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진나라로 가던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적이 있었다. 안회가 가까스로 쌀을 구해 와 밥을 지었다.
공자는 밥이 다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부엌을 들여다보다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먹고 있는 안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회는 제자 가운데 도덕수양이 가장 잘되어 공자가 아끼는 제자였기에, 공자는 크게 실망하고 곧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안회가 밥이 다 되었다고 하자 공자가 말했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구나.” 밥을 몰래 먹은 안회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 말을 들은 안회는 곧장 무릎을 꿇고 말했다.
“스승님! 이 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연 순간 천장에서 훍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부분을 먹었습니다.”
공자는 안회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다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신의 입장만 생각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나는 나의 머리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너희는 보고 들은 것이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명심하거라.”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어느 날 그의 집 마당을 쓰는 하인이 세 시간 넘게 지각을 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해고해야겠다고 작정했다.
3시간 후 허겁지겁 달려 온 하인에게 빗자루를 던지며 말했다. “당신은 해고야! 빨리 이 집에서 나가!” 그러자 하인은 빗자루를 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젯밤에 딸 아이가 죽어서 아침에 묻고 오는 길입니다.”
타고르는 그 말을 듣고 인간이 자신의 입장만 생각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배웠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사람에 대해 화가 나고 미움이 생길 때는 잠시 상대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시장통을 거쳐 가는 시골 버스엔 늘 승객들이 만원이었다. 보따리마다 주고받은 정을 받아 온다고들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든 버스 안에서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그치겠지 했던 아이의 울음소리는 세 정거장을 거쳐 올 때까지도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슬슬 화가 난 승객들은 여기저기서 “아줌마 애기 좀 잘 달래 봐요..” “버스 전세 냈나..”  “이봐요. 아줌마 내려서 택시 타고 가요!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아~짜증 나... 정말”
아기를 업은 아줌마에 대한 원성으로 화난 표정들이 버스 안을 가득 매우고 있을 그 때 차가 멈춰 섰다.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버스기사만 바라보고 있는데 일어서 문을 열고 나가서는 무언가를 사들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아이 엄마에게로 다가간 버스기사는 긴 막대사탕의 비닐을 벗겨 얘기 입에 물려주니 그제사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다시 버스는 출발을 했고 버스 안에 승객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 아이엄마는 버스기사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손등에 다른 한 손’을 세워보였다. “고맙습니다”라는 수화로 고마움을 표현한 아이 엄마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 장애인이었다.
아이 엄마가 내린 뒤 버스기사는 아주머니와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랑의 불빛을 멀리 비추어 주고 있었어도 누구하나 “빨리 갑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선입견 탓일까


성인 공자도 가끔씩 오해를 한다.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오죽할까. 때문에 우리는 귀로 직접 듣거나 눈으로 본 것이라고 해도 항상 심사숙고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그 사건 자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섣불리 결론을 내려 평생 후회할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프레임 법칙이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서로 간에 불협화음이 일어나곤 하는 것은 자기의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모든 걸 자기 입장에서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되어 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선입견(先入見)’이라고 단정하지 못하는 것은, 축산업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을 자아의 성찰(省察)없는 자만(自慢)이나 오만(傲慢)에서 나오는 것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이 축산인들이 원인제공을 한 측면이 있기에 그렇다. 때문에 일반인들의 부정적 시각에 반발하기보다 왜 그들이 축산업을 그렇게 보느냐에 대한 성찰이 더 중요하다.
축산인 나름대로의 노력을 보여주고 설명하고 축산업에 대한 이해를 확산시킬 때, 바로 그 상생의 노력을 통해 시각을 교정하는 노력이 우선될 때, 비로소 축산도 미래산업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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