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신이 구속되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좀 유식한 한자성어로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고 한다. 하는 짓거리가 ‘미련 곰탱이’ 같아서 꼭 자기 발목을 잡는다는 뜻이다.
지난달 4일 나눔축산운동본부 이사회에서는 사료업계에서 축산업 상생발전기금으로 제공한 25억원에 대한 처리문제를 빨리 결론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는 축산회관 이전과 관련된 것으로, 하루라도 빨리 포기하는 편이 그나마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던 축산회관 이전이 왜 제동이 걸린 걸까? 왜 포기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일까?

필요할 땐 상생 기반

한국사료협회는 2015년 11월 27일 유성에서 축산관련단체협의회‧농협 축산경제‧축산환경시설기계협회와 ‘2015 범 축산인 송년 세미나 및 상생발전 협약식’을 가졌다. 내용은 이렇다. 4개 단체들이 함께 모여 생산농가와 협동조합 뿐만 아니라 전 유관산업에 이르기까지 범 축산업계를 아우르는 상생기반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도 참석한 협약식에서 이양희 사료협회장은 “2016년부터 4년 간 매년 25억씩 1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의외의 통큰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사료업계의 순수한 의도보다, 당시 사료업체들의 담합행위가 불거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으로 의미가 삭감됐다.
2015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11개 사료업체들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사장부터 직원까지 조직적으로 가담해 16차례에 걸쳐 가격과 적용시기 등을 짬짜미했다고 밝혔다. 한 업체가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도 며칠 뒤 따라가는 수법을 썼다는 것이다.
당초엔 이들 업체들이 담합 기간 동안 올린 사료 매출액이 수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그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면 과징금 총액이 수천억 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최종적으로 77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한 후 과징금을 부과할 때까지 사료업체들은 사료협회를 통해 축산관련단체협의회에게 ‘탄원’이라는 협조를 요청했다.<본지 2015년 6월 5일자 가락골 「생산자단체들까지 왜 이러나」 참조>
당시 축단협회장은 관련단체들의 명의로 탄원성 성명서를 발표했다. “1조에 가까운 막대한 과징금이 업체들에게 부과되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특성 상 사료가격에 전가돼, 결과적으로 축산농가들의 피해로 되돌아 온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사료업체 살리기에 나섰다.
이러한 역할이 주효했는지 업체에 부과한 과징금은 773억3400만원으로 예상보다 훨씬 줄어든 액수로 결정났다.
당시 전국한우협회는 “생산자단체가 할 일이 아니다”며 성명서에 자신들의 단체명을 빼달라고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농협 축산경제도 뒤늦게 내용을 알고 난색을 표했다. 축단협의 명의로 그렇게 무리한 탄원을 강행하면서 얻어낸 것이 바로 100억원의 ‘상생기금’이다.
과징금 문제가 유리하게 돌아갈 기미가 보이자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료업체들은 실천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정부와 농협을 끼워넣으며, 이들이 동참할 경우 상생기금을 내놓겠다고 버텼다. 그 결과 첫 해 25억원이 집행됐다.

‘닭 쫓던 개’ 꼴 신세

축단협으로의 입금은 세제상의 문제를 도출시킴에 따라, 축단협은 기부단체인 나눔축산운동본부를 끼워넣었다. 그리고 쓰임새를 당시 논의되던 축산회관의 이전 비용으로 활용키로 하면서 축산회관 이전문제도 활기를 띄었다.
담합행위란 뭔가? 사업자가 협약·협정·의결 또는 어떠한 방법으로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정한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사업자가 여러 명 있어도 이들이 서로 공모(共謨)하여 공동행위를 하게 되면,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고도 시장을 지배하는 이른바 독점과 같은 효과가 발휘된다.
그 결과 소비자들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경제 질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공정거래법을 제정하여 이를 금지하고 있다.
사료업체들의 담합행위의 피해자는 축산농가들인데, 축산농가를 대표하는 일부 생산자단체가 축산관련단체협의회의 이름으로 피해를 준 업체들을 구제해 달라고 탄원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때문에 100억이라는 돈에 눈이 멀었다는 질타를 받았다.
어렵사리 25억원을 받았지만 2017년 5월 18일 서울고등법원은 담합에 따른 과징금을 부과 받은 업체들의 행정소송에서 업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취소하고, 업체들의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되자 업체들은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게 됐다.
업체로선 하등의 구속력이 없는 ‘상생발전기금 100억 기탁’이라는 협약도 지킬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사료업체들이 약속한 기금을 내놓지 않으면 당장 축산회관 이전을 포기하고 그동안의 계약금을 날리는 동시에 ‘원상회복’에 또 돈을 내놓아야 할 처지다.
일부 생산자단체들이 단체의 존재가치를 팔아 얻은 그 기금으로 축산회관 이전을 추진하던 단체들은 ‘닭 쫓던 개’ 꼴이 됐다.
참으로 값비싼 교훈이다. 새로운 문정진 축단협회장이 “못받으면 바보”라 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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