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미래산업이라고?
농업이 미래산업이라고?
  • 축산경제신문
  • 승인 2019.06.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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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투자가로 정평이 나 있는 로저스 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은 2014년 서울대학교에서 가진 특강을 통해 “경영학 석사과정을 벗어나 당장 농과대로 가라”고 일갈했다. 앞으로 유망한 투자 대상은 농업이라고 했다.
그는 아마도 ‘세계는 진보한다’는 역사의 진보론을 믿어서인지, 아니면 초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생기는 농촌의 공백을 ‘기회’로 본 것인지 모른다.
‘진보’는 게오르크 헤겔과 칼 마르크스 그리고 찰스 다윈의 공통된 주장이다. 헤겔은 인식이나 사물 그리고 역사가 정(正)‧반(反)‧합(合)의 3단계를 거쳐서 전개된다고 했다. 예를 들면 현재 모순이 있음에도 이를 모르고 있다가,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드러나고, 이와 같은 모순에 부딪힘으로써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필연적으로 5단계로 발전해 나간다고 했다. ‘원시공동체→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공산주의’다.
한편 다윈은 생물은 생활환경에 적응하면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고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전·기업화는 필연적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을 비롯 모든 나라들은 농업 중심에서 공업 그리고 고차원의 서비스업으로 나아간다. 산업 혁명 이전의 시대만 해도 농업은 산업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산업 혁명 이후 농업은 전체 산업에서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1인당 경작 규모는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농업의 전·기업화는 필연적인 수순이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면서 영세농가들의 이탈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로저스가 농과대로 가라고 일갈할 수밖에.
또한 초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농업 인구의 자연스런 공백도 가속화된다.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대규모 자본이다. 농민을 위한 정책을 펴느냐, 산업을 위한 정책을 펴느냐는 정부의 몫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10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진보는 ‘찰라’의 순간이겠지만, 모든 변화에는 그 변화를 몸으로 체감하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있다.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에 따라 희생되거나 덕을 보는 상반된 부류가 있기 마련이기에 그렇다.
네덜란드와 같은 농업 강소국의 예를 들면서 우리도 그곳에서 배워야 한다고…그 나라에서는 첨단온실, 축사 등 관련 산업도 세계 최고이며 ‘AI’농장까지 등장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물론 농업의 대형‧첨단화는 관련 산업의 발전도 촉발한다. 사물인터넷이나 ICT 기술이 접목되고 최첨단 농장이 나타나면서 끊임없이 연구개발이 이뤄진다. 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농업이 몇 개의 거대 자본에 의해 움직여지면 그 많은 농민들의 처지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사회적 정의로 봐야


결국 농업이 미래산업이란 이야기는 현재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민의 몫이 아니라, 농민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이후 거대 자본의 몫이라는 말이다.
현재의 농업과 축산업을 역사적 관점이나 국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항상 ‘희생’은 그 산업에 종사하는 농축산인들의 몫이다. 지속 가능한 축산업을 지향한다는 정부는 해마다 농업 예산을 홀대한다. 내년에는 498조9000억원이라는 슈퍼예산을 편성하면서 농업 부문은 오히려 삭감했다.
축산 강국들과 잇따른 FTA로 수입 축산물의 시장 잠식이 가속화되고, 무허가 축사 적법화에 가축분뇨 처리, 냄새 저감 대책 등 현재 축산업은 완전히 힘이 고갈된 상태다. 이는 자연스럽게 축산농가를 삶의 터전에서 좇아내려는 명백한 ‘음모’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 중심의 농정 체계’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가 없게 됐다. 4차 산업혁명을 들먹이며 돼지, 가금, 한우, 젖소 등을 사육하는 많은 농가에게 스마트 팜 도입을 부추긴다.
스마트 팜은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극복하고, 수입 농축산물과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농축산 생산물의 고부가가치 등 농축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은 대부분이 현재 농축산인들이 아니다. 때문에 농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존 롤스의 ‘사회적 정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 맞다. 그는 정의의 제1원칙으로 각자는 모든 사람과 공존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원칙으로는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가장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편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소수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자는 수가 적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의미한다. 그 속에 포함되는 것이 바로 농축산인들이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민간기업 상생기금 출연을 해달라고 기업들에게 ‘구걸’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되며, FTA로 인한 희생의 대가는 당연히 분배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정의롭다는 것이다.
FTA에 따른 수혜와 손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뚜렷하다. 소수 집단이나 개인의 희생을 묵과하는 사회는 전체주의적으로 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지금 농촌의 문제는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정의’의 개념으로 풀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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