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르며, 아카데미상의 역사를 바꿨다. 세계의 언론이 향후 아카데미 시상이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영어권 이외의 영화에 배타적이었던 아카데미를 비롯 전 세계 영화전문가들이 왜 그토록 기생충에 열광하는가? 빈부의 격차를 한국식으로 풀었던 그 영화에 전 세계 영화팬들이 왜 감동을 하는가?

 

매순간 불평등 체감


그것은 빈부의 격차, 불평등한 세계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고,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지는 불공정한 사회는 이제 비단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베카 솔닛은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에서 공감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현실적 존재를 알아보는 일이며, 바로 이것이 감정이입을 탄생시키는 상상적 도약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공감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매우 어렵고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전세계의 사람들은 불평등을 특별한 노력 없이도 공감할 수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매 순간에서 불평등을 느끼고, 체감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반지하’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구밀도가 높은 그래서 방 한 칸의 주거지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에 그렇다. 영국의 런던에서는 3베드룸에서 3가구가 살기도 하고, 미국의 뉴욕에서 그리고 홍콩에서도 반지하만큼 또는 그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말이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은행 일가를 이룬 로스차일드(Rothschild)는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권한만 내게 주어진다면 누가 나라를 다스리든, 누가 법을 만들든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모기지론에서 비롯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그해 다우지수는 8776포인트로 마감했다. 경이로운 지수를 기록했던 딱 1년 전보다 5388포인트가 떨어진 것이다. 이 기록은 1931년 대공황 이후 1년 동안 가장 크게 떨어진 수치다. 1년 사이에 6조9000억 달러가 허공에 날아갔다.   
2008년 12월 중순 <US 투데이>에서 은행들에게 구제금융으로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느냐 물었다. 250억 달러를 지원받은 JP모건체이스는 대답을 거부했다. 100억 달러를 받은 모건스탠리도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가 은행에게 제공하는 구제금융은 그야말로 권력자가 보통 사람들의 돈을 거두어 자신의 부유한 친구들에게 퍼주는 돈일 뿐이다. 자기 친구들의 실책과 무능, 아니 명백한 사기행각을 덮어주기 위해 뿌리는 돈이다. 결코 경제를 살리기 위한 돈이 아니다.
리치대드컴퍼니의 공동설립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재테크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인 로버트 기요사키는 또 다른 저서 <부자들의 음모>에서 이 같이 밝혔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저축하고, 절대 빚은 지지 말고 장기투자를 하되 위험을 분산하라와 같은 말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오류로 가득찬 사악한 조언이라는 그의 직설화법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부자들은 항상 ‘효율성’을 따진다고 한다. 효율성을 경제 논리의 가장 큰 위치에 올려놓고 마치 높은 효율성만이 모든 이들에게 고른 성장을 이루게 해 ‘같이’ 잘사는 길을 연다고 하지만 그건 ‘항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다수가 소수를 무시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양 여겨지면 산업도 그와 마찬가지로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산업의 공익적 차원에서의 가치는 효율성에 의해 몰락하고, 그로 인해 국가 경제 전체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지금 농축산업이 홀대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국민의 건강한 체력에 초점을 맞추고 ‘축산부국’을 부르짖은 것은 정부다.

 

축산차별 도 지나쳐


그렇게 부업영세농에서 축산전업농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이 지금의 축산업이다. 그에 따라 국민의 체력도 서양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키워졌다. 그러면서 악성가축전염병과 냄새라는 문제도 발생했다. 대부분의 축산농가들이 문제를 알면서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1세기 접어들면서 정부는 그 모든 것들의 책임을 농가의 부도덕으로 몰고 있다. 정확히 따지면 그동안 정부가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정해왔던 것을 지금의 잣대로 불법이라며 빨리 접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거나 행정처분을 한다고 윽박지른다. AI나 구제역, ASF가 발병하면 살아있는 가축도 예방적 차원이라고 무조건 살처분이다.
방역 차원이라는 한마디로 희생을 강요당한 농가에 대한 배려도 없다. 게다가 국민들에게 축산에 대한 환멸을 조장하면서 그 원인을 농가에게 돌린다.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일반화되고 있는 이 상황의 책임은 축산농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잔인한 행정을 도대체 얼마나 더 오래 지켜봐야 하는 걸까?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