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가 끝나고 농업 관련 신문지상에 한 칼럼이 올라왔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농업관련 단체들이 제시한 농정과제를 실천해야 하는 데, 이를 실천하려면 농정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먼저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을 선도해야 하는 지방정부 수장들이, 본인 스스로 어떤 방향으로 농정을 이끌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농정 개혁이 아니라 기존 농정사업도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좀 더 읽어봤다. “예전부터 농업계에서는 ‘농정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이 자주 회자되었다…실제로 농정과 관련해서 정당별로 서로 극명하게 대립되는 공약을 제시한 적도 거의 없었다…우리 역사에서 농민들은 지배자들에게는 항상 다양한 방식으로 수탈당했던 그룹이기 때문에, 농민의 생존과 이익을 옹호하는 것은 항상 약자를 돕는 정의로운 활동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념의 경계 무너져
따라서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두고 보수와 진보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로 인식되어 온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수출증대와 대기업의 성장이 우리 모두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농업과 농촌도 변했다.
그래서 특정 품목을 대상으로 한 정부 보조금의 증액이 우리 농민과 농촌 주민 모두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책 담당자들은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념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말인지 도대체 글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농정에 ‘이념의 프레임’ 덧씌워야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는 “보수농정은 현재 농정시스템과 지향점은 그대로 두고 개별적인 정책사안의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축산폐기물 대책, 친환경 농산물 인증체제 개선, 쌀 목표가격 조정, 유통효율화, 농업생산시설 현대화, 귀농귀촌 지원 등 개별적인 사업 개선에 중점을 두는 것”이라고 했다.

 

프레임에 갇혀서야
또 “진보농정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가 농정시스템과 지향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고 이에 따라 개별적인 정책도 잘못 시행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래서 중앙집권적, 생산 지향적 농정시스템을 개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결론이다. “보수와 진보는 시대상황 변화에 따라 그 이상과 가치가 변한다. 1970년대에는 농업을 산업화시키는 것이 진보농정이었지만, 이제 산업화 농정은 보수농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향점이 어디냐에 따라 보수를 선택할 것인지, 진보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학적 면에서 ‘보수’는 모든 것을 시장의 원리에 맡기고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하려는 쪽을 말한다. 반대로 ‘진보’는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가 경제에 간섭하고 개입해야 한다는 쪽이다.
이것은 사전적 의미다. 모든 이데올로기와 이념은 사람들의 ‘보다 나은 삶’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보수도 진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념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상호 ‘구분’을 짓게 되고 ‘차이’를 반대의 개념으로 이해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특히 그랬다. 서로 의견이 다르면 ‘생각의 다름’을 이해하지 않고, 반대의 개념으로, 투쟁의 대상으로 여겨 죽자 살자 싸웠다.

 

편협한 생각 버려
‘농민의 생존과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 항상 약자를 돕는 정의로운 활동으로 간주했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해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마 좋게 해석하면 ‘농업에도 자유경쟁체제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어떤 정책을 이념적으로 구분 짓는 것에서 구분 짓지 않는 것으로 변했다. 칼럼을 쓴 이와 완전히 반대의 개념이다. 농정을 수립하고 집행하면서 보수냐 진보냐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구시대의 폐단이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바뀌었다. 보수이면서 진보 성향이 있고, 진보이면서 보수의 성향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 국민들도 안다. 분단된 현실에서 이념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의 사람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다는 사실도 안다.
최근 농협중앙회가 대대적으로 협동조합 이념의 공유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이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해결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분 짓기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어울리기’에 문제가 없는 사람을 본적이 없고, 어울림이 부족한 사람은 항상 편협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농정의 수립은 이념에 따라서가 아니라 농촌과 농민의 삶을 바로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지금 현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농민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아야 어떤 농정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하는지를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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