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올 것이 왔다.”
지난 17일 경기 파주 돼지 사육규모 2500마리의 한 양돈농가에서 ASF(아프리카 돼지열병)가 발생했다. 정부를 비롯 전국의 한돈 농가에 초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ASF 발생을 두고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라던가, 정부와 농가의 태만과 안일함을 탓하는 소리는 일단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 올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지켜보는 마음도 마치 운동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의 노력이, 경기 당일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라고나 할까?
인체든 가축이든 그 모두를 병들게 하는 질병은 아무리 사전 예방과 차단 방역을 한다고 해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단지 그 시간을 늦추거나 약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질병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하지 않던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체질을 강화하고, 식생활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병원균이 오래 존속하지 않게 하거나, 확산되어 피해가 커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100% 차단 불가능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따르면 9월 현재 전 세계 53개의 국가나 지역에서 ASF가 발생했다. 유럽에선 2016년 9월 몰도바에서 발생한 이후 동유럽을 휩쓸었다. 그러던 ASF가 지난해 8월 중국을 시작으로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홍콩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그 세력을 넓혀오고 있었다.
5월 말 북한의 발병 소식을 접한 가축질병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국내에도 유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박주현 민주평화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6년부터 2019년 7월까지 불합격 휴대축산물로 판정된 건수만 30만 건에 달했다.
올해만 해도 7월 말까지 공항 또는 여객선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여행객들의 불법 휴대축산물 적발 건수만 5만7555건이다. 이중에 ASF 유전자 검출 건수도 총 19건이다.  
농림축산식품부‧농협‧대한한돈협회와 전국의 양돈농가들은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국가 방역과 국내 방역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ASF의 위험성을 홍보하는 한편 불법 휴대축산물을 유입하다 적발되면 부과하던 과태료 액수도 크게 상향 조정했다. 북한 발생에 따라 시급성을 인지한 후엔 잔반급여를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치사율 100%에 달하는 강력한 전염성을 보유하고 있는 바이러스성 돼지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예방하는 백신이 없는 관계로, 한국 상륙을 기정사실화 하고 방역훈련은 물론 각종 대책과 매뉴얼도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 한돈농가 ASF 전담관제를 통한 현장점검을 지속하고 정밀검사를 전국 모든 돼지농가로 확대해 실시하고 있다. 방목형 농장 울타리 등 방역시설 설치 등을 점검하고 야생멧돼지와 사육농가 간 접촉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울타리 설치‧보완 및 멧돼지 개체수 감소를 위한 포획틀 설치, 사전 포획 등을 실시했다.

 

준비된 힘 발휘할 때


3개 시도, 14개 시군에 특별관리지역 상황실을 설치‧운영하면서 위험요소 상시 관리와 전국 거점 소독시설을 통한 차량 소독도 강화했다. 외교부 등 관계부처, 지자체, 농협, 한돈협회 등 민간단체와 함께 ASF 예방수칙 홍보와 영상을 통한 대국민 홍보도 추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우려하던 일이 실제 벌어졌다. 더구나 이 농장은 잔반급여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외국 여행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도 최근에는 고국을 다녀오지도 않았다.
농식품부는 확진농장에서 김포시 소재 도축장으로 출하된 돼지가 납품을 위해 포장돼 가공장에서 보관하던 62마리 분 전량을 유통 중지시켰다. 또 인천시 소재 도축장으로 출하‧도축된 136마리 분에 대해서도 전량을 유통 중지시켰다고 밝혔다. 경기도와 인천시는 중지시킨 돼지고기 전량을 렌더링 방식으로 폐기했다.
농식품부는 도축장에서도 검사관의 검사를 실시해 이상이 있는 경우 시중에 유통되지 않고 있으니 국민들은 안심하고 국내산 돼지고기를 소비해도 괜찮다고 홍보했다. 불행하게도 ASF는 연천군 소재 돼지농장에서도 발생했다.
ASF 잠복기는 바이러스 숙주와 감염경로에 따라 4~19일 사이로 인식된다. 낮은 병원성의 ASF에 감염된 돼지는 감염 후 무려 70일 이상 감염력을 지속시킬 수 있다. 이러한 위험성과 100% 치사율이라는 무서움 때문에 지금 양돈농가의 두려움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근거리 내에서만, 주로 접촉에 의해서만 바이러스가 옮겨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부를 주축으로 민관 모두 그동안 준비해 왔다. 이제 모두가 힘을 합쳐 그것을 발휘할 때다. 그동안의 준비가 마침내 시험대에 올랐다.
“ASF의 유입을 100%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조기 근절방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러시아 ASF 전문가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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