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 입시과정에서 누린 혜택을 통해 상대적 박탈감이 최근 유행어가 됐다고 했다.
한 개인의 가정사가 몇 달씩 전 언론을 비롯 전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전대미문의 사건(?)이 된 것은, 그동안 대한민국의 사회가 얼마나 불공정했으며 그 불공정을 대하는 자세가 경우에 따라 어떻게 달랐느냐는 점도 시사해줬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세대로 주목받아 왔던 ‘386세대’의 민낮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가늠할 수 없는 절망감과 이를 딛고 새로운 사회를 열고자 하는 열망이 함께 분출됐다.
상대적 박탈감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 권리나 자격 등 당연히 자신에게 있어야 할 어떤 것을 빼앗긴 듯한 느낌을 말한다. 자신은 실제로 잃은 것이 없지만, 다른 대상이 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불명예스럽게도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1위다. 1997년 10만 명당 13.1명이 였던 자살률은 2014년 27.3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현재 한국은 가장 생산적인 20~30대 젊은이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나라다.
무엇이 인구 5000만이 살아가는 이 공동체를 이토록 잔인한 사회로 바꾸어 놓았을까?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비정규직 고용’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비정규직 고용은 지금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불평등 문제의 한 발단이다.

 

불평등 그늘 깊어져


1960년대 먹고 살기 힘들었던 농경시대의 대한민국은, 현재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10대 교역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의 그늘에서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일반적인 평가를 기준으로 아픔의 원인을 보면 이렇다. 20~30대는 취업문제가 젊은이들을 압박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시직과 정규직, 아르바이트까지 구직 경쟁과 갈등이 치열하다.
40~50대는 직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고, 60~70대는 소득 감소와 생활궁핍이라는 현실에 직면해 100세 시대에 걸맞는 경제력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다.
이러한 평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디에도 농민의 삶은 보이지 않고, 식량자급률이 바닥을 치고 있음에도 그 중요성조차 언급되어 있지도 않다. 이제 농민은 국민도 아닌 모양이다.
또 슈퍼에 가거나 시장에 가면 온갖 먹을거리가 산재해 있으므로 이제 먹고 사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니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은 관심 밖의 대상이다.
이런 시각은 정부가 잇따라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학계나 언론의 평가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지난 4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협정문이 타결되자, 학계나 언론들은 전 세계적으로 거세지는 신보호주의를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올 10월 수출 실적이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4.7% 감소한 467억 8000만 달러에 그쳐 11개월 연속 감소세이며, 이러한 부진 때문에 국내 경기도 장기적 침체를 겪고 있어 이를 타개할 어떤 계기가 절실하게 필요했는데 RCEP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라는 뜻이다.
RCEP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인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총 16개국이 관세 장벽 철폐를 목표로 하는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협정이다. 하지만 인도는 선진국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중국산 공산품과 농산품에 대한 관세 폐지에 난색을 표하면서 15개국만 최종 타결을 선언했다. 내년에 정식 서명을 하게 될 예정이다.

 

노골적인 농업 무시


한국과 중미와의 자유무역협정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국회 비준 절차가 끝난 영국, 비준 절차를 추진 중인 이스라엘 등 대한민국은 거의 전 세계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중이다.
특히 RCEP에 포함된 국가에는 중국과 베트남 등 농업 강대국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어, 이미 이전의 자유무역협정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국내 농축산업은 말 그대로 초토화될 전망이다.
때문에 국내 농업계에서 “정부가 농업을 포기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2015년 기준 한국과 RCEP 국가들과의 농산물 수출입 통계를 보면, 3조 6522억 규모의 농산물을 수출했지만 수입은 그 2배가 넘는 7조 7515억 규모다.
정부가 “거대 경제 블록 형성을 통한 안정적 역내 교역‧투자 기반을 확보했다”고 하지만 역으로 앉아서 생존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 아니다. 이는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다.
지금 농민이 느끼는 감정은 절대적 빈곤의 고착화에 대한, 정부의 노골적인 농업 ‘무시’에 대한 절망감이다. “더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게 해 달라”는 호소를 마냥 ‘떼쓰기’로만 보는 자세를 보면서 위기가 어떻게 기회로 보일 것인가.
식량 자급률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농민들의 밥그릇 챙기기 주장으로 일축하는 태도를 보면 과연 농민이라는 위치와 국민이 일치되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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