적들이 사실로 입증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나서야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꿈과 희망 잃은 세상


지금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웃과의 격리를 통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아픔의 정도를 깨닫고, 그 때문에 각종 경제적 손실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됐다.
청소를 비롯 청결한 사회를 유지하는 ‘그림자 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우리 곁에 언제나 존재했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가난한 이들의 절망도 함께 목도하고 있다.
16년간 100여 차례 중국을 돌며 동양사를 전공하면서 사마천을 연구해온 김영수 박사는 그의 저서 <난세에 답하다>에서 “난세(亂世)란 국민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세상, 계층 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서로 불화하는세상, 기득권층의 부도덕이 만연한 세상 등 많은 요소들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진짜 난세는 ‘믿음과 꿈과 희망과 이상을 읽은 세상’이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뭔가 바꾸자고 권리 행사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투표를 했다. 우리의 희망이 조금이라도 이뤄졌는지를 돌이켜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선거 때만 되면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표를 구걸한다. 그런 정에 기댄 눈속임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들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국민에 대한 예의조차 없는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족속들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연구해온 김영수 박사는 사마천이 세상에 아부하는 지식인을 가장 증오했다고 말한다. 배운 사람들이 정도를 걷지 않고 배움에 자부심을 갖지 않고 권력자에게 빌붙어 아부하거나 권력을 추구하거나 영예를 탐내는 것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고사성어가 이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을 염치없는 자들 즉 과염선치(寡廉鮮恥)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또 구차한 변명으로 제 몸 지키기에만 급급한 자들이라고 질타했다.
사마천은 지식인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장 전형적인 수법이 글을 교묘하게 꾸며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이고, 가장 흔한 예가 법을 다루는 사람과 글로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전국시대에 오면 이전 170여개국 가운데 7개국만 남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수많은 나라가 망했다. 내분으로 망하고, 군사력이 약해 망하고, 민심을 잃어 망하기도 했다.
사마천은 그 흥망성쇠의 첫 번째 원인을 ‘제도 개혁의 실패’에서 찾는다. 제도 개혁이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기득권을 줄이거나 빼앗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 돈으로 군대를 키우고,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혜택이 소수의 귀족이나 특권층에게 돌아가던 기존의 체제를 바꾸어 ‘골고루 나누어야 하는’ 체제로 줄기를 틀어야 하는 데 이때 필요한 것이 인적 청산이다. 이를 원활하게 수행하면 그 나라는 생존뿐만 아니라 강대국으로 발전했다.

 

인적 청산 우선 과제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과 저항, 때로는 충돌이 일어난다.
개혁의 혁(革)은 동물의 가죽을 완전히 벗겨 펼쳐놓은 모양이다. 그래서 혁자는 기존의 체제를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로 쓰이며 때문에 함부로 쓰는 글자가 아니다.          
그래서 개혁에는 항상 알력과 갈등, 상당한 진통이 뒤따른다. 개혁 세력과 수구 세력의 싸움이 기득권 세력인 보수 언론의 지면을 허구한 날 장식한다.
그러면 국민들은 짜증이 난다. 기득권층은 그것을 계속 부추겨 개혁의 피로를 강조하고 조장하고 과장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김영수 박사는 말한다.
개혁을 회피했거나 장애 요소 때문에 전면적인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중단했거나, 아예 개혁 자체를 거부했던 나라는 예외 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고 결론지었다.
망한 나라들의 국민들 대부분은 계층 간의 갈등이 그렇게 심한데도 불구하고 평상시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걱정과 위기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대다수 언론을 통해 제공받고 있는 정보들이 객관성을 떠나 얼마나 작위적인지 깨닫게 됐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이 와중에서도 대한민국을 비천하고 약소국이고 열악한 국가로 매도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작태들이 확연히 눈에 띄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대한민국이 약소국인가? 그래서 국민들이 자학하고, 비관해야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외신이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나라”라고 하면 일부 언론은 ‘이상한’을 ‘비정상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해석하고, 국민들도 그렇게 이해하길 바란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깨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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