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로 강남 지역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추밭으로 인분을 지고 나르며 하루 일과를 보내던 한 친구의 집안은, 강남 개발로 말 그대로 벼락부자가 됐다. 여름이면 홍수로 피해를 보기 일쑤였고, 때문에 그 땅을 일구는 것만으로는 형제들 대부분이 더 많은 배움을 채울 수 없었다.
그 동네 또 한 친구는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인재로 소문나, 일본 도쿄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그는 배추밭에서 거름을 나르는 일이며, 농사짓는 일 자체를 창피해 하며, 사업을 한다면서 그 많던 땅을 야금야금 팔아치웠다. 그리고 이젠 가진 것이라곤 달랑(?) 75평짜리 집 한 채였다.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는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대학을 들어가 공부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고 한 눈 팔지 않았던 친구의 가족은 강남에 빌딩을 몇 채씩 가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들과 저녁 술자리에서의 일이었다. 자신의 빌딩을 관리하는 졸부 친구는 항상 놀아줄 대상을 찾았다. 가진 것은 돈이요, 남는 것은 시간이었다. 함께 놀아주고 비위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좋았다.
네 명이 함께 한 그날, 한 친구가 처음부터 우울한 표정이었다. ‘놀자’ 친구가 물었다. “야! 술 맛 떨어지게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돈이면 안될 것이 없는 사회를 배운 그는 이런 자리에선 항상 호기롭다.

 

‘있는 놈이 더하다’


“돈이 좀 필요해서…” 어렵사리 운을 뗀 친구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듯 했다. 선 듯 부탁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해 온 것이다. “얼마가 필요한데?” “한 천만 원 쯤…” 마치 빌려줄 듯 하던 그는 한 마디 한다. “야, 친구끼리 돈거래 하는 거 아니래. 술은 사 줄테니 마셔.”
그날 그 졸부의 얼굴에 술을 끼얹고 다시는 그와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그 씁쓸한 기억은 살아오면서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있는 놈이 더 하다’는 말이 보편화된 것은 아마도 그런 ‘모욕스러운’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는 물질만능이니 황금만능이니 천민자본주의니 그것을 비뚤어진 세태로 애써 외면하면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재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우리는 지금 겪고 있기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연말연시가 되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거나 누군가 선 듯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기부를 했을 때, 갖게 되는 감동이 점점 덜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 감동의 전염성이 덜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천박한’ 의식에 찌들어있기에 그런 것을 아닐까? 
모두가 “제 살기에 바빠서”라고 하기엔 너무 속보이는 변명이다. 희한하게도 서로 돕고 사는 삶의 풍경은 소위 ‘있는’ 사람들의 주변에서는 보고 어렵다. 없는 사람끼리 적으나마 온정이 오고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들에게는 변명이나 계산 따위는 필요 없다. 그래서 감동에 쉽게 감염되고, 감염된 감동은 잔잔하게 퍼져가는 것이다.
경북 영주에서 까치농장을 경영하는 송무찬 한우자조금 대의원회 의장은, 지난해 나눔축산운동본부에 한우 한 마리를 기증한데 이어 올해도 다시 한 마리를 기부했다. 한우 한 마리 기증은 현물 기부, 통 큰 기부로 나눔축산운동본부의 기부 형태에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당시 송무찬 농가는 현물 기부에 대해서 “이웃과 함께 다 같이 행복한 삶을 살자는 것이 평소의 소신 이었다”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황이 아니니 가능하다면 키우고 있는 소를 한 마리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변에서는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둥 애써 평가절하 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우린 아직도 멀었다


그의 아내는 20년을 넘게 지역에서 봉사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자원봉사자다. 지난번 기부 때에도 적극 독려해줬던 그의 아내는 이번에도 취지에 맞게 더 많은 이웃들이 나눌 수 있도록 중량이 더 나가는 소를 골라주었다고 한다.
한우 한 마리는 돈으로 따지면 선 듯 내놓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그런데 그는 여윳돈이 없으니 현물로 기부하겠다고 쉽게(?) 결정했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 계속 기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 마디 했다. 본인이 기쁜 마음으로 나눔운동에 참여했지만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기부도 있으니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의 의미도 있었다고 했다.
처음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도 나중엔 다시 말을 주워 담는 것을 보고, “우린 아직도 멀었다”는 실망감이 들었다고도 했다. 그는 120여 마리의 한우를 키우고 있다. 소위 그 업종의 오피니언리더로서는 아주 작은 규모다. 게다가 빚도 8억여 원이다.
자조금으로 할인 행사를 하는 것과 개인 스스로 나눔 활동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업계의 리더들이라면 최소한의 덕목은 있어야 한다. 그 덕목이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다.
그 자격은 나를 우선하지 않고, 함께 사는 삶에 대해 고뇌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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