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용 전 농림부 차관

 
산야가 온통 오색단풍으로 물들어 간다. 지금쯤 내 고향 충북 청주시 율량리 과수원에도 저 단풍은 고옵게 물 들겠지 지금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나의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다.
"나 보다는 이웃을, 이웃 보다는, 나라와 국가를 위하는 큰 마음으로 살아라!"
이 말씀이 씨가 되었을까? 부모님의 뜻을 받들고자 시작한 나의 공복의 길이 어언 32년의 성상이 되었다.
나는 농민의 아들답게 공직생활 29년을 농림부에서만 보냈다. 그리고 3년은 한국마사회에서 근무하면서 대과 없이 바쁘게,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쉽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1988년 고추 대풍으로 농업인들이 과천 청사에 몰려와 데모를 할 때 이를 설득하려는 과정에서 와이셔츠가 다 찢겨져서 집에 갔더니 집사람이 눈물을 흘리던 일이 어제 일처럼 오버랩되어 다시금 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1990년 채소과장 시절에는 가뭄으로 고추작황이 아주 심각할 때 내 고향 충주시로 출장 중에 카톨릭 신자인 내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부처님께 불전을 놓고 기도를 했더니 그 다음날 예상 못했던 비가 내려 반가워 눈시울을 적셨던 일이 생각이 난다.
1996년 농산과장 시절 쌀이 부족할 때 12호 태풍 키커가 온다는 기상예보에 집사람한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며 상황실에서 근무했는데 태풍이 일본으로 비켜가서 쌀 풍작이 되어 수입 안 하게 되었던 일, 그리고 농산국장시절 환경농업을 정착시키는 법안 마련, 친환경 농업육성 기준 마련 등 어려운 일을 할 때마다 늘 나에게 아내의 사랑과 기도가 뒤따랐다는 생각이 든다.
차관보 시절에는 2000년과 2002년 구제역 발생으로 축산농가와 같이 고생했던 일 등 이 모든 일들이 추억이라기에는 너무도 가슴을 꽉 채우고 있다.
아침 출근시간 1시간 전에 출근해서 밤 9시, 10시, 어떤 때는 밤 1시, 2시까지 근무하다 퇴근했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와서 자고나면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다짐했다.
"그래도 다시 해보자!"
그 당시는 정말 힘들었으며, 격무로 어머님의 임종도 제대로 못보고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은 지금도 나의 가슴을 메이게 한다.
농촌진흥청장 시절에는 오랜 동안 관습에 젖어있던 농촌진흥청의 조직개혁으로 인신공격, 개인 신상위협 등을 무릅쓰고 일을 강력히 추진한 결과, 정부인사혁신 최우수기관으로 대통령상과 정부업적평가결과, 종합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대통령기관표창을 받는 영광을 안았을 때는 큰 보람도 느꼈다.
한국마사회에서의 3년은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볼 수 있다. 젊은 동료들과 같이 마사회 발전을 위하여 토론하고 영어도 배우면서 직장다운 직장생활을 했다고 본다.
막상 공복의 길, 32년을 마치면서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내 고향 청주 무심천변을 사색하며 거닐면서 키웠던 나의 꿈 「농림부에 들어가서 우리 농촌과 우리 농업인을 잘 살게 하겠다」는 청운의 꿈이 이루어졌는가를 반문하면서 고뇌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난 내 고향 전통적인 농업도인 충북의 아들답게 우리 농촌발전을 위해 고뇌하고 열심히 뛰었음을 자부한다.
한 · 중 마늘사건으로 농림부 차관을 퇴임하면서 자책하는 눈물을 흘렸던 때보다 더욱 가슴을 억누르는 것을 느낀다. 언제쯤 돼야 도·농 간 커다란 소득격차를 줄일 수 있고 농가부채, 쌀 수급과 WTO와 FTA 등 산적한 문제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우리농업, 농촌은 희망이 있다고 본다. 아직도 한농연, 한여농 등 젊은 농업인이 우리 농업을 지키고 있고 1사 1촌 운동 등 도시민이 우리 농업, 농촌을 이해하고 같이 호흡할 때 상생 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산업은 사람의 경쟁력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을 단위 아니 부락 단위에서 농촌지도자 즉 CEO를 육성해야 한다. 이들 CEO가 부락을 선도하고 우리 농업을 이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앞으로 내게 봉사의 길이 주어진다면 내 고향 충북에서 일하고 봉사하며 살고 싶다. 농도인 충북에서 못다한 농정의 현안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대안을 제시 할 수 있는 분수령을 만들기 위해 이 몸을 다 바치고 싶다.
농정은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주요약력)
서규용(1948. 1. 9, 56세, 충북 청주 출생)
청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농학과 미국농무성대학원 국방대학원(석사) 기술고시 8회 합격 농림부 특작과, 전작과장, 채소과장 농산정책심의관, 농산원예국장, 식량생산국장 농촌진흥청 차장 농림부 차관보 농촌진흥청 청장 농림부 차관 한국마사회 상임감사 ▲상훈: 국무총리표창 녹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저서: 정부양곡관리의 전산화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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