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헌<전국농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우리가 살아가면서 ‘밥’을 먹는 일은 일상적인 일. 하지만 ‘밥’ 때문에 일어나는 요상한 일들은 참 많다. 특히 직장에서다. 요즘이야 더치페이가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유행인데 아직도 밥은 사는 사람, 얻어먹는 사람이 확연히 나뉜다. 얻어먹는 것도 습관이라 십수년동안 얻어먹기만 하다가 직장을 끝내는 사람도 있다.
‘밥’이나 먹자 또는‘내가 밥을 산다’라는 말은 주로 갖가지 비즈니스를 풀고 친목을 다지기 위한 수단이다. 상대방에게 어려운 부탁이라도 할 것이 있으면 함께 밥을 먹으면서 문제를 푼다. 이를 위해서 음식점도 잘 선택해야 상대방 기분을 맞출 수 있고 점심보다는 저녁이 고급 대접이라고 믿는다. 누가 내느냐도 중요하다. 과장이 내는 것 보다는 사장의 특별한 선택으로 내는 밥이 맛이 좋다. 그래서 밥은 잘 사고 먹으면 기분이 좋고 일도 술술 풀린다. 리더는 그래서 아래 사람과 자주 밥을 먹으며 대화한다.
간혹 영악한 리더가 불순한 목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코드가 맞는)사람만 비밀리에 불러내서 밥을 내기도 하지만 비밀은 없다. 탄로가 나게 마련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조직은 극도의 혼란 속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밥내기는 좀더 신중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선택된 사람도 좀더 주변을 살펴보는 예의가 필요하다. 국무총리께서 지난 10월13일, 일부 농민단체를 선택하여 밥 먹는 일을 했다. 그것도 언론에는 총리관저로 모셔 ‘만찬’을 했다고 표현했으니 총리께서는 우리 농업에 극진한 대접을 한 셈이다. 초청받은 농민단체도 그들만 선택받은 것이라 대단히 기분이 우쭐하고 좋았을 것이다. 우리 농업을 풀기 위한 격의 없는 자리이었으리라. 특히 농업개방과 한·칠레 FTA현안을 이해하기 위한 자리였으리라 생각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총리도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일부 농민단체도 잘못됐다. 농민단체 선택에 문제다. 그날 총리께선 왜 일부 단체만 불렀을까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에 대표적인 농민단체라면 누구라도‘전국농민단체협의회’(농단협)라고 답이 나온다. 그러나 그날 선택된 농민단체에 농단협은 없었고 농단협에서 올봄 불만을 품고 나간 일부 농민단체였다. 농단협측은 전혀 정보가 없었다. 그 이튿날 신문을 보고 알았다. 또 일국의 총리께서 이념이 강하고 운동권적 시야를 갖고 있는 농민단체만 모아 초청한 배경은 뭘까? 의심스럽다. 그것도 들리는 바로는 비밀스럽게 초청을 했는데 노출되는 바람에 공개를 했다고 하니 더더욱 이해가 안된다. 많은 이야기가 모아졌을 것이다. 분위기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는 반쪽도 못된다. 편향된 소리만 들었을 터이니 말이다. 이런 정부 밑에서 농사를 하는 농민이 바보 같고 이를 대표하는 농민단체들이 우스워졌다. 자괴감이 들고 울분이 가시질 않는다. 국무총리실에서 낸 보도자료에 의하면 총리께서는 그날 저녁을 내면서 “농업개방 문제는 WTO체제하에서는 사실상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라며“FTA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고 한다.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씨로 인해서 잠잠했던 한·칠레 FTA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였다. 그날 오전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칠레 FTA협정 국회동의안은 이번 회기 내에 반드시 통과되어야한다”는 강한 의견을 피력했었다. 그래서 국무총리께서는 정신없이 바빠서 균형감각을 잃으셨을까?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결국 바늘구멍으로 하늘 쳐다보는 우다. 그런 시야로 우리 농업을 바라보는 총리를 어떻게 이해함이 옳은가?
지난주 농단협 회장들이 모였다. 국무총리의 잘못된 만찬소식을 듣고 한마디씩 했다. 그 중에서 한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잘해 보라지요. 한심하긴… 밥만 먹여주면 FTA가 즉각 해결됩니까?”심히 씁쓸하다. 고건 국무총리는 왜 농민단체를 우롱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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