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협회, ‘약속 기금’ 거부
자금 고갈 할 수 없이 포기
“생산자 전체를 농락한 격”
단체장들, 부도덕성 맹비난

축산회관 이전이 끝내 무산됐다.
당초 축산회관 이전을 희망했던 11개 생산자단체장들은 지난 24일 제2축산회관 지하 회의실에서 ‘축산회관 이전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고, 2016년부터 끌어온 축산회관 이전 포기를 선언했다.
이날 대표자들은 지난 2015년 11월 27일 사료업체들을 대표하는 한국사료협회와 축산관련단체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맺은 협약을, 사료업체들이 일방적으로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토로했다.
당초 사료협회는 축산상생기금으로 매년 25억씩 4년 동안 총 100억원을 기부하기로 해, 이중 50억원은 축산회관 건립자금으로, 50억원은 축산환경개선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1회차 분 25억원만 기부하고 이후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왔다.
때문에 축산회관 건립은 5년에 걸친 부지매입 단계에서 3차 중도금을 납부한 후 자금 고갈로 중단하게 됐다.
문정진 전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과 김홍길 현 협의회장은 그동안 사료협회와 업체들과의 면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을 설명하면서, “업체들이 ‘내긴 내겠지만 명분이 없다’면서 미뤄왔다”고 강하게 불만을 터뜨렸다. <관련기사 7면>
최근 축산회관 이전 대표자회의가 “사료업체들의 뜻이 어떤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며 최종적으로 사료협회에 보낸 공문 회신에서, 사료협회는 “사료산업의 대내외적 환경변화에 따른 민간사료기업이 경영악화 등으로 인해 추가적인 기금 납입이 어렵게 되었음을 해량해 주길 바란다”고 거부의 뜻을 분명히 밝힌 것.
이날 대표자 회의에 참석한 단체장들은 “축산농가를 상대로 사료를 팔아 이익을 남겨온 업체들이 다급할 때는 자발적으로 상생기금을 기부하겠다고 했다가, 급한 불이 꺼지고 나니 나몰라라 하는 것은 생산자 전체를 농락하는 짓”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김홍길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은 축산회관 이전 포기를 선언하면서 “생각 같아서는 기부금 전액을 돌려주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렇게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불쾌해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억 중 할당액 전액을 기부한 하림 계열 사료회사들과 일부 업체 그리고 농협사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단체장들은 “대표자 회의에서 최종적 결론을 내렸으니, 앞으로 나눔축산운동본부가 잘 마무리 짓도록 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향후 나눔축산운동본부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점] 축산회관 이전 왜 무산됐나

다수 사료업체 약속 불이행…자금 고갈

 

막대한 과징금 무마하려
일부 생산자단체와 야합
100억 기부 자발적 약속
승소하자 온갖 구실 찾기

 

