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라-특별기고] ‘돼지 잡는 날의 축제’…즉석 육가공의 시작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라-특별기고] ‘돼지 잡는 날의 축제’…즉석 육가공의 시작
  • 축산경제신문
  • 승인 2019.09.0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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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염지가공 작업 끝나면
마을사람들 광장에서 파티
지금도 정통 레스토랑 가면
메뉴판 뒤편에 ‘모듬메뉴’가

우린 정책 농가단체 위주로
육가공품 철저히 외면 당해
몇몇 인기부위에 편중되면서
소비가격 왜곡 현상 심화돼

고객과 가까운 위치가 중요
공급 받을 공동제조장 필수
즉석 가공 즉석에서 판매를
시설 공유로 리스크 줄여야
한국형 메쯔거라이는 가능한가?

 

중세 이래 독일의 산골마을에서는 주기적으로 ‘돼지 잡는 날의 축제’가 벌어지곤 했다. 그리 많지 않은 가구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주민들이 필요한 식량을 얻기 위해 식육 마이스터를 초빙해 마을 한가운데 광장에서 돼지를 잡았다. 기절시켜 거꾸로 매달아 놓은 돼지의 동·정맥을 끊어 피를 받아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낸 다음 커다란 도끼로 등뼈를 쪼개어 이분체로 나눈다. 그리고는 각 부위별로 염지소금을 문질러 햄을 만들기도 하고, 살코기와 지방을 갈아 소시지를 만들어 연기를 쏘여 주기도 하며, 돼지껍질, 머리고기, 간, 혈액 등을 이용해 간소시지, 순대소시지, 편육소시지 등을 만들고, 돼지족발을 삶기도 했다.
해가 넘어갈 때쯤 되어 모든 작업이 끝나면 이제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광장으로 나와 금방 만든 소시지를 안주삼아 맥주파티가 벌어지게 된다. 이름 하여 비어가든, 비어광장, 비어파티 등으로 불리는 ‘돼지 잡는 날의 축제(Schweine Schlacht Fest)’가 펼쳐지는 것이다. 지금도 독일의 아주 오래된 전통 레스토랑에 가보면 메뉴판 맨 뒤편에 이 ‘슐라흐트 페스트’라는 모듬 메뉴가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소·돼지 한 마리의 전 부위를 활용하여 다양한 제품들을 즉석에서 가공해 먹을 수 있는 육제품으로 진열 판매하는 점포가 독일에 있는데 이곳이 바로 식육 마이스터에 의해 운영되는 가내수공업형 식육전문점으로서 ‘메쯔거라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 정부 주도의 식육유통 구조 혁신
1990년대 초 WTO 체제가 가동되며 축산물 수입개방 일정이 공표됨에 따라 그동안 수입소고기 판매를 통해 적립해 놓았던 축산발전기금을 활용해 대대적인 식육유통구조 현대화 정책 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축종별 계열화 사업, 대일본 양돈수출단지화 사업, 축산물등급판정제도 도입에 따른 한우 고급화 사업, 각 도별 축산물종합처리장 시설지원 사업, 한우전문점 사업, 브랜드 가맹점 사업, 식육처리기능사 제도 도입, 축산물위생교육원 개설 등의 정책지원 사업들이 전광석화처럼 전개됐었다. 
이 모든 정책 사업들이 축산농가 및 축산단체 위주로 펼쳐지다 보니 도축과정 이후의 육가공 분야와 전통적인 식육판매 분야는 철저히 외면당하며 대고객 접점에서의 시행착오는 물론 몇 몇 인기부위 위주의 소비와 가격 왜곡 현상이 심화됨으로써 상당부분 수입육에게 시장을 내어주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
1990년대 말 발생한 구제역 파동은 대일 돈육 수출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했고, 싫든 좋든 전 부위를 국내에서 판매해야만 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들어와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축질병 사태는 정부 정책을 가축방역에 집중토록 했고, 친환경 축산방식의 도입을 촉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양돈 농가의 시설 및 사육환경은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급기야 2010년 전국을 휘몰아쳤던 구제역 사태로 300만두 이상의 돼지를 땅에 파묻어야만 했다. 소 역시 30만 마리 이상 매장시켰다고 한다. 2012년 쯤 구제역 사태가 수습되고 소, 돼지의 입식이 빠르게 진행되자 사태 이전보다 사육두수는 많아졌는데, 수입육으로 갈아탄 소비자들이 국내산 축산물로 다시 돌아오지 않자 가격이 불안정해 지며 생산자들의 위기의식이 고조되어 가고 있었다.

 

# 한국형 메쯔거라이의 탄생
이즈음 정부에서는 매달 물가관계 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있었다. 그 해 하반기 즈음의 물가관계 장관회의에서 축산물 가격 안정화 방안을 논의하던 중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대표의 건의로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정육점에서 다양한 가공품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허용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독일의 메쯔거라이 사례를 예로 들었단다. 마침 그 자리에 장관대신 참석한 보건복지부 차관께서 독일에서 공부한 분으로서 메쯔거라이에 대한 내용을 잘 알고계시는 바람에 쉽사리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입장에서는 오랜 숙원사업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해 최대한 신속하게 법제화의 절차를 밟아 나갔고, 2013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며 그 해 10월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식육즉석판매가공업’을 신설함으로써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정육점에서 다양한 가공품을 즉석에서 가공해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식육판매업에서 식육즉석판매가공업으로 전환하는 매장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난 2019년 현재 약 1만300개소의 식육즉석판매가공업소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이들에게 즉석육가공 기술의 보급이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의 업소에서 정육과 함께 양념육이나 돈가스 내지는 떡갈비 정도를 취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소비자공익네트워크’의 ‘식육즉석판매가공업 실태조사’ 결과에서 지적하고 있는 실정이다. 

