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班鷄)집

바야흐로 닭을 먹는 철이 돌아왔다. 여름철에 닭을 많이 먹는 이유는 예전에는 돼지나 소를 손쉽게 잡아먹을 수 있는 경제형편이 안되어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손쉬운 것이 닭이 아니었을까 한다. 땀을 많이 흘리고 기력이 쇠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동물성을 섭취해야 하는데 닭이 가장 근접한 거리에 있었던 가축인 것이 하나의 원인도 되었겠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과학적인 원인도 있다. 닭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하여 담백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순치의 과정에서도 가장 빨리 우리 인간과 더불어 살수 있었던 순한 짐승이었음도 사실같다.
그래서 그런지 닭에 연유된 잡담도 꽤 발달된 것 같다.
우선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 대접한다. 장모님이 자기 딸의 행복을 위하여 사위의 기를 돋구어 준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퇴락한 양반의 아낙네가 생계에 위협을 받을 때 호구지책으로 택하는 직업이 반계(班鷄) 술집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집의 운영상 특징은 술집주인인 주모, 아니면 요즈음 말로 마담이란 분이 손님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손님이 들어가면서 “이리 오너라” 등의 인기척을 하면 안에 있는 아낙네는 “어디쯤에 돗자리를 펴고 앉으시라 일러라” 라고 말한다. 그러면 손님은 지정한 장소에 돗자리를 펴고 앉으면 “술상이 다 준비되었다고 일러라” 하면 출상 출구(出口)에 가서 상을 스스로 가져다가 먹는다. 다 먹고 난 다음에는 “얼마냐고 여쭈어라” 하면 “얼마라고 여쭈어라” 하는 대답이 나온다. 그러면 그 상위에 소정의 술값을 올려놓고 아까의 출구가 입구가 되어 빈술상을 밀어 넣으면 거래 끝이 된다.
물론 이 간접화법의 대화를 옮겨주는 동자도 없는 주모와 객과 간의 직접대화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남녀유별의 내외(內外)의 예를 갖추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술집을 왜 반계(班鷄) 집이라고 했는가.
닭중에 반계란 놈이 있다. 이 닭의 모양새는 우선 수탉이고 풍채가 좋으며 무리 중 우두머리이다. 그리고 이 닭은 설혹 배가 고파도 두엄자리 등을 뒤지지 않으며 집안의 나뭇가지 등에 올라앉아 자기의 권속들을 관찰하는 등 고고함을 지키다가 자기 식구 중 누군가가 공격을 받으면 비호같이 내려와서 보호하는, 주로 기사도를 발휘하는 임무를 수행할 따름인 닭의 이름이 반계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 반계집인 것이다. 반(班)은 양반(兩班)에서 온 말이고. 그런데 요즈음은 영계(軟鷄) 집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영계라는 말이 남자들 사이에서는 심심찮게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영계의 원말은 연계이다.
그러니까 연계가 발음의 편의대로 영계로 변천한 것이어서 한자로는 軟鷄라고 쓰고 읽기는 영계로 읽는다. 알다시피 영계란 병아리보다는 크고 성계(成鷄)보다는 어린 닭을 의미하니 여자에 비유되어 영계란 말이 쓰여질 때는 대개 어느 정도의 연령층을 이야기함인가 하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반계집과 영계집의 뉘앙스는 서로 대칭도 안될 정도로 그 품위 면에서 양반스러움과 소란스러움이 쉽게 구분이 간다. 물론 시류따라 변한 일면이겠지만 말이다.
또 우스게 소리로 혈란(血卵)을 보고 양계장 주인은 어떤 놈이 월경중이냐 라고 힐난한다든지 노른자위가 두 개 들어있는 속칭 쌍란을 보면 또 주인왈 어떤놈이 쉬지도 않고 두 번했느냐라고 소리지른다. 재담가들의 말장난이겠지만 하여간 닭을 빗댄 음담패설이 상당량 존재함은 닭과 인간생활과의 관계가 그 만큼 밀접했다는 반증도 되는 것이다.
또 연계노해(連鷄魯蟹)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예부터 닭은 맛좋은 식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충남 연산에서 나오는 닭과 노성에서 나는 게가 그 맛이 일품이라는 것인데, 연계의 산지 충남의 연산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지명이고 노해는 노성 즉 중국의 산동성에서 나오는 게를 이름인데, 연산의 닭도 노성의 게도 먹어보지 않았으니 그 진미를 이야기 할 수는 없으나 유추컨대 미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맛을 가지고 있었음은 사실이 아니겠는가.
금년 여름은 연계(連鷄)를 연상하면서 닭고기를 즐겨 봄직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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