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 지 「조암농장」


“가축, 주인 발소리 듣고 큰다”
세심한 관리로 이상 사전 예방
시설 개보수, 조명환기 시설 등
인증까지 1년 2개월 가량 걸려

돼지 본래의 습성 유지케 하자
질병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2억 투자…돼지에 자유 선사
결국엔 농장 수익으로 돌아와

미생물과 BM수 정기적 급여
환경이 개선되자 악취도 저감
철저한 기록은 비상상황 예방
전량 돈마루에…저돈가 극복

박덕재 조암농장 대표는 동물복지인증을 위해 돈방별 사육 마릿수를 줄이고, 자돈사에는 장난감으로 쇠사슬을 달아 놓는 등 사육 환경을 대폭 개선했다.
박덕재 조암농장 대표는 동물복지인증을 위해 돈방별 사육 마릿수를 줄이고, 자돈사에는 장난감으로 쇠사슬을 달아 놓는 등 사육 환경을 대폭 개선했다.

 

박덕재 대표.
박덕재 대표.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돼지가격 하락세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돼지를 출하 할수록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한돈농장이 동물복지 축산농장(이하 동물복지)으로 인증 받은 사례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이다. 경제 불황, 저돈가 시대에 동물복지 인증은 역발상의 과감한 시도로, 동물복지 인증을 고민하는 농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동물복지 인증을 위해서는 우선 돼지 사육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전체 사육 마릿수를 줄여야 하며 인증 초기에는 장부정리도 만만치 않다. 익숙해질 때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임에도 올해만 8월까지 3개 한돈농장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돼지가격이 좋았던 2017년, 2018년에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가가 년 간 한 농가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가 된다. 이에 한돈농가 중 가장 최근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조암농장’ 박덕재 대표를 만났다.

 

# 육계서 돼지로 품종 전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소재 조암농장, 3개 돈사에서 돼지 1184마리를 사육 중이다. 박덕재 대표와 아내가 운영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한돈농장들은 모두 톱밥돈사다. 조암농장은 이러한 틀을 벗고 전국 최초로 반슬러리(스크래퍼) 무창돈사이면서 올해 7월 22일자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조암농장이 스프래퍼 돈사로 인증 받음으로써 한국형 동물복지 농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박덕재 대표는 어려서부터 가축을 좋아해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돼지, 소, 닭 등을 키웠다. 적은 마릿수에 불과했지만 이는 훗날 자녀 공부도 시키고 나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게 하는 박덕재 대표의 평생 직업이 됐다.
1993년 지금의 농장 자리에서 육계 사육을 시작했다. 친구의 권유로 병아리 3만수를 키웠다. 힘은 들었지만 나름 보람을 느끼던 시절이다. 그러나 2001년 1월 18일 폭설로 계사 지붕이 내려앉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후 3시경 계사 천장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우그러졌다”며 “당시 아내가 계사 안에 있는 줄 알고 무척 놀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폭설로 인한 계사 지붕 붕괴 사건은 가축사육 품목을 닭에서 돼지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같은 해 8월 10일 계사를 돈사로 리모델링하고 처음 돼지를 입식시키던 날을 잊지 못한다. “육계사육을 만 7년 정도 했다”며 “주변에서 병아리에 들이던 정성의 3분의 2만 들이면 돼지를 잘 키워낼 수 있다고 권했다”고 전했다.
박덕재 대표는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품목 전환에도 큰 리스크 없이 돼지를 키웠다. “가축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에 공감한다. 한번 가서 못 본 사항을 다시 가서 보면 보일 때가 많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돼지를 분리해 환돈 칸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농장 성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 동물복지 인증을 위한 변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는 동물이 본래의 습성 등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관리하는 축산농장을 인증하는 제도다. 2012년 산란계를 대상으로 도입해 현재 △양돈(2013년) △육계(2014년) △한우·육우, 젖소, 염소(2015년) △오리(2016년) 등 7개 축종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한돈농장에서 동물복지 인증을 받는 사례는 산란계나 육계에 비해 많지 않다. 2019년 8월 13일까지 우리나라 동물복지 인증 축산농장은 총 234호다. 이중 한돈농장은 15호로, 전국 한돈농장 6188호 중 약 0.2%에 해당한다. 연도별 한돈농장 인증 수는 △2014년 1호 △2015년 4호 △2016년 5호 △2017년 1호 △2018년 1호 △2019년(8월까지) 3호 등이다. 조암농장은 이들 중 가장 최근에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박덕재 대표는 “동물복지 인증 이전에도 친환경으로 돼지를 사육하려 노력했다. 어느 날 문득 이왕 돼지를 키울 바에는 더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돼지들이 편해야 성적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악취 저감 방안도 함께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인증을 위한 소요기간은 2018년 5월부터 2019년 7월까지 1년 2개월 가량이다. 시설 개보수, 조명과 환기 시설, 사육두수 감축 등을 중점 실시했다. 돼지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질병과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며 돼지가 최대한 습성대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조암농장은 주어진 환경에서 가능한 일을 중심으로 노력, 한국형 동물복지 축산농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으려면 많은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우선 막대한 시설 투자비용이 들어간다. 2억원 가량이 소요됐다. 원형 급수기 외에 추가로 물 급수기를 달아서, 돼지들이 물도 먹고 장난도 칠 수 있도록 했다. 쇠사슬을 달아서 빨아먹고 장난치도록 했다. 윈치 커튼으로 자연환기를 시키던 돈사를 전체적으로 리모델링을 실시해 무창 돈사로 바꾸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이후 휀을 설치하고 터널 환기로 바꿨다.
상시 사육마릿수도 줄였다. 기존에 돼지 1400마리를 사육했지만 동물복지 인증을 받기 위해 1184마리로 216마리(15.4%)를 줄였다. 돈방 당 마릿수도 18마리에서 16마리로 바꿨다. 
새끼돼지는 이빨을 자르지 않기 때문에 모돈에 상처를 많이 낸다. 이것도 리스크로 작용하지만 감수하고 있다. 꼬리도 자르지 않는다. 악취 저감을 위해 마리당 4000원 가량의 냄새저감 제품을 돼지에게 급여하고 있고, 지역 기술센터에서 제공하는 미생물과 BM수를 정기적으로 뿌리고 있다. “돼지들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 소비자들도 좋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악취 저감 후 돼지들의 활력이 향상됐다”고 밝혔다.