 

# 한국형 메쯔거라이의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
한국형 메쯔거라이 사업은 지난 35년 동안 필자를 비롯한 몇 몇 뜻있는 인사들에 의해 끊임없이 시도되어 왔고, 지금도 계속해 검증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아직 “누구든 이 방식으로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제시할 만한 성공사례는 완성되지 않았다. 다만 지난 35년 동안 수없는 도전과 실패를 거울삼아 성공할 때까지 갈고 닦아나갈 성공모델의 사업계획은 마련되어 있다. 그 계획의 일단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객과의 접점을 이루는 식육즉석판매가공업소는 가능한 한 고객과 가까운, 즉 목이 좋은 위치에 자리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런 상권의 단위면적 당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따라서 충분한 면적을 확보할 수가 없다보니 즉석가공을 위한 공간이 충분히 허용되지 않아 이런 판매장에서의 제조활동은 수익을 창출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이곳에서의 가공은 극히 제한적인 퍼포먼스에 머무르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판매할 다양한 육가공품은 후방의 공급기지인 공동제조장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역할 분담의 구조가 갖춰져야 했다.
식육즉석판매가공업은 즉석에서 가공한 제품을 그 자리에서만 판매해야 한다. 다른 업소에 납품하거나 유통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식육가공업으로 허가를 받은 가내수공업형의 소량 다품목 생산방식으로 운영되는 작은 규모의 도시형 육가공장이 필요했고, 이와 같은 시스템을 식육학교(훔메마이스터슐레) 33명의 교육과정 수료생들이 십시일반 공동 투자한 법인으로 ‘주식회사 휴먼메쯔거라이’를 설립했다. 이는 육가공 시설을 공유함으로써 투자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편 교육 수료생들이 운영하는 신개념 정육점을 ‘OOO 미트델리’로 자신의 이름을 붙여 운영토록 해오고 있다.

 

# 게임 체인저로서의 미트델리샵
이들은 돼지 지육의 발골·정형에서부터 소시지, 떡갈비, 햄(콜드 컷 포함) 등의 즉석가공은 물론 수제 핫도그, 수제 햄버거, 수제 샌드위치 등의 즉석메뉴 조리에 이르기까지 즉석 육가공 기술을 습득했다.
그런 이들이 유동인구가 많은 역세권이나 학원가 등의 목이 좋은 최소한의 면적(49.5㎡ 내외) 내에서 최소한의 가공·조리 시설 및 진열·판매 장비를 갖추고 하루에 돼지 한 마리를 발골·정형해 인기 부위는 정육으로 백화점 가격의 반값에 판매함으로써 지육 구입가격을 상쇄시킨다.
나머지 등·안심, 뒷다리 부위육으로는 소시지, 떡갈비, 햄/콜드 컷을 만든다. 이때 즉석 육가공품의 원재료비는 공짜이고, 메뉴로 조리 할 때의 빵, 채소, 소스, 스프, 포장용기 등의 재료비만 실비로 원가에 반영하면 매우 저렴한 핫도그와 햄버거 그리고 샌드위치를 상품화 할 수 있게 된다. 이 정육점표 간편식은 스프와 함께 제공됨으로써 한 끼 식사로서의 완성도를 높여주면서 유명 M사, L사, S사 제품의 반값에 든든한 식사를 제공하게 된다. 정크 푸드로 오인 받아 온 패스트푸드가 즉석에서 가공된 건강한 육제품으로 만들어지는 ‘익스프레스 에코푸드’로 재탄생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돼지 지육의 전 부위가 고부가가치 편이식품으로 상품화 되어 한꺼번에 모두 판매되는 식육즉석판매가공업소의 수익구조가 검증되어 빠른 속도로 확산할 수 있게 되면 우리나라의 양돈 산업도 안정적인 판매망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익모델에는 가격 단순화 및 상품 단순화 전략이 적용됐고, 식육가공 기술의 융·복합화가 이뤄져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중간자로서의 ‘건강한 먹거리 생태계’ 구축을 위한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특히 미트델리샵은 우리나라 정육점을 모두 대체하게 될 게임 체인저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미트델리샵에 공동 제조장인 메쯔거라이에서 만든 다양한 육가공품과 관련 상품들을 공급해 진열·판매토록 함으로써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되어 골목상권 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수익모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임성천 훔메마이스터슐레 교장은?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축산가공학과 학사(건국대학교농축개발대학원 축산물이용학과 석사) 및 독일 BONN 식육제조 과정을 졸업했다. 198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식육전문학교에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식육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했다.
주요 경력으로는 제일제당 백설햄 개발팀장, 안성축산물진흥공사 사장, 학교법인 건국대학교 건국햄 사장, 훔메유통 주식회사 대표이사, (주)GNS 맘앤팜 사장(제너시스 BBQ 그룹), 농협축산물위생교육원 즉석육가공 강사, 축산기업중앙회 기술고문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훔메마이스터슐레 교장 및 (주)휴먼메쯔거라이 대표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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