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산업을 벼랑으로 모는 또 하나의 현안은 4월 25일 이후 시행되는 ‘식용란 선별포장업’ 의무화다. 
식용란 선별 포장업이란 계란 안전관리 대책의 핵심이다. 소비자에게 안전한 계란을 공급하기 위해 계란을 전문적으로 선별‧세척‧건조‧살균‧검란‧포장하는 업종을 신설해 가정용으로 유통‧판매되는 계란은 반드시 식용란 선별포장장에서 선별‧포장하도록 하는 제도다.
소비자에게 안전한 계란을 공급한다는 데 왜 양계농가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걸까? 그것은 식약처가 안전성을 위한다며 내놓은, 당초 ‘2016년 6월 계란 안전대책’의 내용이 수정됐기 때문이다.
양계업계가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안전성’을 내세우면서 내용은 안전성과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제도 시행에만 급급한 나머지 식용란 선별포장업 기준을 완화하면서 오히려 제2, 제3의 계란 파동이 우려될 수 있는 제도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계란파동 재발 우려

 

양계 전문가들은 이렇게 변질된 이유에 대해서 “시간이 촉박해 식용란 선별포장업이 부족할 것을 우려한 식약처가 시설기준을 대폭 완화해 농장이나 축사에도 허가가 가능하게 내용을 수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식약처가 잘못 만들어진 법을 합리화하기 위해 2017년 11월 신설한 세척관련 규정도 무시하는 등 국민의 건강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오로지 식용란 선별포장업 허가 수 늘리기에만 몰두한다고 꼬집었다.
양계업계가 “시행시기를 유예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 식약처가 “어렵다”고 제시한 이유가 바로 ‘허가 수 늘리기’에 따른 결과다. 많은 농가와 상인들이 이미 설비 투자를 했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24곳이 식용란 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았고, 올 10월까지 100곳 이상이 허가를 받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양계협회는 식약처에 대한 감사 요청과 난각 산란일자 표시시행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낸데 이어, 지난 1일 식약처장을 검찰총장에게 고발했다. 고발내용이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인 이유다.
식용란 선별포장업을 하기 위해서는 계란 선별기‧포장기 등의 기자재 구입에만 최소 1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이 소상공인인 계란유통업계의 현실에 맞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계란 선별과 포장은 다음과 같은 여러 과정을 거친다.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계란을 선별장으로 옮긴다 ‘집란’→육안으로 깨진 계란이 없는지 상태를 살핀다 ‘육안 검란’→40도 물과 솔을 이용해 세척한다 ‘세척’→자외선 살균기를 통해 건조하고 살균한다 ‘살균’→계란 아래에서 빛을 쏘아 깨진 계란을 다시 골라낸다 ‘파각 검출기’→계란 껍데기에 농장 고유번호, 사육환경 그리고 23일부터는 산란일자를 새긴다 ‘인쇄’→중량에 따라 왕란, 특란 ‘중량 선별’→10구 또는 15구, 30구씩 포장해 납품한다 ‘포장 및 출하’」
이 상태라면 계란의 안전성을 농장주나 상인들이 검사하는 ‘셀프 검사’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안전성이 결코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 양계협회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식약처가 향후 발생할 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리 핑계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17년 11월 개정한 고시에는 세척의 경우 ‘물세척’으로 규정하고 냉장으로 보존‧유통해야 한다고 되어 있던 것을 2018년 7월 식용란 선별포장업 홍보 관련 팜플렛에는 ‘에어 또는 브러쉬’도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살아 있는 걸 죽여서”


‘솔’의 경우 경도와 회전 속도 등에 따라 큐티클층 및 난각 표면이 손상될 우려가 있는 데다, 계란 표면의 이물질 제거를 위해 솔을 물에 묻혀 사용할 경우 물세척의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 상온유통을 해도 규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김현권 의원은 “국회 입법조사처가 우리나라 계란 안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선진국과 같이 안전을 위한 온도 기준(5℃~8℃)을 적용하지 않는 데다,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계란 선별포장시설을 거쳐 유통되고 있는 계란이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꼽았다”면서 “2016년 6월 보고서에서 핵심대책으로 내놓은 온도기준과 대규모 광역GP 건립을 왜 빼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계란 안전문제에 있어서 핵심이 계란 보관‧온도기준인데 이 문제가 빠져 있다”면서 “특히 유명한 몇몇 대형 판매상의 경우 실온으로 유통‧판매하고 있으며 별도의 영업신고 없이 자사 상표와 판매원만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상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식용란 선별포장업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의 최홍근 위원장이 선별포장업을 ‘살아 있는 계란을 죽여서 유통시키는 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에 수긍이 간다.
이래서 양계농가와 전문가들이 식용란 선별포장업이 현장의 상황에 대해 전혀 고민해보지 않은 공무원의 책상머리 정책이라고 지탄하고 있는 것이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되는 ‘악법’이라고 규탄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