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은 알고나 있는지…
패러다임은 알고나 있는지…
  • 권민 기자
  • 승인 2019.07.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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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말은 참 많이들 하고 그만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니 농가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바뀌긴 바뀐 것 같은 데 도대체 뭐가 바뀌었고 그래서 뭘 바꾸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바뀐 것에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희한한 말뿐이다.
패러다임의 개념은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쿤이 창안했다. 패러다임은 당시 시대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통상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고의 틀을 말한다.
물리학을 전공했으면서 역사와 고전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그는 하버드 대학원에서 교양강의인 과학사 과목의 조교로 있으면서 과학사를 공부하게 되고, 과학사에도 역사처럼 사고의 틀이 완전히 변하는 ‘혁명’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과학적 사고의 변화는 개별적 발견이나 발명의 축적으로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교체’에 의해 혁명적으로 이뤄지며 이러한 변화가 바로 ‘과학혁명’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과학이란 지식을 축적하며 발전한다고 생각하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의 설명들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패러다임의 개념이다.

 

보는 관점 각기 달라


예를 들면 번데기가 나비로 변할 때 걸리는 시간은 단 하루지만 그 사건은 나비의 모든 삶을 변화시킨다. 또 지구와 태양의 관계에 대해 천동설은 지동설이 나오면서 완전히 사라졌고, 뉴턴 시대에 해결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아인슈타인이 해결하면서 서로 별개의 과학관이 생겨난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재의 축산업이 농가의 부업형태에서 따로 떨어져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축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부업시대의 사육방식은 점차 사라져가고 밀집식 사육방식으로 전환됐다.
100만에 가깝던 축산농가들이 30~40년만에 거의 9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축산농가는 ‘친환경’이라는 새로운 사육방식의 도입을 강요받고 있다.
축산업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학에서의 패러다임 전환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패러다임의 개념이 ‘당시 시대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통상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고의 틀’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쿤의 주장대로라면 지금 통상적으로 일반 시민들이 공유하는 사고의 틀이 바로 ‘친환경’이라는 점이 바로 패러다임이 친환경으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친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이 농식품부와 소비자와 농가가 각기 다르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해당 부서는 공책에 줄긋듯 “응, 친환경? 주변에 피해주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가축을 사육하는 것이지”한다.

 

무지에서 오는 결과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동물이 학대당하지 않고 (도축장에 올 때까지)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죽일 때에도) 고통 받지 않게…(고기로 변했을 땐) 오염되지 않고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하지만 사먹을 땐) 싸게…”다.
하지만 정작 축산농가의 입장에 서면 “지금까지의 사육 방식을 한 번에 바꿔야 하기에 그 시설을 갖추려면 돈이 들고, 밀집사육에서 벗어나려면 같은 넓이의 농장에서 이전보다 적은 수의 가축을 키워야 하니 이익이 줄고,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소비자가 그에 해당하는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없으니 이중삼중으로 손실을 입게 된다”다.
규정을 만들고 그 규정에 따라 규제하는 것은 쉬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장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으면 간단하게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현장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깊을수록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관계당국의 규정 문구 하나에도 피해를 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왕이라고 하지만 소비자의 요구는 ‘정당’할 때 수렴될만한 것이다. 소비자는 뚜렷이 구별되는 부류가 아니다. 생산자도 소비할 때는 당연히 소비자다. 그런 이해 없이는 어떤 정책도 ‘정당’할 수가 없다.
분명히 축산업의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하지만 그 바뀐 패러다임 속에서 모두가 정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까?
환경 친화적, 그냥 친환경이라고 하자. 지금 친환경은 축산농가나 축산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나, 친환경을 정착시키는 정책을 수행하는 공무원이나 절실하게 ‘공유’하는 사고의 틀이다. 하지만 그 방법과 과정은 너무 큰 차이가 난다.
여기서도 관계당국은 ‘압축’경제의 사고가 지배적이다. 친환경을 추진하고 있는 축산선진국의 온갖 규정을 도용해, 그들도 ‘감히’ 추진하지 못하는 한꺼번의 일처리를 시도한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자랑한다. “봐라, 우리는 이렇게 친환경을 추진하고 있다”고.
압축경제의 결점은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을 삭제한 것이다. 그러니 그로 인해 온갖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단 만들어놓고 문제가 생기면 유예기간을 주고, 그때가 되면 “당신들의 잘못”으로 몰아부친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해당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다. 그러니 패러다임에 대해 무지하다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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