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의 의미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한 종합지의 1면 헤드라인 「낡은 보수에 내린 ‘퇴장 명령’」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현 정부를 ‘주사파 정부’라며 색깔론을, 영남을 중심으로 ‘우리가 남이가’ 식의 지역 가르기 등 구태의연한 낡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 바로 이번 선거의 본 뜻이다.
온 국민의 하나의 염원 ‘통일’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 남북 평화무드가 무르익어갈 때도 ‘나라를 통째로 넘겼다’는 등의 1970년대식의 ‘반대를 위한 반대’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다. 국민을 가르치려는 오만함은 설자리가 없다.
이번 선거를 자유한국당의 완패와 보수층의 몰락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정서에서 보면 자유한국당은 완패한 것이 아니라 ‘선방’한 것이고, 보수층은 몰락한 것이 아니라 ‘꼴통’ 보수를 용납하지 않았을 뿐이다.

 

‛변화의 바람’분다?
자유한국당의 텃밭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의 깃발이 꽂힌 것은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울분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만큼 투표 참여도가 높았고, 그것은 ‘따뜻한’ 또는 ‘건전한’ 보수층이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부산·울산·경남 기초단체 39곳 중 25곳, ‘보수의 성지’라는 구미에서 첫 당선자를 내고, ‘보수의 강남 불패’ 신화까지 깨뜨린 이번 선거를 두고, 변화의 바람이니 지역주의가 깨졌다느니 평가가 분분하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기초단체장 4명, 광역의원 26명, 기초의원 150명 등 총 180명의 한농연 출신 출마자가 당선됐다. 정말 ‘변화의 바람’이 오고 있는 것일까?
제도권 밖에서 농축산업의 개혁에 대해 쓴소리를 즐겨하던 이들이,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당연히 인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는 이전에는 자신의 주장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유수한 대학에서 공부한 인재도 권력의 자리에 앉으면, 가방끈이 짧은 사람도 다 알고 있는 ‘바보’ 같은 짓을 한다. 그리고 핑계가 많아진다.

 

오히려 ‘소외’당해
문재인 정부는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 평등한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그동안 성장 위주에서 발생한 부의 쏠림현상을 자제하고 고른 분배를 통한 ‘행복한’ 국민을 지향한다. 압축성장의 부작용을 치유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높은 지지도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농축산업이나 관련 산업은 오히려 ‘소외’당하는 입장이다. 대선 공약이었던 대통령 직속 농어업 특별기구 설치는 요원하다. 몇 개월도 하지 못할 의원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앉혔다.
그는 취임식에서 “농민과 농촌을 반드시 챙기겠다”고 다짐했다가 지방선거를 핑계로 훌쩍 떠났다. 청와대 농어업비서관도 사퇴했다. 그리고 공석으로 80여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비었다. 국회는 말할 것도 없다. 정쟁으로 많은 농업정책들이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축산단체들은 각 당에 공약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많지도 않다. “무허가 축사를 보유한 농가들의 최대 구제를 위해서 전국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요청이다.

 

먹거리 성찰이 필요
전국 지자체의 전수조사 결과 6개 지자체만 전체를 수용했을 뿐 평균적으로 5개 항목에 대해선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어 농가들의 적법화 추진에 큰 애로가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설명했다.
무허가 축사의 적법화 문제는 축산물의 안전과 위생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대한민국 축산업의 생존과 직접 연결되는 문제이기에 그렇고, 그 핵심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지자체이기에 더욱 그렇다.
수십 년을 아무 탈 없이 살아오며 가축을 키우던 곳에서, 도시화로 밀려든 주민들에게 ‘더러우니’ 자리를 떠나라는 압박을 받아야 하고, 20여 가지의 얽히고설킨 법령을 들이밀고, 심지어 조례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것은 축산농가의 입장에선 복장이 터질 일이다.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난 14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내년도 농림수산식품분야 예산’을 보면 현 정부의 농업 정책이 농축수산업을 얼마나 ‘홀대’나 ‘외면’하고 있지를 보여준다.
내년도 농림수산식품분야 예산은 올 19조7000억보다 4.1% 감소한 18조9000억이다. 전체 정부 예산이 6.8% 증가한 반면 농림수산식품분야는 감소했다. 기재부는 “각 부처의 요구안에 따라 결정된 예산”이라고 한다. 그럼 농림축산식품부가 “감소해도 충분하다”고 요구한 것일까? 아니면 대변할 장관이 공석이어서일까?
이번 선거의 결과가 전국을 푸른 물결로 뒤덮은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한 당에 몰아주기는 그만큼 짊어져야 할 책임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풍족해서 그다지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자신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농축산물에 대한 성찰은, 성숙한 ‘지도층’이라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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