 

# 까다로운 장부정리
박덕재 대표가 동물복지 인증을 받으면서 고생한 사항이 있다면 바로 장부정리다. 이전에도 장부정리를 잘하는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막상 동물복지 인증을 추진하면서 더욱 촘촘해진 장부정리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이런 것까지 기록으로 남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한 것까지 모두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돼지 입식, 출하, 폐사체 관리 현황, 사료구입, 영양성분, 급여방법, 사료섭취량, 음수량, 돈사 일일 최고 및 최저 온도, 청소·소독 사항, 깔짚 소요 내역, 구입 증빙자료, 약품·백신 구입·사용 내역, 돼지 건강상태 점검 사항, 출하량 및 운송차량, 거래 내역 등을 작성해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수해, 화재, 정전 등 긴급 상황에 대한 대비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이라면 원래는 이 같은 일들을 다 해야 했었는데 그 동안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동물복지 인증 과정을 통해 알게 됐다”며 “인증 과정이 까다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다”고 전했다.

 

# 돈마루로 전량 출하
박덕재 대표가 저돈가 시대임에도 과감한 시도가 가능했던 가장 큰 힘은 정성들여 키운 돼지를 돈마루로 전량 출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하 걱정이 없기에 동물복지 인증에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다. “돈마루 직원들은 동물복지를 인증하는 과정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 있을 때 관련 지식이 풍부한 돈마루 직원들의 자세한 설명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동물복지 인증의 가치를 아는 안정적인 출하처가 있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돈마루는 사료, 농장, 육가공을 바탕으로 소비자가 요구하는 식품을 제공하는 축산 식품 전문 기업이다. 외형적인 성장은 물론 현재 국내 축산물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품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회원농가에 대해 농장에서부터 가공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덕재 대표는 “올해로 내 나이 63세다. 돼지 사육을 앞으로 몇 년 동안 더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우리농장에서 돼지들이 편안하게 지내다 출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생산성 향상에 중점을 두고 돼지를 키워왔다. 그러나 국민들 생활수준 향상과 풍부한 먹거리 등을 감안하면 양보다 질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며 “안정적인 출하처만 확보할 수 있다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동물복지 인증을 적극 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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