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20%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내가 느닷없이 묻는다.” … “평소 1차 산업 쪽엔 관심도 없던 사람의 입에서 식량자급률 이야기가 나오자 수저를 놓고 멀뚱히 쳐다봤다.
“우리도 잘못하면 굶어죽는 경우가 생긴다네.” “누가 그래?” “응, 유튜브에서…” 평상시 유튜브를 좋아해서 항상 나에게 지청구를 듣던 그녀가 그날따라 달리 보였다. 그래서 웃으며 한 마디 더 던졌다. “식량자급률이라기 보다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그렇다는 말이지. 오호, 유튜브 나쁘다고 할 게 아니네.”
최근 농축산물을 둘러싼 정부나 일반인들의 인식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사다 먹을 수 있는 ‘널려 있는’ 것으로 뿌리박혀 있다. 대형슈퍼든 시장이든 가서 오늘 요리 메뉴를 따라 돈만 지불하면 모두 구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이것이 현대 식품공급시스템의 장점이다.
돈 있어도 굶어 죽어
심지어 축산업이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아예 수입해다 먹는 것이 사회적 비용이 덜 든다며 수입 축산물을 권장하며 비교경제논리를 펴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그동안 아무리 식량 주권과 식량 안보를 부르짖고 과거 해외의 예를 들어가면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식량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묵살해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중국의 우한지역 봉쇄 때는 물가 상승도 상승이지만 밖에도 자유롭게 나갈 수 없고, 나가서도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도 어려웠다. 또 미국과 유럽에서의 사재기 현상은 물건 값을 천정부지로 올렸다.
그리고도 물건이 없어 돈을 들고도 사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영국의 보건부(NHS) 소속의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고 집에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먹을 것을 사려고 했으나 물건이 동이나 당장 가족의 먹을거리를 살 수 없었다.
그녀가 페이스 북에 사연을 올리면서 “‘미친 사재기’를 당장 그만두라”고 눈물로 호소한 동영상이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그럼에도 사재기는 줄어들 줄 모른다.
우리를 지금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인의 입국금지를 하지 못해서일까?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상황은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연결되어 있음이다. 한 나라만 안전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식량안보의 중요성
축산업계는 악성가축전염병의 발생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아무리 내가 평상시 방역에 관심을 가지고 농장과 가축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사육했다고 해서 AI나 구제역 그리고 ASF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악성가축질병은 국경 방역과 국내 방역이 아무리 잘 되었어도 막을 수 없듯이, 또 나만 방역에 철저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발병하고 난 후 알게 된다. 악성가축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예방적 살처분으로 애꿎은 나의 농장도 초토화됐다.
그와 마찬가지로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는 모든 전염병은 지역적이었거나 확산 속도도 교류 속도에 비례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됐다.
나무위키가 지난 4일 발표한 ‘아시아 식량자급률’에 따르면 2018년 대한민국의 식량 자급률은 47%정도이며, 곡물만 따졌을 경우 23% 수준이다. 쌀을 제외하고 밀가루‧옥수수와 같은 기타 주곡의 자급 비율은 처참하기 그지없어 90% 넘게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에서 밀은 1.2%만 자급될 뿐이며 1년에 소비되는 대부분의 밀가루는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 수입되고 있다.
한국인의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하면서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의 수요가 이제는 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축산물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가 2020년 자급률을 72.1%, 우유 및 유제품은 64%로 목표 설정했다. 하지만 축종별로 보면 소고기 44.8%, 돼지고기 80%, 닭고기 80%, 우유 및 유제품 64%, 계란은 공히 99%다. 이 숫자만 놓고 보면 축산물의 경우 높은 자급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사재기 열풍으로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식품 부족이 더 큰 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의 경우 농업의 GDP 비중은 식량 자급률 329%라고 나무위키는 밝히고 있다.
인구밀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고 남유럽보다 농사짓기 좋지 않은 땅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경우도 식량자급률은 92%, 영국은 70%대 초반이다.
전 세계가 상호 연관성을 가지며 경제가 하나의 블록으로 묶여지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 걱정 없이 값 싸게 먹고 마셨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유럽연합도 다투어 국경을 걸어 잠갔다.
이렇게 세계 각국이 문을 잠그기 시작하면 물류 유통에도 많은 지장이 초래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격이 뛰기 시작하면 투기자본이 개입될 것이고 그에 대한 비용은 모두 수입국들의 부담이다.
이번 코로나19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라면 바로 ‘식량 자급률’이다. 지금 우리가 하대하는 농축산물의 중요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