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앞세워 축산업을 옭죄는 일련의 정부 정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드니 디드로가 쓴 에세이 「나의 오래된 가운을 버림으로 인한 후회(Regrets on Parting with My Old Dressing Gown)」가 떠오른다.

마케팅에서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 이를 ‘디드로 효과’ 또는 ‘디드로 통일성’이라고 한다. 하나의 물건을 구입한 후 그 물건과 어울리는 다른 제품들을 계속 구매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18세기 철학자로 유명한 디드로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세련된 빨간 가운을 선물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의 가운이 낡아 바꿀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런데 그 세련되고 빨간 가운을 입게 되면서 그동안 친숙했던 가구들이 하나 둘씩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디드로 효과’의 저주

그때부터 디드로는 침대를, 의자를, 책상을 그의 가운과 어울리도록 세련되고 빨간 색 계열의 것으로 바꿔나가다 결국 모든 가구를 바꿨다. 그는 돈을 낭비한 자신이 빨간 가운의 노예가 됐다고 한탄했다.

그럼 왜 일련의 축산정책과 디드로의 효과가 교차됐던 걸까? 그건 아마도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당국자들의 마음이 ‘환경 보호’라는 추상적 개념에 몰입돼, 인위적으로 짜 맞춰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다.

‘분뇨는 오염이고 더럽다’는 선입견은, 모든 국민이 대대손손 누려야 할 아름다운 국토와 강·하천을 파괴하는 ‘주범’이요, 없어져야 할 ‘악(惡)’임으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대세론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늘어나는 축산물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산업형 집약적 사육방식이 정착되면서 가축분뇨의 양도 많아졌다. 비가 오면 어딘가에서 하천으로 가축분뇨가 흘러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그에 따른 여론의 혹독한 질책은 규제를 새로 만들게 하고 축산농가로 하여금 ‘정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

해양투기가 금지되고, 암모니아 가스 배출 기준 등이 상향 조정됐다. 이에 발맞춰 농가의 시설현대화작업도 진행됐다. 그러다 대형 악성가축질병이 발생하고 재발했다. 책임이 농가에게 전가됐다. 농장 방역이 강화되고 이동을 중지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새들의 분변을 막지 못해, 잠잠할만하면 재발이고 일시이동중지다. 이러한 일들이 사회문제화로 비화되자 축산업 통제에 나섰다. 가장 쉬운 일이 고령화된 영세농가들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일이다.

 

내친 김에 없애자?

농가가 줄어들면 통제하기가 그만큼 좋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죽어가고 있는 농촌을 살리는 길은 도시화라는 판단에서일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별 탈 없이 대대로 생업을 이어온 축산농가들도 이젠 손을 털어야 한다.

한 항목, 한 항목마다 반론의 여지가 많지만, 이를 접어두고 정부의 방침대로 되면 축산업은 경쟁력이 강한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국민들이 안전하고 위생적인 축산물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환경 친화의 기치를 내거니, 그에 맞게 무항생제, 친환경은 기본이다. 여기에 동물복지가 가세한다. 그런데 기준은 국내 현실과 너무 다른 ‘이론형’이다. 규제를 선진국형으로 강화해 농가의 구조조정을 촉발시켜 고령의 영세농가를 퇴출시켜야 하고, 이로 인해 축산물의 자급률이 떨어지면서 가격이 오른다. 그때는 외국산을 수입해서 충당하면 싼 가격으로 국민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고, 축산업으로 인한 환경오염도 크게 줄어드니 ‘금상첨화’다.

하지만 외국산 축산물의 범람으로 자급률이 떨어지면 국내 축산업은 그만큼 위축되고, 어떻게 어디에서 생산되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모르니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게다가 이젠 가격도 우리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니 ‘설상가상’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10년 전 ‘값싼 식량의 종말’이라는 기사를 통해 더 이상 싼 가격으로 식량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동안 미국 등 선진국과 국제기구들이 종자를 개량하고 살충제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투자로 식량 위기를 돌파했지만 이제 ‘녹색혁명’의 힘이 상실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농촌은 엽서 아니다

여기에 2000년대부터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소득 향상은 ‘다양한 먹거리의 블랙홀’로 변하고 있다. 13억의 중국이 그렇고, 그 인구를 넘어서고 있는 인도가 그렇다.

일본 NHK 시사보도 PD인 이노우에 교스케는, 소고기 소비와 관련한 이런 식생활 변화를 ‘차원이 다른 폭식’이라고 표현했다. 소고기를 비롯 육류의 맛에 눈을 뜬 중국인들의 식습관은, 가축의 먹이로 쓰이는 곡물의 시장 판도까지 완전히 바꾸었다고 한다.

호주를 비롯 소고기 수출국들로부터 ‘큰손’으로 환영을 받으며, 원하는 부위를 원하는 만큼 구입할 수 있었던 일본이, ‘풀 세트’로 무차별 구입하는 중국 상인들로 인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인위적 구조조정이 수치상으로 당장은 효과를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따라오는 여파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더 크다. 농촌은 엽서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다. 생활의 터전이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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