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안전성을 확보한다고?Ⅰ
계란 안전성을 확보한다고?Ⅰ
  • 권민 기자
  • 승인 2019.02.01 1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참에 한국 경제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야지, 노조에 끌려가면서 인적관리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는 구시대의 경제 틀을 깨지 않고선 안돼. 그게 어디 정부의 맘대로 될까? 조금만 바꾸려고 해도 밖으로 몰려나와 ‘안된다’고 난리법석인데…”
지난해 말 1997년 IMF, 외환위기에 이르게 된 과정을 긴박하게 묘사한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서의 한 장면이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팀장은 경제위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를 막는 재정국 차관이 한 말이다. 그는 재벌과 결탁한 부패 관료로 그려진다. 재정국은 대기업에 유리하게 한국 경제를 개편하기 위해 IMF 구제금융을 받도록 상황을 몰고 간다.
그는 당초부터 대기업 위주의 경제 재편을 구상했으나, 그를 반대하는 노동자들과 그에 동조하는 많은 국민들의 반대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이 참에’ 타개를 핑계로 손 안대고 뜻을 이루려는 것이었다.

 

‘한번에 때려잡기’

 

지난달 2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성폭력 등 체육계 비리 근절 대책’을 내놨다. 심석희 선수가 폭로한 성폭력에 대한 대책이다. 전체적인 패러다임을 엘리트 중심에서 스포츠가 추구하던 진정한 가치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스포츠가 국위 선양에 이바지하는 게 아니라, 공정하게 경쟁하고, 최선을 다해 뛰고 달리고, 상대를 존중하며, 결과에 승복하는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를 위해 합숙훈련을 폐지하고,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을 생활체육에 개방하는 한편, 학교 운동부를 폐지하고, 병역 혜택과 연금제도 폐지, 대한체육회에서 올림픽위원회를 분리한다고 한다.
이런 대책을 듣는 체육인들의 반응은 ‘슬프고 답답하다’다. 지금까지 엄격한 룰 안에서 최선을 다해 공정하게 경쟁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를 실천해온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한꺼번에 부정되는 것 같다는 자괴감이다.
앞의 두 가지 사례는 경제와 스포츠라는 서로 생소한 부문에서의 일이다. 그러나 두 사례를 관통하는 것은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정부의 대책 등이 너무 똑같다는 사실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일타주의’다.
게다가 현장과 전혀 동떨어진, 그러면서도 현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책 결정과 집행자의 ‘감정’을 앞세운 방식이다.

 

차후 책임회피 빌미

 

지난해 말부터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양계농가들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앞에서 ‘위기의 양계산업 사수를 위한 양계인, 유통인 궐기대회’를 필두로, 단식에 천막 농성 중이다.
또 식약처의 자의적 법해석으로 계란안전대책이 약화됐다면서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식약처 감사를 요구하는 탄원서도 제출했다. 국회 정론관에서는 ‘달걀 껍데기 산란일자 표시’ 철회와 ‘식용란 선별포장업’ 시행 유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가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계란의 안전성을 위해 고시한 이 두 가지가 전혀 현실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취지와 반대되며, 살충제 계란 사건으로 파생된 안전시스템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그 전형적인 대책의 ‘무식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그렇다.
2017년 8월 발생된 ‘살충제 계란 파동’과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는 그동안 식약처의 안전 불감증과 탁상행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연히 보여준다.
살충제 파동 1년 전,  2016년 8월 계란에 살충제 성분에 대한 검사 실적이 없음을 지적하는 언론과 일부 양계농민들은 식약처에 수차례 검사를 요청했다. 2017년 1월엔 AI 발병으로 계란 값이 폭등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3억개 이상의 계란을 수입했다. 이때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었던 국가의 계란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음에도 신속한 수입을 위해 검역 절차를 간소화했다.
2017년 4월, 한국 소비자연맹에서 국내 51곳 계란 샘플을 구해 살충제 기준치 초과 계란이 있었음을 공개했다. 
2017년 8월, 경기도 양주에서 국내산 계란에서는 처음으로 피프로닐이 발견됐고, 전국 64개 농가에서 살충제에 오염된 계란이 검출됐다.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식약처의 대응은 안일함 일색이었다. 8월 EU 내에서 네덜란드와 벨기에산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다량 검출돼 문제가 되자 그제서야 국내에서도 계란에 대한 살충제 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성급하게 안전하다는 발표도 했다.
당시 이와 관련 축산전문가들은 “만일 EU 내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국내에서 살충제 문제가 언급됐을까?”라고 의문점을 찍었다. 그 정도로 계란의 안전성에 대한 식약처의 관심이 미미했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2017년 10월 식약처는 갑자기 살충제 검사를 기존 27종에서 33종으로 확대하고 때늦게 안전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홍보한다.
그리고 1월말 현재 양계인들이 ‘개악’이라고 반발하지만, 식약처는 자칭 세계 최초라고 자랑하는  ‘달걀 껍데기 산란일자표시’와 영세농가는 생업에서 나가라는 ‘식용란선별포장업’의 시행을 발표했다.
소비자 알권리를 앞세운 이 기준은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농가에게 떠넘기고 오히려 징계한다는 징벌적 의미다. 기가 막힌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