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상황에 빗대면 이 말은 곧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주인은 없다는 것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이 부르짖음이 일상적인 말이 되지 않는 한 그렇고, 특히 부패와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골이 깊어지면 질수록 더 그렇다. 모든 사람이 주인이란 말은 결국 모든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는 말과 통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엄격히 따지면 농협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따라서 조합원의 권익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농업협동조합은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주인이 있으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기에 그렇다.
국회의원을 비롯, 많은 농민단체 등 주변의 단체들은 항상 농협의 개혁을 주장하고, 이리 정하고 저리 정하고 갖은 잣대를 내세워 재단하고, 재단해 왔다. 지금의 농협은 외부의 휘둘림에 흔들려 온 결과물이다.
농협에 주인이 없다는 말은 조합원이나 농협 직원의 입장에서는 허탈한 지적이다. 내부의 개혁 동력이 없다는 외부 비난의 입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고 결정권자는 잠깐 몇 년 동안 달콤한 권한의 맛만 보고 떠나면, 평생을 몸 바치고 있는 직원들이나, 소위 주인이라는 조합원 농가들은 그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외부 흔들림에 흔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하지만 농협의 주변에서 농협을 비난하는 그 이면에는 부정을 위한 부정이거나, 농협을 통해 어떤 대가(좋은 의미에서는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의도가 크다. 비판의 전제조건에 ‘애정’이 담기지 않으면 그냥 비난일 뿐이다.
농협은 대한민국 농업의 큰 줄기다. 급변하는 상황의 변화에서 농업이, 농업의 강국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고 버텨내고 있는 것은 온전히 농민들의 몫이었지만, 그들의 버팀목이 되고, 비빌 언덕이 되어온 사실은 결코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며, 긍정적인 효과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농협 적폐’다.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다. 책임지지 않는 소수 임원들의 행태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은, 온전히 조직 전체가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변화와 혁신을 부르짖는 임원들이 솔선수범 하지 않거나 방향을 모르면 조직은 변화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능동적인 참여가 없는 분위기에서는 창의성도 발휘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의 노조 역시 삐딱한 농협의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임원이란 주어진 시간만 채우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직원은 평생을 조직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하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 직원들의 대표 조직이 노조이기에 더욱 그렇다.
업튼 싱클레어가 1906년 미국의 대표적인 도축‧가공장 시카고 유니언 스톡 야즈를 대상으로 한 르포형태의 소설 「정글Jungle」은 당대 미국 정육산업의 부패를 폭로함으로써, 식품 의약품 위생법과 육류 검역법 등이 제정되는 데 일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침 식사로 나온 소시지를 집어 던진 일화로도 유명한 이 소설은 얼마나 도축과 가공, 그리고 정육 등의 과정이 더러웠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비교적 유니언 스톡 야즈의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패킹타운의 실상은 이야기되지 않았다.

 

외부 흔들림에 흔들


왜 독일, 아일랜드, 리투아니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세계 각 지역의 소작농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이 소설은 절반 이상을 할애한다.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쳐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세계 외지로 사람들을 보내 ‘아메리칸 드림’을 전파함으로써 유니언 스톡 야즈는 항상 외국인 노동자들로 붐비고, 최저 임금을 요구할 수 없었다.
어렵게 노조를 결성한 직원들은 권력에 편승한 경찰력이라는 국가 폭력에 맞아 죽거나, 취업을 할 수 없어 굶주려 죽었다. 그리고 수십 년의 혹독한 투쟁을 겪으면서 오늘날의 노동조합이 자리 잡았다.
부패한 자본가와 맞서 노동자의 권익을 확보하려는 싸움은, 내용 면에서는 오늘날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려면 노동조합도 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많은 이들이 의견을 함께 한다. 심지어 직원들 사이에서조차 그렇다.
농협에서 노조의 변화와 역할이 더 중요한 것은 협동조합이기에 그렇다. 노조가 농업 협동조합의 미래와 혁신을 꿈꾸지 않고, 앞장서지 않으면 그저 일반 기업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지적하는 높은 임금과 대우에 만족하면, 좀 더 심한 말로 ‘재갈’이 물리면 농협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온 책임도 함께 져야 하기에 그렇다. 아무 지적하지 않는 대신 직원들의 처우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또 다른 말로 ‘협잡’이다.
보다 나은 미래는 돈만이 아니다. 미래를 향한 야성(野性)을 잃은 노조는 노조가 아니다. 협동조합의 노조가 더욱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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