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 권민 기자
  • 승인 2019.05.10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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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 어머니가 어느날 밖에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났다.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집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자, 아무 망설임도 없이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 두 아들을 이불에 싸서 나왔다.
이불에 싸인 아이들의 몸은 무사했지만, 어머니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다리를 다쳐 절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두 아들을 키웠다.
어머니의 이러한 희생 덕분에 큰 아들은 도쿄대학에, 작은 아들은 와세다 대학에 각각 수석으로 입학했다.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 졸업하는 아들을 보고 싶은 어머니는 먼저 큰 아들이 있는 도쿄 대학을 찾아갔다. 수석 졸업을 하게 된 아들은 졸업과 동시에 큰 회사에 들어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아들의 눈에 수위실에서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다. 수많은 귀빈들이 오는 자리에 거지 어머니가 오는 것이 부끄러웠던 아들은 수위실에 “그런 사람 없다고 하라”고 전했고, 교문에서 출입이 거절당한 어머니는 슬픈 얼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큰아들에게 버림받아 서러움에 자살을 결심한 어머니는 죽기 전에 둘째 아들을 한 번 보고 싶어 졸업하는 와세다 대학을 찾았다.

 

부모 희생은 당연?

 

하지만 도쿄 대학에서의 일 때문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교문 밖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때 마침 이러한 모습을 발견한 둘째 아들이 절룩거리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 나와 어머니를 업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둘째 아들은 행여 어머니가 자신의 몰골 때문에 졸업식에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교문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사람을 잘못 봤다”며 막무가내로 뿌리치려 했지만, 아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어머니를 졸업식장의 귀빈석 한 가운데 앉혔다.
값비싼 액세서리로 몸을 치장한 귀빈들은 행색이 거지꼴에다 흉하게 화상자국이 남은 여성이 갑자기 자신들의 자리에 앉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역시 몸 둘 바를 몰랐다. 수석으로 졸업하는 아들이 답사를 하기 시작했다.
귀빈석에 초라한 몰골로 앉아 있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자신을 불속에서 구해내느라 온 몸에 화상을 입으셨으며 그 때문에 구걸을 해서 공부시킨 어머니의 희생을 설명했다. 그제야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고였다.
이 소속은 곧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후에 둘째 아들은 큰 회사의 오너 사위가 되었다. 반면에 어머니를 부끄러워한 큰 아들은 입사가 취소되고 말았다.
오래 전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최근 지인이 감동적인 이야기라며 보내준 내용인데, 자식을 위해서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이가 바로 어머니다.
최근 친모가 자신의 딸이 계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신고하자 계부의 보복살인을 공모한 일이 있어 충격을 던져주었지만 대다수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감수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자식은 과연 부모 사랑에 얼마나 많은 보답을 하면서 살까? ‘내리사랑’이라는 자기변명을 앞세워 오히려 그 사랑을 배신하고 있지나 않는지….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포천의 온천을 다녀오다 이동갈비를 먹으러 들어갔다. 수중에 5만1000원 밖에 없었지만 당시 1인분에 1만7000원 하던 이동갈비는 양도 많았지만, 아이들의 평소 먹는 양이 적었던 지라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만 위하는 자식


그날따라 엄청난 속도로 먹어대는 아이들의 식욕에 아내와 난 고기 몇 점을 먹지 못했다. 그리고 더 먹겠다고 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와 나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것은 그때 더 먹겠다는 것을 못해주었을 때의 감정이다. 그것이 우리 부모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멋모르고 투정부리던 시절, 그것을 못해주는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아픈 것일까를 왜 우리는 나중에야 알고 힘들어 하는 걸까? 자식이 아프면 애간장이 녹는데, 부모님이 아프면 “그렇게 아플 동안 병원에 안가시고 뭐했느냐” 핀잔을 주는 걸까?
자식이 품에서 떨어져 있으면 무슨 일이 없는지 수시로 연락하면서 왜 부모님에게는 연락하기가 그렇게 힘들까? 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부모가 세상을 뜨고 나면 그토록 슬퍼하는 걸까?
누군가 말한다. 그것은 부모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슬픔에서가 아니라,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을 자신의 처지에 대한 슬픔 때문이라고.
누구나 살아오면서 각자만의 슬픔이 있다. 그것은 오롯이 각자가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부모의 슬픔 대다수는 자식으로 인한 것들이 태반이다.
무엇인가를 더 해주지 못해서, 자식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서…. 자식은 잊지만 부모는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나이가 들어가면 그리움은 자식에게가 아니라 부모를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것이 슬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5월만큼은 부모를 그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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