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축사 적법화로 축산 농가들이 큰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정부가 잇따라 퇴비부숙도 검사 의무화라는 강력한 규제를 내놓은 것 자체가 축산농가를 얼마나 우습게 봤느냐는 걸 의미하지 않느냐?”
최근 지방에서 만난 축산농가와의 식사자리에서 받은 질문이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는 하소연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날 그가 하고자 했던 요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일을 당하면서도 울분 이외에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는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2000년 협동조합 통폐합을 정점으로 자신의 생업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끝났다고 지적했다. 간혹 우유를 도로에 뿌리기도 하고, 여의도에 모여 축산관련 법 규정을 개정하자고 소리도 높이긴 했지만 ‘처절함’은 사라졌다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농가의 수가 줄어들어서 ‘생존 수호’의 외침이, 정부나 국회의원 그리고 국민 대다수에게는 그저 ‘아우성’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에는, 마지못해 동의는 했지만 그를 더욱 좌절하게 것은 농촌에 ‘역동성’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헝그리 정신 사라져


심지어 그는 원인이 전체 축산농가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설립된 자조금에 있다고도 했다. 돈이 없을 땐 ‘헝그리’ 정신이라도 있었지만, 돈이 모이자 마치 직장인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협동조합은 물론 생산자단체들이 농가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 대정부‧대국회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그것이 부족하면 이전처럼 농가들과 함께 ‘생존권 수호’를 외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편안함에 안주해 있다는 그의 나름대로의 진단에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내내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도대체 지금 축산업이 위기인가? 말은 위기이고 상황은 경고등을 계속 울리고 있는데 주변을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싶다.
이튿날 나눔축산운동본부 정기총회 중 ‘축산회관 이전’ 보고내용과 관련된 논의를 들으면서 왜 그 농가가 거세게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작은 사료업체들의 축산상생자금 100억원 기부에서부터다. 내용은 몇 번씩 게재했지만 이를 다루는 축산관련단체들의 자세는 이전이나 몇 년이 지난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정부로부터 담합 과징금 부과의 불똥이 떨어진 사료업체들이 저 살겠다며 선 듯 약속한 100억원에 대한 약속불이행을 ‘응징’하겠다는 결기도 없었다. 물론 협약(MOU)은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 단지 도의적 책임만 있을 뿐이다.
그 약속을 믿고 시작한 축산회관 이전 건은 사료업체들의 약속불이행으로, 부지 매입 할부금 2회 차를 남겨놓은 2020년 2월말 현재 43만7000원만 남은 상태다. 4월 4회차 분을 납부하지 못할 경우 당장 하루 25만4000원의 지연 손해금을 지불해야 하니 남은 돈으로는 이틀도 지연하지 못한다.
잔금을 이전을 희망하는 축산단체들이 모아 낼 수 있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축산단체들은 이전이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제동을 걸지 않았던 농림축산식품부가 이제는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니 축산회관 이전은 애당초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불이행 ‘응징’ 못할까


그럼에도 축산관련단체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나눔축산운동본부 총회에서 먼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축단협의회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나눔축산운동본부는 아무 결정 권한이 없기에 그렇다. 그 와중에 일부선 또 책임론이 나온다. 왜 그 자금을 받았느냐, 당시 그 자금을 받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할까?
당장 지불해야 할 부지 매입 할부금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또 책임론이 나오는 것은 ‘될대로 되라. 어차피 내가 질 책임이 아니다. 급한 사람이 불을 끌 것’이라는 생각인 모양인데 그것은 축산단체의 장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일전에 축단협회장의 말을 인용해 ‘바보’라고 한 적이 있다. 곧바로 그 협회 직원으로부터 “우리 회장님에게 왜 그렇게 말했냐?”고 전화상으로 막말을 들었다. 이제와 설명을 하자면 축단협회장 개인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회장이 약속한 상생자금 나머지 75억원을 이행받기 위해 사료업체들과 지속적인 회합 자리를 마련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것을 쏙 빼놨다는 요지였지만, 약속이행을 당연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부탁하는 모양새였기에 그랬다.
더 아쉬웠던 것은 물론 당시 축단협회장이 작은 생산자단체장이었기에 다른 단체장들의 협조가 덜한 것도 있었지만, 사료업체들의 손바닥 뒤집기 식의 약속불이행에 대한 축산농가들의 대대적인 ‘응징(?)’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생산자단체들이 이제는 너무 점잖아졌거나, 두려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도대체 축산농가를 어떻게 생각했으면…”하는 분개심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축산단체들이 축산부흥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뭉칠 수 없다면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축산농가의 권익을 위한 의연함이 없다면 도대체 단체는 무슨 필요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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