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옆 좌석의 신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 승객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 알고 나자 현대 예술이 실재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피카소는 그에게 ‘실재’라는 것의 믿을만한 본보기가 있다면 그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승객은 지갑에서 명함판 정도의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요! 진짜 사진이지요. 내 아내와 정말 똑같은 사진이오.”

 

‘이해’하는 법 부터

피카소는 그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위에서도 보고, 아래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나서 피카소가 말했다. “당신 부인은 끔찍하게 작군요. 게다가 납작하고요.”

‘알기’와 ‘이해하기’ 그리고 환상과 실재를 분리시킨 교육은 똑똑한 사람들의 머리를 한쪽만 쓰게 만든다. 그 결과 심각한 장애로 나타난다고 「생각의 탄생」의 저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말한다.

그는 미국의 작가이자 화가이며 1955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폴 호건의 말을 인용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실재를 보게 된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더 나쁜 것은 환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창조를 부르짖는 리더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대목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뜻이다. 과거의 교육이 그래왔고 현재도 그렇지만, 주입식 교육은 교육의 대상자가 수학성적은 형편없어도 수학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느낌으로 아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수치화하거나 분리시킴으로써 이론은 알지만 실생활에 적용할 수 없게 만든다. 선생들조차 일상과 학교지식을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쉽게 풀어보면 조직원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부여하지 못하면 변화와 혁신은 물론이고 창조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직원, 어린아이 아냐

리더 스스로가 변화와 혁신에 대해 ‘어떻게’라는 고민 없이 조직원들에게 무작정 하라는 것은 ‘협박’이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교육자나 부모들이 맡아야 할 일은 바로 실재와 환상 또는 꿈 이 둘을 결합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창조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방법을 알려준다고 한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조직의 리더가 조직원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적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특히 더 어려운 것은 조직원들은 이미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지식으로 무장한 채 조직에 뛰어든 ‘혈기왕성’은 실재와의 갈등을 빚으며 왜곡되어 습관으로 쌓여 있기 때문에 그렇다. 비뚤어진 조직문화에 흡수돼 그 문화를 다시 더 왜곡시키는 일상이 더해지면서 변화와 혁신이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머리’가 커진 조직원들을 움직이는 것은, 새로운 조직원을 받아들여 조직에 맞게 키우는 것보다 몇 배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말로, 또는 지시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발상이다.

교육에는 두 가지의 방식이 있다. 스파르타식으로 강하게 몰아붙이는 것과 처음부터 하나하나 ‘자상하게’ 설명하는 식이다. 하지만 전자를 경험한 사람은 후자보다 더 교육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자상한 배려를 받은 이들 중에는 정작 실무에서 실패한 경우, 교육자의 교육방식이 너무 느슨했기 때문이라고 ‘탓’하는 경우가 많다. 자상함을 느슨함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 간의 협력이나 내부 조직원들의 변화를 꾀하려면 사업을 세분화해 던져줘,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절박함 앞에 서게 만들어야 한다. 절박함이야말로 변화의 동력이다. 하지만 주어진 목표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없으면 그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변명만 늘어 놓을 뿐

팀에게 또는 부서에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혹독한 대가와 달성했을 때의 확실한 보상은 성취감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철저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최대한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확보하게 해야 한다. 그게 리더의 역할이다.

정해진 목표가 결실을 맺을 때까지 정해진 기간 동안 바람막이 되어주고, 무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진행이 지체될 때 무턱대고 “왜?”냐고 질책하지 않고, “어떻게, 무엇을” 도와줘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가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것이 리더가 할 일이다.

사사건건 작은 일에 관여하는 건 리더의 일이 아니다. 각 직급별 책임을 제대로 부여하지 않으면 담당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일을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다.

지난호 가락골에서 ‘단면을 여준다’를 ‘단면을 보여준다’로, ‘클라잉 존Cring Zone’를 ‘클라잉존Crying Zone’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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