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없애는 게 대책이라니
돼지를 없애는 게 대책이라니
  • 권민 기자
  • 승인 2019.10.18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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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하태식 대한한돈협회장의 1인 시위를 시작으로 한돈농가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축산관련단체장들도 17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ASF(아프리카 돼지열병)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왜 한돈농가들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걸까? ASF가 발생하자 정부의 방역대책과 연계해 확산방지를 위해 신속하고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이다.
방역이 애초부터 잘못되었다느니 정부의 방역대책에 문제가 있다느니 말하기에 앞서 ASF 바이러스가 제 농장 아니면 주변의 농장에 침투할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조기 종식을 위해 적극적이었던 이들이 왜 밖으로 나온 걸까?
일단 한돈농가들의 요구는 ‘경기 연천 일괄 살처분 반대, 멧돼지 관리 우선’이다. 이들은 정부의 원인 규명 없는 일방적인 연천지역 모든 돼지의 수매 및 살처분을 즉각적으로 중단하고, 한돈농가에 대한 생존권을 보장하고, 환경부는 ASF 감염의 주요 원인인 야생멧돼지 특단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강력한 선제적 조치에도 ASF가 종식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산발적으로 발생하자 아예 민통선과 인접한 경기 북부 지역의 돼지 전부를 수매 및 살처분할 것을 결정했다. 그 지역 돼지의 씨를 말려 ASF를 잡겠다는 ‘폭탄선언’이다.

 

왜 밖으로 나왔을까?


축산업의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듯한 파격적인 조치라고 볼 수도 있다. 악성 그것도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고 한 번 걸리면 살아남기 어려운 데다, 주변의 돼지까지 질병을 옮기는 ‘무서운’ 병이니 전쟁의 수칙에 맞게 한 지역을 완전히 비우면 확산될 위험도 없으니 말이다.
자금이 조금 들기는 하지만 해당 지역의 돼지농가에겐 ‘보상’을 해주면 된다. 하지만 가족의 삶이 완전히 망가지는 돼지농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억울할 때가 없다. 돼지 한 마리 가격을 지금 떨어질 데로 떨어진 가격에 보상을 받는 것도 그렇지만 있는 돼지를 다 없앤 후엔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전제 국가도 아니고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국가가 마음대로 사유 재산의 권리를 침탈하면서 이렇게 강제할 수 있는 걸까?
1인 시위를 하는 농가들은 “정부가 경기 강화‧김포‧파주에 이어 연천지역의 돼지 전체를 수매‧살처분하려 한다”고 호소하면서 “예방적 수매‧살처분 농가들의 생계에 대한 선보상 대책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방역정책 때문에 돼지농가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절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돼지가 소비자의 밥상에 올라가기까지에는 많은 단계가 필요하고 그 단계마다 비용이 발생한다. 농가가 돼지를 도축장에 출하할 때까지만 쳐도 임신기간을 포함, 적어도 8개월 이상이 걸린다. 농장의 젖뗀 돼지를 키워 차례로 출하하면서 손에 쥔 수익으로 농가는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회생활을 한다.

 

생계비 포함이 마땅


정부가 일괄적으로 가격을 매겨 일시에 농장의 돼지를 도태시키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농가의 어려움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모두 처분하고 나면 재입식 동안 2년여는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보상금 문제가 나오자 벌써 금융권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아마도 대출금을 떼일까봐서 일 것이다. 수익이 없으면 돼지농가들은 보상금으로 ‘빚잔치’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도시의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농가도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수익이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근로자가 실직을 당하면 미래를 계획할 수 없듯이 농가도 그 수익이 끊기는 순간 아무 미래도 계획할 수 없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최근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면서 특히 축산업 중에서도 양돈농가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높아, 한 번 돼지를 없앤 후엔 재입식이 쉽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냄새 문제로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라 지자체들이 너나할 것 없이 조례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다시는 생업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중앙정부가 보장을 해줄 수도 없지만 아무리 보장해준다고 약속한다 손치더라도 현장에선 결코 통용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번 ASF는 돼지농가의 잘못도 아니다. 매뉴얼을 안 지킨 것도 아니고, 발생지역을 다녀왔지만 일부러 신고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도 제대로 밝혀내지도 못했다. 여러 정황 상 야생멧돼지가 ASF 전파의 원인으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생 동물 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대책은 무사안일이다.
한돈농가들이 더욱 억울한 것은 대한한돈협회를 중심으로 이미 ASF 최우선 위험요소로 야생멧돼지에 의한 전파를 우려해 선제적 개체수 조절을 촉구해 왔으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한돈농가들의 강요된 희생이다.
2000년 당시 돼지열병으로부터 청정화에 성공했던 제주도와 방역대책 수립에 참여했던 수의전문가에게 비결을 물었다.
“악성 질병의 확산을 막고 조기에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충분한 자금과 즉각적인 매몰지역을 확보하고 있으면 가능합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자금은 현물에 대한 보상만이 아니다. 향후 생계비용 등이 포함된 것이다. 그래야 모두가 참여하고 그만큼 빨리 종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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