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리는 추운 겨울 직업을 잃었다.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그는 굶주림에 지쳐 할 수 없이 구걸에 나섰다. 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고급 식당 앞에 서서 한 쌍의 부부에게 동정을 구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때 함께 가던 여인이 남자가 퉁명스럽게 거절한 것을 알고, “이렇게 추위에 떠는 사람을 밖에 두고 어떻게 우리만 들어가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겠느냐”며 1달러를 주었다.
그녀는 “이 1달러로 음식을 사 드시고 용기를 잃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이 직업을 곧 구하도록 기도할게요” 라고 말했다.
돈 리는 “부인, 고맙습니다. 부인은 나에게 새 희망을 주셨습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그러자 부인은 “당신은 예수님의 떡을 먹는 것입니다. 이 떡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기 위해 노력하세요”라고 다정히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돈 리는 우선 1달러로 요기부터 하고 50센트를 남겼다. 허기를 채우고 식당을 나오던 그는, 그때 마침 한 노인이 부러운 듯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돈 리는 남은 돈 50센트를 꺼내 빵을 사서 그 불쌍한 노인에게 주었다. 이 노인은 빵을 조금 떼어먹다가 남은 빵 조각을 종이로 싸는 것을 보았다.  
돈 리가 궁금한 마음에 “내일 먹으려고 합니까?”하고 묻자, 이 노인은 “아닙니다. 저 길에서 신문을 파는 아이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노인은 소년에게 성큼 다가가 빵을 건네자 아이는 좋아하며 빵을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길 잃은 강아지가 빵 냄새를 맡고 꼬리를 치며 다가왔다. 이 소년은 조금 남은 빵 부스러기를 개한테 주었다. 소년은 기쁜 마음으로 신문을 팔러 뛰어갔고, 노인도 일감을 찾아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이렇게 있을 순 없지”하고 생각하는 순간, 강아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돈 리는 길 잃은 개의 목걸이에 적힌 주소를 보고 주인을 찾아갔다.  주인은 매우 고마워하며 10달러를 주었다.
그러면서 “당신같이 양심적인 사람을 내 사무실에 고용하고 싶소, 내일 나를 찾아오시오”라고 말했다. 드디어 돈 리도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오 헨리의 소설 「현자의 선물」에 나오는 이야기다.

 

있어도 베풀지 않아
지나가는 한 여인의 1달러가 나누어지면서 생각지도 않게 많은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고, 스스로 느끼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나눔은 꼭 가진 것이 많아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전한다. ̔없어서 남에게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가진 것이 있을 때에도 남과 나누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돈 리는 구걸하는 처지에서도 가진 바를 나눔으로써 그 작은 나눔이 더 많은 나눔으로, 넓은 파장을 일으켜 결국 사람의 마음을 감동으로 충만하게 했다. 
무엇이든지 가지고만 있으면 그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주변과 나눌 때 비로소 소중한 가치가 발휘된다. 나눔이 행복의 시작이라는 사실은 나눔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느낀다.
봉사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중독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뭔가를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하고 ‘봉사’한다는 말조차 듣기 싫어한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이 일이 자신을 깨닫게 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만들었다고 오히려 감사해 한다. 
“좋은 일 한 번 해 볼까?”하는 사소한 시작에서, 한 번, 두 번 되풀이가 되고 결국엔 의미 없는 자신의 삶에서 보람을 찾았다는 것이다.
나눔이란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소한 것부터 ‘내놓는’ 것이다. 그러면 나눔의 씨앗은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나래를 펴고 자신이 딛고 있는 영역을 벗어나 다른 영역으로 날아가 꽃을 피운다.
나눔축산운동을 다시 한 번 언급하는 것은, 축산업의 공적인 가치를 들먹이기 전에 ‘외부 비용’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사유재산권의 침해만 말할 것이 아니라, 공공이 즐겨야 할 쾌적한 환경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눔축산운동의 시초가 그 ‘환경 개선’에 있었기에 6년이 지난 지금도 ‘환경개선운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축산농가 스스로 자신의 재산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공동체의식의 발로
게다가 자발적 성격을 띤 나눔축산운동에조차 관심이 없으며, 그러고도 자신의 농장 환경개선에 나눔축산본부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 것은 고질적인 이기주의다. 
나눔축산본부의 재원은 대부분 농협과 일선조합 직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적은 돈이지만 축산업의 부정적 인식이 바뀔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대부분 협동조합맨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당연한 것일까?
간혹 협회 차원에서의 나눔 움직임은 있을지언정 정작 부정적 인식의 최대 피해자인 농가들은 관심이 없다. 아직도 협동조합이나 협회가 알아서 해 주겠거니다.  
왜 ‘나눔’일까? 그것은 ‘함께’라는 공동체의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환경 개선에 축산인들이 힘쓰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발전에 동참하고 있다는 울림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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