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바이러스를 몸에서 배제하는 기능을 하는 물질인 항체를 만들어 낸다.
이 같은 항체에 의해 다음에 똑 같은 바이러스가 몸 안으로 들어와도 감염증에 걸리기 어려워진다.
이런 기능을 면역이라고 한다. 백신 접종의 목적은 이러한 항체나 면역의 기능을 이용해서 무해화(無害化)한 바이러스인 백신을 체내에 넣어서 면역을 만드는 것이다.
감염되기 전에 백신을 접종하면 감염증의 예방이나 증상이 중증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백신을 접종했는데 질병에 걸렸다’는 것으로 백신접종의 효과에 의문을 갖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여섯 살 딸을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어린이집엘 가니 선생님께서 “아이가 미열이 있는 것 같다”며 주말 동안 잘 지켜보고 보살피라고 했다.
미열이라는 말에 가벼운 감기인줄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딸아이가 독감 백신을 접종했기에 더욱 그랬다. 토요일까지 미열이 이어졌지만 날씨가 화창해 가족이 집주변을 산책했다.
딸아이도 기분이 좋은지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 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저녁이 되어 딸아이가 열이 더 오른줄도 모른 채 대형마트에 식료품을 사러 갔다.
그런데 마트 주차장에서부터 딸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머리가 어지럽다며 쇼핑카트에서 기대어 누웠다.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상당한 듯 했다. 쇼핑을 얼른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체온을 재어보니 38.5도였다. 해열제를 먹이고 체온을 낮추기 위해 물수건으로 몸을 닦기를 반복했지만 열은 쉽게 내려가지 않고 더욱 기세를 이어가 40도에 육박했다.
다음날 일요일 오전 체온이 40도를 넘어섰고, 급히 병원에 가보니 B형 독감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딸아이가 독감 4가 백신을 접종했기에 당황스러웠다.
딸아이가 왜 독감에 걸렸을까? 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최근 며칠 동안의 일들을 떠올려 기억을 더듬었고, 결국 백신을 너무 맹신한 내 잘못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미열이 있을 때부터 조심해서 외부 활동을 자제했어야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목욕을 시켰어야 했거늘.
환절기인 근래 B형 독감이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잘못도 크다. 딸아이의 아픈 모습을 지켜보니 부모로써 억장이 무너졌다.
백신은 만병통치약이 아닌데, 단지 질병을 제어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질병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차단하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과 함께 철저한 노력(차단방역)이 동반돼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문득 양축 현장에서도 백신에 대한 맹신의 풍조가 만연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구제역 백신과 관련해서는 “백신만 접종하면 구제역을 다 막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물 백신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말을 한 수의 전문가로부터 들은 기억이 있다. 이 말은 차단방역에 대한 노력 없이 백신만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백신을 접종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질병 방어의 한 수단으로써 백신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먹구름이 낀 날엔 구멍 난 낡은 우산이라도 챙겨야 한다. 단 그전에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바느질로 우산의 구멍을 메우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를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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