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 원인 분분…결국 야생 멧돼지 관리가 좌우

인접국가들 잇따른 발생에도
‘항시 유입’ 위험성은 간과돼
동시다발적 유입 가능성 높아
정확한 경로는 모르고 추정만

멧돼지 폐사체에선 계속 검출
자연적인 소멸은 기대 어려워
무차별적 포획 근본대책 안돼
효율적 관리로 재입식 길 터야

우리나라는 지난해 9월 ASF 첫 발생 이후 방역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철저한 소독을 실시했다. 사진 왼쪽부터 군 화생방 제독차량이 ASF 발생 농장 인근 도로를 소독하고 있다. 한돈농장 앞 생석회 도포 작업. 야생멧돼지 이동 차단을 위해 설치한 울타리.
우리나라는 지난해 9월 ASF 첫 발생 이후 방역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철저한 소독을 실시했다. 사진 왼쪽부터 군 화생방 제독차량이 ASF 발생 농장 인근 도로를 소독하고 있다. 한돈농장 앞 생석회 도포 작업. 야생멧돼지 이동 차단을 위해 설치한 울타리.

 

ASF가 2018년 8월 3일 중국 요녕성 선양(심양)에서 발생했다. ASF는 이후 2019년 1월 15일 몽골을 시작으로 2월 19일 베트남, 4월 3일 캄보디아, 5월 30일 북한 등 아시아 여러 국가들로 점차 확산됐다. 북한은 OIE에 5월 21일 자강도 소재 농장에서 돼지 99마리 중 77마리가폐사했다고 신고했다.
결국 지난해 9월 17일 우리나라에서도 ASF가 발생했다. 오는 14일은 국내 ASF 발생 120일이 되는 날이다. 국내 ASF 사태 발생 이후 지금까지 상황을 간략하게 짚어봤다.
우리나라는 ASF 발생으로 38만 963마리(248농가)를 살처분 했고, 6만 5557마리(125농가)를 수매해 총 44만 6520마리를 살처분이나 수매했다. 다행히 10월 9일 이후 사육돼지 발생은 더 이상 없다.
국정원은 ASF의 국내 발생 몇일 후인 9월 24일 북한 평안북도의 돼지가 ASF로 인해 전멸  상태라고 발표했다.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월 북한에 ASF가 발병했고 이후 방역이 안 된 것 같다”며 “북한 전역에 ASF가 확산됐다는 징후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이들 국가로부터 ASF가 항시 유입될 수 있는 상황임을 간과 했다”며 “ASF가 북한 전역을 휩쓸었고 이후 다양한 경로로 우리나라에 동시다발적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 ASF 유입경로 ‘오리무중’
북한은 소규모 돼지 사육이 많다. 돼지를 내다 팔면 돈이 되기 때문에 가정에서 2~3마리씩 키우고 있어 농가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아파트에서도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고 한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부장에 따르면 북한은 ASF로 죽은 돼지를 인근 하천 또는 야산에 방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죽은 돼지를 힘들게 땅에 묻기보다 손쉽게 폐기한 것이다.
김영준 부장은 이렇게 폐기된 돼지로 인해 ASF 바이러스가 물줄기를 따라 북한에서 국내로 유입됐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특히 북에서 남으로 흘러 임진강과 연결되는 사미천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미천은 원줄기에서 갈려 나온 물줄기도 작아 비가 많이 오면 쉽게 넘친다. 사미천 인근은 낮은 야산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버려진 돼지 사체에서 ASF가 흘러내려 왔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9월 10일 15시경 파주에서만 170mm 이상의 비가 내렸다. 이러한 집중호우로 사미천 수위가 높아지면서 돼지 사체가 떠내려 왔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일부 전문가는 중국 ASF 확산 사례와 같이 ASF 감염 돼지가 폐사 직전에 유통되면서 확산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 야생멧돼지서 ASF 검출
10월 2일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ASF가 처음으로 검출된 이후 경기 북부, 강원 철원지역에서 ASF에 감염된 야생멧돼지 폐사체가 계속 확인되고 있다. 1월 9일 현재 총 66건이 확인됐다. 지역별로는 파주 22건, 연천 26건, 철원 17건, 화천 1건이다.
특이 사항으로는 2019년 12월 6일 40번째 야생멧돼지 폐사체는 철원 민통선 밖 13km(갈말읍 신철원리 산5-1)에서 발견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ASF 감염 폐사체 중 휴전선을 기준으로 가장 남쪽이다.
김영준 부장에 따르면 야생멧돼지는 까치, 까마귀 등과 친하다. 멧돼지, 까치, 까마귀 모두 머리가 좋아서 잔반을 잘 찾고 함께 공유할 가능성이 있다. 또 북한에서 ASF에 오염된 폐사체를 먹거나 접촉한 큰부리까마귀 정도의 새가 남쪽으로 내려와 노출된 잔반을 먹으면서 오염시켰고 오염된 잔반을 야생멧돼지가 먹으면서 ASF가 확산됐을 수 있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밝혔다.
ASF 사태의 진정 및 확산 분기점은 올해 봄인 3~6월이 될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한수양돈연구소와 안기홍양돈연구소는 지난해 12월 26일 성남 수의과학회관에서 미래양돈포럼을 개최하고, 향후 ASF 확산 우려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득흔 ‘돼지와 사람’ 편집국장은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폐사체 수색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당분간 ASF 감염 야생멧돼지 근절은 어렵다고 판단된다”라고 전망했다. 또 “지뢰지역에서 야생멧돼지 페사체가 발견되면 속수무책”이라며 “ASF 감염 야생멧돼지가 새로운 지역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예상했다.