믿고 추진한 단체들 황당
4차부터 지연손해금낼 판
기부 강제 못해 전전긍긍
“더 이상 구걸 않겠다” 결정

2015년 11월 27일 당시 이양희 사료협회장·이병규 축단협회장·이기수 농협축산경제대표(사진 오른쪽부터)가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축산회관 이전을 희망했던 11개 생산자단체장들은 지난 24일 축산회관 이전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고, ‘축산회관 세종시 이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세종시 이전과 발맞춰 이전하려고 했던 축산단체들이 부지 매입과정에서 왜 당초의 뜻을 꺾고 이전을 포기한 것일까? 이날 회의에서 단체장들은 왜 “결국 사료업체들에게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린 것일까?
발단은 이렇다. 한국사료협회는 2015년 11월 27일  유성에서 축산관련단체협의회와 농협, 축산환경시설기계협회 등과 송년 세미나 형태를 빌려 ‘축산상생발전 협약식’을 갖고, “상생기반 구축을 위해 자발적으로 2016년부터 4년 간 매년 25억원씩 1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통 큰 약속을 했다. 
앞장은 사료협회가 섰지만, 협회가 마련하겠다는 재원은 각 사료회사들이 갹출한 자금이다. 그렇다면 사료회사들은 왜 선 듯 100억원을 모아서 주겠다고 한 것일까?
그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11개 사료업체들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사장부터 직원까지 조직적으로 가담해 16차례에 걸쳐 가격과 적용시기 등을 짬짜미했다고 밝혔다. 한 업체가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도 며칠 뒤 뒤 따라가는 수법을 썼다는 것이다.
담합으로 올린 사료 매출액이 수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그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면 과징금 총액이 수천억 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다급했던 사료업체들은 이를 어떻게 해서든 무마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짬짜미로 축산농가에 해를 끼쳤다’는 공정위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축산관련단체의 도움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100억원의 상생자금은 그러한 절박한 사료업체들과 그에 편승한 일부 축산단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 대가로 한우협회와 농협을 제외한 축산관련단체의 명의로 탄원서를 제출했다.<본지 2015년 6월 5일자 가락골 ‘생산자단체들까지 왜 이러나’>
탄원서는 “1조에 가까운 막대한 과징금이 업체들에게 부과되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 상 사료가격에 전가돼, 결과적으로 축산농가들의 피해로 되돌아온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그 때문에 아무 명분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그저 낯 뜨거운 ‘사료업체 살리기’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 덕분이었는지 공정위가 최종적으로 부과한 과징금은 773억원으로 예상보다 훨씬 적은 액수였다.
그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료협회가 자발적으로 약속한 상생자금의 기부가 연차적으로 마련됐다면 그나마 ‘부끄러운’ 돈으로 시작됐지만 아마 지금쯤 건립이 진행 중이었거나 입주했을 것이다.
과징금의 문제가 유리하게 돌아갈 기미가 보이자 사료회사들은 자발적 의사표시에서 한 발 빼더니 정부와 농협을 끼워 넣으며 이들이 동참할 경우 상생기금을 내놓겠다고 버텼다. 그리고 첫 25억원이 집행됐다.
2017년 5월 18일, 서울고등법원은 담합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 받은 업체들의 행정소송에서 업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정위는 과징금을 취소하고, 업체들의 소송비용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쯤 되자 생각이 달라진 사료업체들은 ‘상생발전기금’이 필요 없게 됐다. 강제성이 있는 계약도 아니고 단지 협약이므로 지킬 의무가 없었던 것이다. <2018년 10월 5일 가락골 ‘여우 같은 업체, 곰 같은 단체’>
일부 생산자단체들이 단체의 존재가치를 팔아 사료업체와의 야합으로 얻은 100억원은 달랑 1회차 25억원으로 끝났다. ‘닭 쫓던 개’ 꼴이 된 것이다. 그나마 농협사료가 기부한 3억원을 포함해 28억원이었다.
사료협회의 자발적 기부를 철석같이 믿었던 축산단체들은 2016년부터 축산회관 이전을 추진했다.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고 부지 매입 계약금을 납부하면서 매년 7억7400만원의 중도금을 지불했다.
3차 중도금을 지불하고 남은 잔액이 달랑 43만7000원이다. 당장 내달 10일이면 4차 중도금을 납부해야 한다. 만일 이 기간을 넘기면 하루당 25만4000원의 지연손해금을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3개월이 지날 경우 지연손해금은 약 2300만원에 이르고, 세종시가 계약서에 의거해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
그동안 단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지만, 문정진 전 축단협회장이나 김홍길 현 회장의 말을 빌리면 마치 ‘구걸’하는 모양새였단다. 왜 자신들이 그래야 하는 지 자괴감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축단협과 사료협회장 간담회, 축단협 대표자 회의 시 사료협회에 기부 모금 요청, 실무자 미팅, 사료협회 후속조치 요구, 사료업체 방문 요청, 사료업체 면담, 순회 방문, 상생기금 관련 회신 등등. 완전히 입장이 바뀌었다.
문정진 전 회장은 “이양희 전 사료협회장은 사료업체들에게 약속 이행을 촉구했지만 업체들은 이사회의 결정조차 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기부를 강요할 수도 없었었단다.
김홍길 회장은 한 술 더 떠 “사료값을 올려 축산농가에게 피눈물 나게 해놓고, 다급하니까 돈으로 해결하려고 덤벼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나몰라라 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경우냐”면서 “축산농가 알기를 뭐같이 알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생각 같아서는 받은 돈을 다시 돌려주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납한 업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고 분을 참는다.
특히 일부 사료업체가 “‘명분’이 없어 지급하지 못하겠다”는 대답과 사료협회의 최종 회신에서 “회사 자금 사정 상 적자 때문에 어렵다”고 한 것과 관련해서는 “무슨 명분이 필요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매년 적자가 난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적자 운운하는 것은 변명과 핑계일 뿐”이라고 단체장들은 꼬집었다.
또 이날 단체장들은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감추지 않았다. 협약식부터 축산회관 건립 이전 진행 동안의 전 과정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나눔축산운동본부의 목적사업을 들먹이며 ‘인가 취소’ 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책임회피가 아니고 뭐냐는 지적이다.   
이날 대표자 회의에서는 축산회관 이전 문제는 24일자로 접겠다고 선언하면서 향후 나눔축산운동본부가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실어줄 것을 의결했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