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숙<전국농민회총연맹 경기도연맹 의장>

허물 많은 16대 국회를 뒤로하고 새로운 정치, 희망의 정치를 열어갈 17대 국회에 입성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04년은 UN이 정한 쌀의 해입니다. ‘세계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쌀 생산에 필요한 농지와 농업용수는 줄어들면서 생산이 인구증가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쌀은 우리 민족의 주식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님과 함께 30억 지구인의 식량으로 인류의 생존에 기여하는 소중함 또한 세계적으로 되새기는 해입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우리는‘세계 쌀의 해'에 쌀 재협상을 통하여 쌀의 전면 개방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옛 어른들은 말씀하시기를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짓는다'고 합니다. 농민들이 아무리 애를 쓴다하더라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지난 99년이래 4년간 세계 식량소비가 생산을 앞질러서 세계는 이미 식량의 부족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2004년 1월현재, 세계 전체 곡물생산은 18억2690만톤이고 소비는 19억3210만톤으로 생산량이 1억톤 정도 부족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8억4천만의 지구인이 굶주리고 있고 한 해에도 3천6백만명이, 한 시간에도 4천명이 기아로 죽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식량의 위기 시대에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2003년 식량자급률이 26.9%라고 합니다. 단군이래 이토록 낮은 식량자급률을 기록한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쌀을 제외하고 나면 자급률이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쌀마저 개방된다면 식량자급률은 급락할 것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사람들은 농민들이 '쌀개방 반대'를 주장하면 마치 그것이 농민들의 생존권의 문제인 것처럼 인식하며 농민의 장래를 걱정해 줍니다. 그러나 정작 걱정할 것은 농민의 생존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생존 위기라는 것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식량자급률은 과연 얼마나 되어야 하겠습니까? 식량자급률이 날로 추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민족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식량 자급률에 대한 목표나 계획조차도 서 있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2004년에 직면한 쌀개방 위기 그 자체보다도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농업은 생명이라고 합니다. 농산물은 그 자체가 생명의 산물이기에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과는 다를 것입니다. 우선 햇볕과 바람과 땅과 물이 한데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생명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당장 모자란다고 해서 내일 만들어 낼 수 없고 부족하다고 해서 2교대, 3교대로 생산을 늘릴 수도 없습니다. 쌀의 경우 급하다고 해서 겨울이나 여름에 모를 심을 수도 없습니다. 돈세상이라고 해서 돈으로 무엇이든 다 되는 것은 아니듯 식량이 부족해지면 수입농산물 사먹으면 되니까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은 농업이 생명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는 소치입니다.
폭설이나 태풍이 오고 큰물이 지고 농축산물의 가격이 오르기라도 하면 농민들은 제잘못인양 움추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은 그 자신이 한번도 농산물가격을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습니다. 쌀값은 국회에서 수매가로 결정했고, 채소나 다른 농축산물은 시장에서 경매로 결정되었습니다. 국민들이 마트에서 농산물이 왜 그리 비싸냐고 농민들에게 물어봐도 우리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농민이 농산물을 파는 것은 여타 상품처럼 원가를 계산하고 이윤을 부쳐 상품을 파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식량이 소중한 국가의 대사이기에 오히려 농민들의 피눈물을 흘리며 국가가 정하는 가격에 쌀을 파는 것입니다.
새희망의 정치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님께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몸이 아플 때 비로소 건강을 돌아보듯이 쌀개방의 위기에 즈음해서 몰락하는 농촌과 농업을 돌아보시고 민족의 식량과 생존을 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쌀개방과 재협상은 국제관계 속에서 풀어갈 문제이지만 민족전체의 최소한의 식량자급률을 지켜내는 것은 농민과 정부,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하는 일이고 서로 합의하여 공동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사회적 약속으로 법제화 해줄 것을 당부 드리며 나아가 전 민족의 요구이니만큼 17대 국회의 첫 번째 안건으로 처리해 주실 것을 감히 요청합니다.
지난 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출토된 59톨의 볍씨가 그동안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아왔던 중국 후난(湖南)성 출도의 1만년전 볍씨보다 약 3천년이상 앞서는 것으로(영국 BBC 방송국)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한반도에서 더 이상 쌀농사를 짓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뭐라고 할 것입니까?
한번 파괴된 자연과 환경을 다시 복구하자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듯이 식량자급률이 한번 무너지고 다시 회복하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할 것입니다. 자급률이 더 내려 가기 전에, 그리고 무너지기 전에 지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빈다.
가까운 일본은 이미 지난 99년 자급률 목표 설정을 법제화하고 2000년 3월 24일에는 2010년까지 칼로리 자급률로 45%를 만들 것을 결정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농업농촌기본법에 '노력한다'는 선언적 의미로만 밝히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 더욱 안타깝습니다.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님!
식량이 안보라면, 농업이 생명이라면 더 이상 무너지기 전에 최소한의 마지막 선은 있어야 하며 그것만큼은 지켜야하지 않겠습니까? 더더욱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에서 남북이 나누어 먹을 7천만의 통일 식량을 챙기는 것을 어찌 농민 이기주의라 하겠습니까? 쌀이 개방되기 전에, 농업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기 전에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법으로 국민의 힘으로 지켜줄 것을 충심으로 호소합니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