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금 희망을 강요하는가
누가 지금 희망을 강요하는가
  • 권민 기자
  • 승인 2020.01.10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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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은 20대를 위해 던지는 유명한 교수의 따뜻한 멘토링이라고 소개된 책으로 42편이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삶에 대한 후회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치러야 할 대가다. 그러므로 진짜 행복한 삶은 죽는 순간에 후회를 가장 적게 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후회할 짓을 왜 하냐는 청춘에 대한 충고는 선험자로서 주제넘은 짓이다”라고 말한다.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최고의 교수에게도 불꽃 같은 청춘이 있었고 그 청춘은 매우 아팠다”고 설명한다. 방황하는 청춘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몫일 것이라고도 했다.

 

아픔이 당연한 것?


그리고 그는 청춘의 아픔을 잔인하지만 아름답고, 슬프지만 너무나도 명징한 사실들로 꽉 채워진 주옥같은 글귀들이라고 출판사는 홍보한다.
참으로 대조적인 단어를 적절히 교합해 마치 잔인과 아름다움을, 슬프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글의 현란함이다. 이처럼 뇌리 속에 파고드는 단어의 조합이 또 있을까 싶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회도 세상을 탐험할 기회도 앗아버리는 현실 때문에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는 청춘들은 오늘도 불안과 나태를 오가며 황금 같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고.
저자는 힘겨워하고 불안해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이것도 도전해 보고 저것도 해보고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훌륭한 한 사람의 성인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 저자의 조언에 많은 청춘들이 반발했다. 현재의 사회구조와 그로 비롯된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낭만주의적’ 지적이라고.
곧바로 ‘아프니까 청춘은 아니다’라는 책이 출판됐다. 청춘의 아픔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아픔이 얼마나 심각하며, 그 발생원인이 무엇인지 지적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청춘이 아프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우리 시대의 청춘들이 겪는 아픔이 단순 성장통을 넘어 정상 범위를 한참 벗어났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런 아픔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들을 제시한다.
그는 먼저 “신체적인 측면에서 청춘이 인생의 황금시대는 맞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우리 사회의 청춘들이 청춘을 황금시대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천번을 흔들려야 하는 것이 청춘이니까. ‘원래 그렇게 아프고 흔들리는 거야’라고 넘기기엔 우리 시대의 청춘들은 지금 너무 아프고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선 저자의 말들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현재의 시대 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 고성장기에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성공확률이 높았던 것에 비해, 현재의 저성장기에는 꿈을 꾸는 것도 무모한 도전이 될 확률이 높다고 덧붙인다.
받는 연봉으로 집 한 채 구입할 수도 없고, 결혼비용을 마련하기에도 너무 벅찬 현재의 상황에서는 부의 축적 및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고, 개인의 노력으로는 인생역전을 꿈꿀 수도 없기에 그렇다.

 

지금 필요한 건 결집


단순하게 생각해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노력에 부합하는 결과가 뒤따라야 하는 공정한 사회는 요원하다. 국민들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성과를 우리는 공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골목상권까지 무한 확장을 시도하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은 청년들에게 더 많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이렇게 아파하는 청년들에게 아픔은 그 나이에 겪는 당연한 성장통 쯤 정도로 여기게 하고, 그러한 아픔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각 개인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등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부와 명성을 가진 사람들이 청춘의 아픔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고,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이 청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힐링 장사만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는 아무 문제없는 아름다운 세상일 뿐이라고 저자는 끝맺는다.
마찬가지다. 연초부터 힘겨운 상황에 놓인 축산인들에게 축산 밖의 사람들은 ‘희망’을 강요한다. 그 힘겨운 상황을 연출한 사람이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강요하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향후 농촌사회를 이끌게 될 것이라는, 그래서 농업이 그중 축산업이 미래 산업이라고 꼬드긴다. 희망이 꿈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개개인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또 책임을 떠민다.
그러면서 정부는 연초부터 축산업을 전방위적으로 고강도 규제하겠다고 한다. 퇴비 부숙도에 대한 축산농가들의 하소연에도 요지부동이다. 이러한 상황이 개인의 노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축산농가가 희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적인 노력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결집’이다. 불합리한 규제를, 불공정한 관행을 걷어내기 위한 생존투쟁이다.
축산이 오염을 유발하는 더러운 산업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건전한 생산자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대열로 함께 모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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