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구(농협중앙회 감사실장)

 
지난 1965년 매출액 기준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2000년까지 35년 간 생존한 기업은 16개에 불과했다는 조사결과를 한 기업경영 전문잡지에서 접했던 적이 있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에도 기업의 평균 수명은 13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기업이 날로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증이라 하겠다.
그래서 기업들은 수십 년 전부터 자신들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소비자들을 상대로 어떻게 하면 그들의 환심을 사 자신들의 고객으로 만들까 고심하면서 각종 마케팅 전략 및 광고전략을 수립, 시행해 왔다.
‘고객은 왕이다’‘고객은 항상 옳다’와 같이 민주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용어들이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여 마케팅에서는 효과를 거두고 있고 ‘고객 만족’‘고객감동’지향의 경영이 최고의 경영전략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생산수단인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던 때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고객을 좌지우지했던 시대는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식경영의 시대에 살고있는 오늘에 있어서 기업의 성패는 결국 인적 자원인 종업원들의 경쟁력에 달려 있기에 기업이 번영하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종업원 만족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국내 기업들도 2004년의 기업경영 최대과제 중 하나로 ‘상생의 노사문화’를 꼽고 있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연말 사장단 회의에서 협력사와 ‘나눔 경영’을 선언하고 1조원의 자금지원 방안을 마련토록 함에 따라 협력 중소기업에 대한 시설투자비 50% 무이자 대출 및 경영컨설팅, 임직원 교육 등 지원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제 바야흐로 고객과, 종업원과, 지역·이웃과 함께 하는 공생, 상생을 추구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농업인, 그 중에서도 축산농가(이하 경영자라 하기로 함)는 이제 어떠한 자세로 축산경영에 임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이러한 시대적 경영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소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제 가축들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진정으로 종업원 만족과 고객만족 경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축들의 권리를 존중하자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 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왜 종업원들을 만족시켜야 하며, 왜 고객만족 경영을 해야 하는가를.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오랫동안 흥하면서 생존하려면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축산경영자들 또한 자신의 일을 기업이라 생각한다면 적어도 최소 30년 이상은 장수해야 할 기업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농축산 현장은 평생직장이다. 지금 일반기업의 직장인들은 사오정(45세 정년)이니 오륙도(盜)도 모자라 38선에 이어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켰다.
세상살이가 쉬운 것이 단 하나도 없거늘, 기업은 생존을 위해 이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 데 하물며 30년 이상을 장수해야 할 축산기업이 이러한 노력도 없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서야 어찌 이 험한 세상을 버텨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축산업 경영자에게 있어서 고객만족과 종업원 만족은 무엇인가. 고객만족은 축산물을 소비하는 일반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니까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고 본다. 다만 개방화 시대 속에서 농·축산물도 외국 농·축산물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도래된 만큼, 이제는 단순히 국산품이나 가격만을 가지고 소비자들에게 호소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안전하고 질 좋은 고급제품으로 정면 승부를 해야 할 것이라는 점만을 지적하고 싶다.
‘종업원 만족’의 경우 필자는 새로운 시각에서 가축(家畜)들을 ‘종업원’으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지난 97년에 열렸던 청문회에서 정치인 뇌물 수수와 관련돼 증인으로 출석했던 모 그룹 회장은 자기 회사 직원들을 ‘머슴’이라 칭해 한동안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다. 이런 사람이 경영자로 있는 기업은 그 결과가 좋을 리 없다.
그러면 이제 ‘종업원’인 가축들의 만족을 위해 경영자(양축농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축들이 경영주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종업원’으로 간주된다면 경영주는 당연히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마땅하다.
가축들은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의무를 다 하고 있는데 이들의 권리를 무시한다면 이는 결코 훌륭한 경영자(CEO)라 할 수 없다.
따라서 경영자는 다음과 같은 그들의 권리(요구)를 마땅히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첫째, 가축이 생활하는 축사의 경우에는 적당한 온도나 습도는 물론 환기 장치 등 모든 시설물의 사육환경을 청결하게 함으로써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즉 환경권을 보장해야 한다.
둘째, 물과 사료는 종업원인 가축의 특성과 기호에 따라, 영양이 부족하지 않도록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합리적인 급여를 받을 권리(영양권)를 부여해야 한다.
셋째, 최근 가축들은 구제역, 돼지콜레라. 가금인플루엔자 등 각종 질병의 발생으로 생명의 위험에서 한 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적절한 운동과 각종 방역, 백신, 소독, 치료 등 철저한 위생관리로 질병없이 건강하게 살 권리(건강권)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만물의 영장인 인류의 건강과 먹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기꺼이 한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도축 및 유통, 판매 과정에서 귀중한 식품으로 대접받을 권리도 있다 하겠다.
이러한 가축들의 권리가 보장된다면 최근의 돼지 콜레라, 가금인플루엔자와 같은 각종 질병으로 양축농가가 파탄에 이르는 지경이 되거나 불안전 식품에 대한 우려로 소비자들이 외면하여 통닭집 주인이 자살하는 것과 같은 가슴 아픈 일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상의 가축들의 권리보장은 결국 가축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인 인간이 안심하고, 즐겁게, 그리고 맛있게 영양을 섭취하는데 기여함으로써 결국 고객만족을 실현하여 궁극적으로는 주인인 경영자에게 최대의 이익과 기쁨을 주는 것이다.
자, 이런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종업원’들인데 이들의 행복추구권을 외면할 것인가.
축산경영자들이여! 이제는 지식경영의 시대요, CEO의 시대다. 삼성전자가 세계 유수 기업으로 발돋움한 원천은 자본이 많아서가 아니라 앞선 기술력과 유능한 CEO, 우수한 종업원들에서 나왔다고 본다.
가축들의 권리와 행복추구권을 존중하는 축산업 경영자가 진정한 축산분야 CEO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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