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가 현실화되자 구한말 조선이 멸망한 원인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각축이, 21세기 현재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런 대비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며 여의도에서, 일부 언론에서 정부를 맹비난한다.
일본이 핀 포인트 규제를 하면서 경제전쟁을 선포했는데,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강구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거봐라, 우리가 뭐라 그랬냐”며 잘됐다는 식이다. 
중국은 강대국들에게 뜯겨 먹히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일본도 미국의 강압으로 개항하면서 제국을 내세워 ‘정한론(征韓論)’을 토대로 내륙으로 세를 넓히려 했다. 러시아는 얼어붙지 않는 부동항이 필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선에는 자원이 풍부하지 않아 늑대처럼 달려드는 유럽 열강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왕실과 조정은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었다. 어떻게 변하든 기존에 누리던 기득권만 누리면 그만이었다.

 

절규도 비교경제로


외세를 몰아내자고 죽기로 싸운 이들은 태반이 백성이다. 조정대신들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갈아타면 지금까지 누려온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외세에 반기를 든 백성들을, 앞장 서 힘으로 누르면 그뿐이다.
소위 정치가라는 부류와 여론을 주도한다는 언론이 그 당시와 똑같이 정부가 무능하다고 한다. 왜 이미 끝난 일제강점기 때의 사소한(?) 일들을 들먹이느냐고 한다. 일본군 성노리개로 끌려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받은 위안부 할머니들, 일본 군수물자를 만들기 위해 강제로 끌려가 겨우 개죽음을 피해 귀국한 징용노동자들의 절규도 그들에겐 단지 비교경제로 판단되는 모양이다.  
만주를 떠돌아다니셨다는 할아버님은 20여년 전에 96세에 돌아가셨다. 할아버님은 항상 “일본놈을 믿지 마라. 일본과 잘 지내자고 하는 그 놈이 친일파”라고 말씀하셨다. 우린 어린 나이에 그렇게 일본에 대해 배우며 자랐다. 어느 집이건 할아버지 세대는 온전히 일제강점기를 겪었으니 말이다.
그러한 감정은 시간이 흐른다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35년이다. 그것도 1910년부터 1945년까지만 포함해서 그렇다. 1910년에 태어난 사람은 청년기를 지나 35세에 광복을 맞았다. 그러니 제국주의의 잔재를 벗어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끼리 싸울 땐가?


게다가 광복 이후 미군정을 시작으로 좋은(?) 나라 미국의 그늘에서 지금껏 대한민국 사회가 유지되어 왔다. 항일과 반공이 뒤섞여 100여년을 보냈다. 그때마다 정권은 국민들에게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백성, 즉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항상 뭔가 부족하고 그래서 가르쳐야 한다는 같잖은 엘리트 시각이다. 위기가 다가오면 백성을 무시하면서 함께 뭉치려하지 않고, 의견이 다른 당파끼리 다툼부터 시작한다. 그게 대한제국 멸망의 원인이다.
19세기 영국 잉글랜드 출신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이자 작가인 이사벨라 루시 버드는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조선인에 대해서 처음엔 “조선인은 의심과 나태한 자존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노예근성을 갖고 있다”고 주저 없이 평했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봐야 관리들에게 빼앗길 것이 뻔한 현실에서 돈 벌 필요도 삶의 의욕도 잃어버린 사람들이고, 제일 열등하고 가망 없는 민족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그는 간도에서 전혀 다른 조선인들을 보게 된다.
“이곳에서 조선인들은 번창하는 부농이 됐고, 훌륭한 행실을 하고 우수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로 변해갔다. 이들 역시 조선에 있었으면 똑같이 근면하지 않고 절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기근으로 도망쳐 나온 배고픈 난민들에 불과했다.
이들의 번영과 보편적인 행동은 조선에 남아 있는 민중들이 정직한 정부 밑에서 그들의 생계를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천천히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내게 주었다.
훈춘은 산악지역의 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에 조선인들에 의해 개발돼 기름지고 관개가 잘된 계곡으로 넘쳐 있었다. 황량하고 음울하고 바람에 씻겨진 듯한 곳은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비숍은 그곳에서 러시아인이나 중국인보다 부유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조선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유럽인 못잖은 잠재력을 인정했다. 그는 무능하고 부패하고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는 기득권층이 조선을 망쳤다고 결론 내렸다.
“조선 민중들은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수천 년에 걸친 지배층의 지배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끝내 억압에서 벗어날 역량과 조직을 만들지 못했다. 1862년 진주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농민항쟁도, 1895년 전라도 고부 땅에서 시작해 부패한 정부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장렬히 싸웠던 농민전쟁도 끝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얄팍한 지식으로 백성을 분열시키지 마라.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당신들이 위기를 만들어 놓고 항상 말하지 않았던가 위기가 기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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