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인증…탄탄한 유통구조로 성장 가도
도내 무항생제 최초 인증
농장·육가공 인트라 토대
‘돈마루’브랜드 출하·유통
대부분 유명 백화점 판매

의논 상대 없어 시행착오
유통 중요성 깨닫고 투자
저지방 부위 처리 어려움
햄·소시지·육포로 해결해

돈마루 안형철 이사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성지농장(대표이사 이범호)은 2015년에 정부로부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았다. 전국 한돈농장 중 2호. 1호는 전남 해남군에 위치한 강산이야기(2014년). 성지농장은 동물복지 선두 농장으로, 탄탄한 유통구조에 힘입어 안정적인 생산으로 생산·유통 시스템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성지농장의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때부터 지금까지 전 과정을 살펴온 돈마루 돈육사업부 안형철 이사를 만났다. 돼지고기 브랜드 출시, 유통경로 확대 등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안 이사로부터 동물복지 인증 전후 노력과 유지 과정, 국내 동물복지 확산을 위한 제언을 들어봤다.

# 좌충우돌 동물복지

1984년 이범호 대표가 성지농장을 설립했다. 맑고 깨끗한 축산환경에서 고객에 이로운 축산물을 제공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하고 2008년 무항생제 인증을 받았다. 경기도 내 한돈농장 중 첫 번째다. 이후 2015년 6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았다.

이 대표가 경영 중인 동물복지 축산농장은 성지농장과 성지팜 두 곳이다. 성지팜은 2016년에 인증을 받았다. 이들 농장의 상시사육 두수를 합하면 5000두 규모로, 두 농장을 합해 통상 성지농장으로 부른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축산물은 생산도 중요하지만 판매가 더 중요하다. 성지농장에서 생산된 돼지고기는 돈마루를 통해서 출하·유통한다. 돈마루가 유통하는 전체 돼지고기의 5% 정도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동물복지 축산물 대부분은 유명백화점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돈마루는 14년 전인 2004년에 열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먹거리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목표 아래 설립됐다. 지금은 사료와 농장, 육가공 인프라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요구하는 안전한 식품을 제공하는 축산식품 기업으로 성장했다.

첫해부터 브랜드육 돈마루 출시, 업계 최초 생산이력제 시행, 프라임 돈육 ‘벌침 맞은 우리 돼지’ 출시 등 굵직한 사업들을 선보였다. 설립과 동시에 숨 가쁘게 달리면서 매해 급성장하고 있다. 안 이사는 도드람푸드에서 근무하다가 이범호 대표와 함께 돈마루 설립에 참여, 지금까지 그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 남이 가지 않은 길

안 이사는 “쉽지 않은 길이라고 각오했지만,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만만치 않은 여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지농장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계기는 구제역 때문이다. 무항생제 인증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구제역 발생으로 사육하고 있던 돼지 모두를 하루아침에 살처분해야 했다. 이때 막대한 비용을 들여 농장을 재정비했다.

환경문제와 안전 축산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복지 축산농장이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지만 처음부터는 아니다. 성지농장이 경기도에서 첫 무항생제 농장 인증을 받을 때는 주변에서 “다른 농장들은 항생제 돼지를 키우고 있다는 말이냐”며 질타했다. 또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았을 때는 “인간 복지도 제대로 안 되는데 돼지에게 무슨 복지냐”는 말을 들었다.

동물복지에 대한 전문가도 없었다. 안 이사는 “당시만 해도 동물복지에 대해 의논할 사람이 없었다. 거의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시행을 하다 보니 오류가 많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은 돼지에게 불안과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꼬리를 짧게 자르지 않는다. 무조건 견치(어금니자르기)와 단미(꼬리자르기)를 금지 시켰더니 카니발리즘(서로 깨무는 습관) 때문에 새끼돼지가 죽어 나갔다. 사육 규모를 30% 이상 줄인데다 폐사까지 급증하면서 동물복지 시행 초기에는 손해가 계속 불어났다.

모돈 스톨의 공간이 넓어진 만큼 새끼돼지가 어미에게 깔려서 죽는 경우가 늘었다. 군사 돈방의 경우 여러 돼지가 어울리면서 새끼를 유산하는 사고도 빈번히 발생했다.

안 이사는 “스톨이란 장치가 돼지에게 불편함을 주는 도구 일 수도 있지만 새끼돼지 입장에서는 생명을 지켜주는 중요한 장치”라며 “스톨을 금지한다고 동물복지가 아니다. 공간을 넓혀 모돈과 새끼돼지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 이사는 이어 “동물복지 하면 정부 관계자나 소비자들은 저 푸른 초원 위에 돼지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상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방목이 동물복지의 완성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만만치 않은 인증 유지

우리나라에서는 동물복지 인증 축산물을 유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직까지 소비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다수가 동물복지를 지지하고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축산물 구매를 위한 추가비용을 감수하겠다고 응답하지만 구매상황에서 소비자는 저렴한 축산물을 선택한다.

농장이 동물복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유통 시스템 확보가 중요하다. 막대한 투자와 사육두수 축소로 인해 동물복지 돼지고기의 생산비는 크게 오르지만 판매 가격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소비시장의 심리적인 가격 저항 때문에 20% 이상은 올리지 못한다.

성지농장의 경우 대부분 백화점 명품관을 통해 판매하기 때문에 그나마 가격조정이 가능했지만, 많은 농장들이 어렵게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고 해도 안정적인 거래처 확보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유지는 오히려 경영에 짐이 될 수 있다.

삼겹살과 목살 이외 타 부위 처리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 돼지고기 소비시장은 삼겹과 목살에 편중되어 있다. 통상 타 부위는 동물복지 돼지고기도 일반육과 같은 가격에 처리한다.

그러나 원가 인상분을 삼겹과 목살에 부담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생산비가 높아지는 만큼 판매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돈마루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 부위로 햄, 소시지, 육포 등을 만들어 동물복지 인증 마크를 붙여 판매를 하고 있다.

동물복지 축산물로 인증을 받으려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도축장으로 출하해야 한다. 전국 70여개 도축장 중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도축장은 단 6곳뿐(가금류 2곳, 포유류 4곳)이다.

# 혼자서는 힘든 길

안 이사는 “동물복지 인증이 지속 가능한 축산으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아직은 우리나라 축산업계에서 동물복지를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고 있다. △관련 제도도입 △전개 △보완 △정착에 이르기까지 정부 지원이 상당 부분 요구된다. 동물복지가 지닌 공익적 기능과 시장실패 우려를 고려할 때, 정부의 인센티브(직불제) 지원과 보조가 필요하다. 동물복지 도입에는 시설, 노동력과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

동물복지가 확대되려면 소비자들이 물건이 아닌 가치를 구매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그동안 소비의 주요 관점이 가격과 품질이었다면 최근에는 소비의 가치를 생각하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소비시장이 없으면 아무리 품질이 좋은 축산물을 생산해도 소용이 없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소비자들은 다시 저렴한 축산물을 찾게 된다. 결국 안정적인 소비시장을 키우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무항생제 축산물 시장이 전혀 없을 때 정부는 단체급식에 무항생제 돼지고기를 사용하도록 유도했고, 이후 안정적인 판로가 만들어졌다. 판매시장이 커지면서 유통업체들이 모자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농가들에게 무항생제 인증을 받으라고 권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안 이사는 “동물도, 소비자도, 생산자도 원하고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성지농장과 돈마루는 동물복지 확산을 위해 앞장서 나아간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후발 주자들이 따라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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