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일은 행복을 찾는 행위
[프롤로그] 일은 행복을 찾는 행위
  • 권민 기자
  • 승인 2020.01.10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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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 낡았다”며 무시하고
‘고령자, 부양해야 할 대상’
이런 편협된 사고 만으로는
균형 있는 사회발전은 요원

폐업 보상금·생활자금 보조
쌈짓돈 퍼주고 해결하려는
잘못된 정책에서 벗어나야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우선

 

20년도 더 된 참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매년 12월이면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우리 소리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대극장에선 클래식 공연이 열리고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정장 차림의 관람객들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렸다.
당시만 해도 지루하게 느꼈던 ‘우리 소리’에 대한 편견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친구를 따라 한마당 잔치를 보게 됐다.
난생처음 현장에서 보고 듣게 된 우리 소리에 대한 감동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큰 여운으로 가슴 속에서 울리고 있다. ‘살풀이’며 ‘마당극’이며 ‘승무’ 등등 그때 나는 우리의 소리는 행위자나 그 행위를 지켜보는 관객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클래식을 우위로 치고, 우리의 소리를 하위로 치는 우리들의 편견 때문이었는지 클래식은 대극장에서 우리의 소리는 소극장에서 공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이후 알게 모르게 내 안에 녹아있던 많은 편견들이 깨졌다.
우리의 소리 관객 중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객석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만 낯설지도 수줍지도 않았다. 가슴 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흥겨움에 그 행위 자체가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지하철 4호선의 한 역사 앞엔 없던 샌드위치 포장마차가 생겼다. 어리숙하게 보이는 나이 드신 노부부가 서툰 솜씨로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다. 처음엔 티격태격 하면서 서로 타박하던 그 분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만면에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골손님에게는 무료로 커피도 주고, 덤이라며 야채샌드위치에 슬라이스햄을 그냥 얹어주기도 했다. 그동안 지켜본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들이 말한다. “70살을 넘은 나이에 내 벌이를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새벽 5시에 나와 포장마차를 열고 이른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는 행인들에게 끼니를 제공하면서 적은 액수지만 생활비를 벌고 하루를 시작하는 일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출산율은 1명 이하다. 이대로 가면 국가를 유지해야 할 일꾼도, 늙은 세대를 부양해야 할 젊은이도 모두 함께 힘에 겨울 수밖에 도리가 없다. 농촌은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문화를 우리가 폄하하듯,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부양해야 할 대상’으로 밖에는 여기지 않는 모양새다. 옛 것에 대한 존중보다 새로운 것이라면 무작정 좋은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꼰대’로 비꼬면서 늙음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세태가 깊어지면 균형 있는 사회 발전은 꿈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이러한 의식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그들이 우리들의 마음 깊은 곳에 심어놓은 ‘식민사관’ 또는 ‘자학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 심리에서 벗어나자고 앞장서온 사람들이 수십 년 간 해온 결과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되고 빈부격차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사회의 실태다.
우리 사회가 축산업을 보는 시각도 다를 바가 없다. 농촌의 풍경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가축이지만 이제 가축을 기르는 일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범죄’로 취급돼 없어져야 하는 산업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생업을 강제로 빼앗을 수 없는 노릇이니, 온갖 법과 규정으로 할 수 없이 포기하게 만드는 작업이 지금 진행 중이다. 그리고 폐업 보상금이니 생활비 보조니 쌈짓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지면 “그거라도 다행인 줄 알라”고 으름장이다.
사람에게 일은 얼마간의 돈을 떠나서 행복을 찾는 행위다. 일을 뺏는 것은 행복을 뺏는 일이다. 사람이 시간이 흘러 늙어감은 그 자체가 서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은 사회가 할 짓이 아니다.
이미 밑바닥에 있는 축산물의 자급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고령화된 농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자로 잰 듯한 정책을 내놓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축산정책의 결말이야 뻔하다. 고령화되었으니 영세하니 빨리 사라지고 규모 있는 소수의 농가만이 살아남아서 ‘아름다운’ 농촌을 만들라는 것이지만, 신규 진입 장벽은 높고 농가는 사라지니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지듯 가축의 울음소리도 사라진 적막한 광경만이 전개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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