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현장에 활기를-후계농] 육가공 석사 좋은 직장 버리고 소와 행복 찾기
[축산 현장에 활기를-후계농] 육가공 석사 좋은 직장 버리고 소와 행복 찾기
  • 김기슬 기자
  • 승인 2019.09.20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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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재훈목장’ 대표

부친 흘린 땀 포기할 수 없어
70여 마리 소 ‘대물림’ 사육
첫해 송아지 폐사로 ‘화들짝’
소홀한 축사 관리 다시 정비

사육 구간 맞춤형 사료 급여
성장 구간별로 건초 제공까지
인공수정 통해 개체능력 극대
가족단위 체험형 목장이 꿈
(사진 위부터)재훈목장의 건강한 소들. 신축 우사 전경. 이동진 대표.
(사진 위부터)재훈목장의 건강한 소들. 신축 우사 전경. 이동진 대표.

최근 축산업계에 2세들의 진입이 활발하다.
각박한 도시생활을 벗어나 넥타이 대신 장화를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강원 횡성군 청일면 소재 재훈목장을 이끌고 있는 이동진 대표도 이중 하나다.
재훈목장은 축산 1세인 이재훈 대표(61)에서 2세인 이동진 대표(35)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새로운 희망을 쏘고 있다.

 

# 부친 영향으로 축산학과 입학
이동진 대표는 엄밀히 말하면 축산 2세다.
하지만 이 대표는 어릴 적부터 가업을 이어받을 목적을 갖고 축산에 입문한 다른 2세들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아버지 역시 16년 전인 지난 2003년, 45살의 나이에 축산에 발을 들인 늦깎이 축산인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한우에 뜻이 있던 그의 아버지는 어깨너머로 축산을 배우다, 우사에 적합한 부지가 나오자 과감히 한우산업으로 뛰어들었다.
이같은 아버지의 행보가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의 진로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 나이 또래의 여느 학생들처럼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아버지의 축산업 입문을 계기로 상지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 육가공 부문 석사학위 취득
입학만 했을 뿐 축산에 큰 뜻이 없던 이동진 대표는 학업을 게을리 했다.
하지만 군 제대 후 철이 든 이 대표는 ‘언젠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업을 이어 받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학업에 몰두했다.
실험실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한우를 키우게 되면 사료 배합비를 직접 짤 요량으로 사양학 실험실에 들어가 전문적인 이론을 무장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역대 최악의 구제역 발생으로 소값이 폭락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그는 1차 산업은 위험하다고 판단, 2차 산업인 육가공으로 방향을 틀었다.
또한 ‘이왕할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해 ‘천일염 및 GDL 첨가량에 따른 살라미의 품질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도 취득했다.
그는 이후 육가공 전문업체인 에쓰푸드 식품연구소에 입사해 소시지와 햄, 베이컨 등 신제품 개발을 당담하게 된다.

 

# 직장 vs 농장 갈림길서 고민
그러던 그는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게 됐다.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1년여 앞둔 지난 2014년, 그의 아버지가 동횡성농협 조합장에 출사표를 던지겠다고 선전포고한 것이다.
아버지는 조합장에 당선될 경우 마릿수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가업을 이어받지 않겠냐고 제안하셨고, 그는 이내 고민에 빠졌다.
물론 목장을 물려받을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것은 40대 이후의 계획이었다.
또한 현재 다니는 직장의 만족도도 좋았을 뿐더러, 힘겹게 석사 학위까지 취득하고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이것들을 다 포기하고 소를 키우는게 더 나을 것이란 확신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께서 십여 년간 피땀 흘려 일군 목장을 축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높은 연봉을 포기할 만큼 비슷한 벌이가 될까’‘나중에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일까’‘나중에 내 자식에게 떳떳한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한 끝에 그는 횡성지역 한우 2세 모임인 ‘우리회’를 찾아 2세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는 우문에 현답을 듣게 됐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키우는 것이 낫다.”

 

# 사표 던지고 고향으로 귀향
이듬해, 그는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고향인 청일로 돌아왔다. 
2015년 2월, 그의 나이 꼭 30살의 일이다.
이때부터 그는 70여 마리의 소를 관리했다.
몇 년간 공부와 일에만 매달렸던 까닭에 그는 곧 편한 생활에 젖어들었다. 말 그대로 이제껏 누려보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했다.
그는 ‘밥만 잘 주면 잘 크겠지’란 막연한 생각에 축사관리에 소홀하고, 나머지 시간은 취미활동에 할애했다.
때문에 첫해에는 송아지 30마리 중 4마리가 폐사했다.
설사 증상을 발견한 뒤에는 이미 손 쓸 시기를 훌쩍 넘긴 때였고,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송아지는 다른 소에 받혀 죽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그해 겨울, 한해 결산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던 그는 깨달았다.
만약 송아지를 다 살렸더라면 어림잡아 최소 2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더 창출했을거라는 것.
또한 가축을 키우는 일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 구간별 맞춤형 사료관리
이를 계기로 이동진 대표는 본격적인 목장 개조작업에 나섰다.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분은 사양체계였다.
기존 사양방식은 비육전기부터 비육후기까지 동일한 사료와 볏짚을 급여하는 형태였는데, 이는 관리가 수월한 장점은 있지만 등급출현율과 도체편차가 심하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때문에 그는 각 사육구간에 맞는 맞춤형 사료급여로 방식을 변경했다.
또한 모든 구간에 볏짚과 보릿짚만 급여하던 것에서 성장 구간별로 맞춤형 건초를 제공했다.
대학시절, 사양학 실험실의 경험은 이때 빛을 발했다.
그는 어린 송아지부터 비육 전까지는 톨페스큐와 연맥, 클라인을 적절히 배합하여 급여하고, 비육후기부터는 볏짚만 급여했다.
이 대표는 “소화기가 발달할 시기에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 비육에 많은 도움이 된다”면서 “전 개체가 골고루 먹이를 섭취할 수 있도록 사료와 건초를 급여한다”고 덧붙였다.


# 체험형 한우목장이 최종목표
이동진 대표는 또한 인공수정을 통해 개체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정액 선택시에는 근친계수에 특별히 신경 쓴다는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의 ‘한우개량’ 어플을 적극 활용한다.
어플에 등록해둔 암소의 개체번호를 통해 유전력을 계산해 최적의 정액을 선택하고, 이중 근교계수가 가장 낮은 정액을 선택해 사용한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 출하시기가 1~2달 앞당겨짐에 따라 생산비가 대폭 절감됐다. 또한 1+등급 이상 출현율도 85%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올해 우사시설을 대폭 확충했다. 지속가능한 축산과 생산비 절감을 위해선 규모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기존 1동이었던 우사는 현재 3동이 됐다. 사육마릿수 역시 기존 70마리에서 100마리로 늘었으며, 차근차근 규모를 키워 향후 최대 사육마릿수인 160마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15년 후 50살이 되는 해에는 300마리까지 마릿수를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이런 그의 최종목표는 관광형 한우목장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원시절 일본 북해도 소재 관광형 목장견학을 통해 체험형 목장으로서 한우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장기적으로 뒷산을 개간해 한우를 방목사육하는 한편, 전공을 살려 한우소시지 만들기 등 가족단위 체험형 목장으로 가꿔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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