이성민 서울대학교 연구원은 야생멧돼지 특성에 따라 겨울철 ASF의 광범위한 확산을 우려했으며, 개체수가 증가하는 시기인 내년 6월을 분수령으로 내다봤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 ASF 유입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멧돼지 고강도 포획 필요
야생멧돼지 통제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김영준 부장은 ‘비관적’이라고 밝혔다. “철원 지역은 지뢰 지대가 80% 수준이기 때문에 멧돼지 통제가 어려울 것”이라며 “수색로를 벗어나면 관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제반 사항을 종합했을 때 국내 첫 ASF 발생은 바이러스가 북한으로부터 여러 농장에 동시다발적으로 유입됐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또 현재는 야생멧돼지가 ASF 확산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상황으로 반드시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이성민 연구원은 “야생멧돼지가 숙주가 된 이상 바이러스를 확산시킬 수 있다. 야생멧돼지 개체수 조절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비무장지대에 야생멧돼지가 많기 때문에 사이클이 돌면서 ASF가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확실하게 멧돼지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매년 지속적인 강도 높은 포획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야생멧돼지는 기본적으로 연령이 높아지고 체중이 클수록 한배 새끼수도 늘어나 최대 10마리까지도 낳는다. 평균 한 마리당 6마리를 임신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성민 연구원은 “멧돼지에 대한 개체수를 제대로 추정하기는 어렵다”며 “외국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추정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연구 결과 1년생의 비율이 70% 잡힌다고 봤을 때 개체군 전체에서 50%를 포획해도 5년 뒤에는 멧돼지 마릿수가 늘어날 것”이라며 “전체에서 75% 이상 포획했을 경우는 개체군이 감소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고강도 포획이 다음해로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개체수는 금방 회복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전문가는 “돼지는 군집 생활을 한다. 죽은 야생멧돼지와 같이 생활하던 멧돼지들은 어디로 갔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폐사체를 야생동물(오소리, 새)이 먹지 못하도록 하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 농가 신고를 막는 방역체계
농가 신고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는 초 광범위 살처분 및 재입식 지연은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은 ASF 의심 신고시 광범위한 살처분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칫 양성이 나올 경우 해당 지자체 전체 돼지가 살처분 대상이 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재입식에 대해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뜻 신고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러한 학습효과는 국내 가축전염병 방역에 중대한 허점이 된다.
이번 ASF 사태로 연천에서 9500여 마리를 살처분 한 농가 대표는 “정부의 이번 예방적 살처분 행태를 봐온 농가들은 돼지들이 죽어나가도 쉽게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며 “농가가 빠른 신고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방역과정에서 억울하고 손해 보는 농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요구 된다”고 말했다.
최근 파주, 연천, 강화 등 ASF 피해농가들에 대한 재입식이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한돈협회는 ASF가 접촉성 감염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육돼지에서는 더 이상 ASF가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야생멧돼지 감염이 계속 된다고 해도, 사육돼지를 대상으로 하는 살처분 정책은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장단위로 시설 개선 등 방역이 완벽히 이뤄진다면 재입식을 신속히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야생멧돼지와 사육돼지의 관계, 살처분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 멧돼지 개체수 조절, ASF 발생 시 정부 및 지자체의 이동제한 명령 기준, 살처분 농가 영업 손실에 대한 보상기준 마련 등 SOP 전반의 정비를 정부에 요구했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