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고깃집에서 소주를 한 잔하고 2차로 튀긴 닭고기와 맥주를 곁들인 ‘치맥’으로 입가심을 하며 즐겁게 헤어지던 A와의 만남이, 만날 때마다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이는 밤거리의 ‘방랑’으로 바뀐 것은 그가 고기를 끊고 나서부터였다.

그날이 어느 날인지 확실히 떠오르진 않지만 아마도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3000여만 마리가 살처분 되었을 당시였던 것으로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봐, 너는 축산관련 기자니까 잘 알지?” “뭔 이야긴데 그렇게 진지하게 물어?” 그날도 우린 느즈막하게 고깃집에서 술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게 음식을 좋아하던 ‘먹돌이’가 특히 고기를 무척 좋아하던 그가, 그날 이상하게도 고기를 한 점도 집어 들지 않았다.

 

‘채식주의자’를 이해

“티브이나 신문에서 말하는 닭에 대한 말들이 정말이냐고. 정말 에이포 용지만한 곳에서 밀집사육을 하고, 그렇게 좁은 곳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닭들이 스트레스를 못 이겨 서로 쪼아대지 못하게 닭 부리 끝을 불에 달군 칼로 잘라 버리냔 말야.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계란과 닭고기가 그러한 닭들의 고통어린 환경 속에서 나온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사실 나는 충격이었어. 희한하게도 그동안엔 얼핏 들은 것 같기는 한데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에서인지 관심이 별로 없었어.

그런데 말야. 강아지를 키우다 보니 이상하게도 동물에 대한 관심이 생기더라고. 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기는 것처럼 말야.

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노벨문학상에 비견되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했을 때, 서점에 가서 책을 산 후 읽곤 도대체 왜 그런 유명한 상을 수상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어. 근데 차츰 이해가 되더라고.”

난 그가 두서없이 던지는 말에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됐지만, 그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싶어 잠자코 있었다.

“아버지가 어릴 때 키우던 개가 그녀의 발을 물었다는 이유로 잡아먹었잖아. 그것도 육질이 좋아진다는 이유로 오토바이에 묶고 죽을 때까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뒤는 좀 잔인해서였을 것이다.

“난 주인공이 갑자기 왜 고기 먹는 것을 끝까지 거부했는지, 자신의 몸에서 악취가 난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지금 내가 갑자기 고기가 역겨워지면서 아! 그래서 그렇게 된 거구나 이해가 가는 거야.

 

건강보다 윤리 문제

예전에 이상구 박사가 채식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채식 열풍’이 분 적이 있잖아. 그런데 채식주의자들은 ‘몸에 좋다’는 이유로 고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어. 윤리적인 문제로 접근한 것이지.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과 행태들에 대한 거부라고나 할까.

무슨 건강을 따져가면서 음식을 섭취하냐? 식물성이 좋다느니 동물성이 좋다느니 다 장단점이 있잖아. 건강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균형 있는 식단을 생각해야지. 여기까지 생각이 되니까 희한하게 고기 생각이 나질 않더라고. 육고기에 대한 이러한 고찰(?)이 바로 물고기에게로 연결되더라.”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물었다. “식물은 생명이 없니?” 그날 그는 당근과 상추와 파절임으로 안주를 대신하고 취한 채 헤어졌다.

난 그날 그의 질문과 속마음을 들으면서도 끝내 말하지 않은 것들이 참 많다. 인공조명으로 닭들이 긴 여름철로 착각하게 만들어 1년 내내 많은 달걀을 낳게 하고, 수명이 다하면 ‘털갈이’ 작업에 들어가는 것. 그 약 2주간 모이를 주지 않는 것.

종계의 경우, 최대한 오래 살아서 최대한 오래 새끼를 낳아야 하므로 육계가 먹는 모이의 60%에서 80%를 적게 주는 것. 물 역시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굶주린 종계들이 미친 듯이 땅바닥을 쪼아대는 것 등등을 말하지 않았다.

브리스톨 대학교 수의학과 교수인 존 웹스터가 “브로일러 닭들은 죽기 전까지 삶의 20%를 만성적인 고통 속에서 보내는 유일한 가축이고, 양계산업은 그 대규모성과 잔혹성 면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에게 자행하는 최고로 잔인한 체계적 만행이다”고 한 말도 그에게 하지 않았다.

 

안도할 수가 없어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간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값싼 ‘먹거리’ 욕구를 충족시키는 산업이며, 그것이 비단 가금류 뿐만 아니라 돼지나 소에서도 마찬가지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고기에 대한 식욕은 이성적으로 제어되지 않는다. 수십 년을 피우던 담배 끊기가 오히려 더 쉽다. 3년 전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이 제작한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돈가스 마니아’인 아들과 남편이 동행한 ‘밥상의 돼지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역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감독은 그 과정에서 다시 한 번(몇 년 전 육식을 끊은 적이 있었다) ‘고기 끊기’를 결심했다. 그러나 아들과 남편은 끝내 끊지를 못했단다.

축산업의 딜레마는 이러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점차 불편한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정부의 축산정책이 ‘규제’로 틀을 잡았다면 축산농가들은 항의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 앞에선 결코 안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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