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도는, 2008년 국내에서 유통되는 농축산물과 그 가공품 그리고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조리 음식에 대한 원산지 표시를 관리함으로써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고 유통질서를 확립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원산지 표시제를 도입할 당시 국내로 축산물을 수출하는 축산 강국들은 외국산의 국내 시장 진입을 규제하는 ‘장벽’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알권리라는 명분에 밀려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원산지 표시제는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외국 축산물과의 무한경쟁에서 국내산 축산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마련된 적절한 보호장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국내산 축산물과 비교할 때 가격 경쟁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산 냉동 축산물로 인한 축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보호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쟁의 프레임을 가격에서 품질로 전환할 필요성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축산업 보호 큰 의미


마침 축산물 전면 개방과 더불어 2003년부터 정부는 축산물의 고품질화에 초점을 맞추고 ‘축산물 브랜드’ 정책을 추진, 차츰 자리매김을 해오던 터였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구제역,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광우병 등 악성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패턴도 안전과 위생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전환되고 있던 때였다.
양적 성장일변도에서 질적 성장을 목표로 축산물 브랜드사업을 통한 품질 고급화가 자리매김하면서 국내 축산업은 수입 축산물과의 차별에는 성공했지만, 그에 따른 수익 차익을 노린 외국산의 국내산 둔갑판매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만큼 국내산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깊어진 이유이기도 하지만 축산물 수출국에서의 안전 점검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위생과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푸드 마일food mile’이라는 개념도 대중화됐다. 푸드 마일이란 농산물 식재료가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를 말하는데, 이 푸드 마일이 길어지면 식품의 안전성은 그와 반비례해 감소한다.
왜냐하면 장거리 이동 시에는 식품이 변질되기 쉽기 때문에 각종 살균제‧살충제‧보존제‧첨가제의 양을 증가시켜 방부처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방부제의 경우, 몸속으로 들어가면 소화분해를 방해해 영양공급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몸에 쌓여 세포를 공격해 항산화 능력을 떨어뜨린다. 때문에 소비자의 건강 위협도 증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산 축산물의 국내산 둔갑판매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대부분이 외국산 소고기의 국내산 소고기로의 둔갑이 가장 많은 차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부 힘만으론 안돼


그래서였을까? 원산지 표시제 위반업체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는 곳은 전국한우협회다. 한우협회는 위반업체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터무니없이 낮다며 위반업소들을 대상으로 정부의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는 위반 행위가 근절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민사소송을 전개함으로써 징벌적 금전적 손실을 가하겠다며 한 법률사무소와 업무협약을 맺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피해액 산출도 어렵고, 피해 당사자들이 구체화되지 않아 소송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녹색소비자연대와 연합해 한우유통투명화 실현이라는 목적으로 소고기 유통업소 점검을 통해 원산지 표시 위반, 거짓 표시 등 감시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지난해 정육점‧음식점 유통업소 2만여 곳을 방문해 460건을 적발했다.  
둔갑판매를 포함한 원산지 표시 위반업체를 감시하기 위한 축산업계의 노력이 아쉬운 것은 바로 이 같은 대목이다. 왜 한우협회만 유독 눈에 띄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둔갑판매의 경우, 삼겹살‧목살용 돼지고기의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단속이나, 설‧추석 명절 때 합동단속을 제외하곤 생산자단체를 중심으론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정운천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의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제주도에서만 지난 5년 동안 원산지 표시 위반 적발 사례가 총 322개소, 위반품목은 394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돼지고기가 89건(22.6%)으로 소고기 41건의 2배가 넘는 건수다.
특히 제주산 돼지는 품질이 우수하고, 청정 돼지고기라는 이미지 때문에 외국산 돼지고기나 국내산 돼지고기가 제주산으로 둔갑 판매하는 행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업체들의 둔갑판매는 소비자들에게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국내산 축산물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 틈을 외국산이 메우게 되면 자급률은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조금연합회가 생산자단체의 각기 다른 생각으로 해체됐다. 둔갑판매는 전체 축산업의 존립에 관한 문제다. 정부의 힘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전 축종이 함께 힘을 보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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