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대형 소매점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다룬 「카트」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제목이 카트인 이유는 매장에 비치된 물건을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끌고 다니는 그 카트다. 바로 그곳에서 차별받는 내용을 상징하는 것이다.
물건 값을 지불하려고 줄을 서는 소비자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카운터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화장실을 제때 갈 수도 없다. 빨리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걸어서도 안된다.
미국의 월마트 매장에서의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그때부터 회사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실제 한 대형 소매점에서 벌어진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던 소비자들이 그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동조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 그리고 오랜 투쟁 끝에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요구한 사소한(?) 권리를 쟁취한다.
이것은 각 개별의 소비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2000년 축산물의 개방으로 축산 농가들이 생존권을 위협받았을 때, ‘고향의 맛’이니 ‘신토불이’라는 슬로건에 전적으로 호응해 준 것도 소비자들이다. 농축산인이 어려울 때마다 이들이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 것도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한 격려였다.
2018년 말 현재 농업 총생산액의 42%에 달하는 위치로 성장한 축산업의 발전도 국내 소비자들의 이 같은 호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농장에서 식탁까지’라는 생산자 입장에서의 슬로건이, ‘테이블 투 팜-식탁에서 농장까지’라는 소비자의 입장이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현실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축산업에서 소비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 역할이 중요

 

이제 축산물브랜드정책이나 유통 등 모든 관련 정책분야에서 소비자는 감초 역할을 한다. 생산자들은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 무조건 생산만 하면 팔렸던, 고향이라는 감성에 호소하면 어려움이 극복되던 그간의 행위가 통용되는 시기는 이제  지나갔다.
여기에 악성 가축전염병의 빈발과 부정 유통, 둔갑 판매 등 비위생적이고 불법적인 행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실망과 분노를 유발시키고 결과적으로 ‘안티 축산’이라는 부정적 사고를 유발시켰다.
식탁까지 오르기 전의 모든 축산물에 대한 안전과 위생을 따진다. 여기에 자신들이 조리하는 축산물이 동물복지 형태로 사육된 것인지, 아니면 밀집사육으로 학대되면서 사육된 것인 지까지 밝히라고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내가 지불하는 금액만큼의 가치를 따지는 것은 마땅한 권리다. 하지만 그 이상의 더 많은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소비자의 권리가 막강해지면질수록 정부나 대형 소매업체 그리고 유통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안전과 위생에 대한 정책을 세우고, 자체적인 기준을 마련한다. 
 하지만 이 ‘사슬’에서 이러한 요구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마지막 단계가 바로 생산을 담당하는 축산농가들이다. 그리고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예나 지금이나 경종농가나 축산농가나 이윤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농장 운영비를 줄이고, 판매가격을 낮춰서 판매량을 늘리는 것뿐이다. 농장을 규모화하고 밀집사육을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축산농가들이 이제 축산업을 제대로 하려면 무항생제와 HACCP 인증은 물론이고 친환경까지 농장에 도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것들은 농가의 생산비를 더욱 높였고, 앞으로는 웬만큼의 규모에 이전보다 적은 가축을 키워야 한다.

 

농가와 함께 연대를


이미 낮은 마진에 시달리는 농가가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할 경우, 판매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농가들은 기꺼이 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전과 위생에 대한 대책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만한 부가가치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축산물들은 안전과 위생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렇지 않다면 유통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요충분조건일 뿐 여기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소비자는 축산농가도 하나의 사업자이므로, 그 사업에서 이익을 남기려면 많은 물건을 팔아야 하고, 물건을 팔려면 같은 경쟁사업자와의 경쟁에서 차별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냉정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축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는 공산품을 생산하는 기업과는 다르다. 살아 있는 생물을 다루고, 안전과 위생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질병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국가 식량공급 시스템의 문제다. 따라서 모든 부담을 축산농가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올바른 소비자의 의식은 이러한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고품질의 축산물을 적정한 가격으로 구입하고, 안전하고 위생적인 식량공급 시스템을 국가가 갖출 수 있도록 축산농가에 각을 세울 것이 아니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