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은 터널에서 달려 나오는 경춘선 철길 위에서 “나 돌아 갈래”라며 절규한다. 그가 돌아가고 싶은 시점은 ‘처음’이다.
공장 직원들이 강원도 강촌에서 MT를 즐기고 있을 때 한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겨 곁눈질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던 그 순수했던 시절. 그 여성 앞에서는 할 말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끙끙대던 시절이다.
그런 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군으로, 고문경찰로 타락해 가면서 그때 그 시절의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는 “돌아 갈래”를 외친다.

순수했던 그 시절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에서 10여년을 일했습니다. 거기서 같은 일을 하는 아내를 만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봉제공장을 차려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IMF가 터져 졸딱 망하고 빚더미에 올랐고, 그 빚을 갚다가 아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갔습니다. 7살짜리의 아들과 나는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평일에도 밤늦게 들어와 혼자 끼니를 때우고, 홀로 쪽방 벽에 붙어자는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렸습니다.
지방의 일을 맡아 집을 비울 때면 만 원짜리 한 두장 집어주고는 또 몇 일 집을 비웁니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올 때마다 아들의 보챔에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아빠가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도 이젠 어른이 되라고, 쥐어박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고…
그 당시 나는 삶의 버거움을 아들에게 쏟아부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면 좀 더 좋은 삶을 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구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그때마다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그러면 더 화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도 몇 일 밤일을 하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빈컵라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고, 아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깔린 이불 밖으로 나와 낡은 벽지의 벽에 꼬부리고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 정말이지 화가 치솟는 걸 억누르고 대충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뭔가 물컹하면서 쏟아지는 느낌이 들어 이불을 걷어보니 물이 들어있는 컵라면이 이불속에 있었던 겁니다. 속에서부터 화가 올라와 이불을 집어 던지고 아들을 발로 찼습니다.
왜 이렇게 속을 썩이느냐, 이를 바에는 아예 죽어버려라고 윽박지르며 아이를 때렸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잘못했다. 자기는 아빠가 들어오면 먹으라고 이불속에 컵라면을 넣어두었다며 연신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나는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아이만 쳐다보았습니다. 아이는 또 때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눈물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와락 껴안고 펑펑 울면서 아빠가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네 마음을 아빠는 몰랐다고, 아빠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고…나는 그날 아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초심 버린것 아닐까

아이는 왜 그러느냐고 나를 안으며 같이 울었습니다. 아이는 나를 이미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왠만하면 일찍 귀가해 아들과 산책도 가고 아들이 좋아하는 놀이동산도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먼 듯 합니다.”
IMF가 터지고 나서 한 라디오 프로그램 ‘수기공모’에 입상한 작품이다.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처음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상식과 양심, 측은지심 등등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우리는 또 ‘남의 탓’을 하지만 사실 우리 스스로가 처음의 마음, 초심을 저버린 것은 아닐까?
가축을 키우는 업에 종사하면서 그 목적은 물론 ‘돈’이다. 그러나 돈만 쫓다가는 생각과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 기본을 모르기 때문이다.
기본이란 뭔가? 매일 축사를 찾아 내가 키우는 가축이 사료는 잘 먹는지, 설사는 하지 않는지, 눈꼽이 잘 끼는지 등 잘 자라고 있는 지를 확인해 보는 일이다. 가축이 건강해야 돈을 벌 수 있기에 그렇다.
최근 강요(?)되고 있는 동물복지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많은 농가들이 가축 사육으로 돈을 벌고 있다. 그 비결은 간단하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개체나 축사의 상태를 매일 기록 관리함으로써 문제 발생 시 즉각 해결할 수 있고, 그런 이유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한다.
‘가축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얼마나 자주 축사를 찾아 가축들을 돌보느냐에 따라 가축은 건강해진다는 의미다.
지금 축산업은 강력한 구조조정 앞에 서 있다. 적법화가 그렇고,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그렇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매번 듣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많다. ‘생존’해야 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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