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분법’ 개정으로 기간이 연장됐다고 하지만, 신청서조차 내지 못하는 농가가 수두룩한 실상을 들여다보면 적법화 이후 축산농가수의, 특히 영세농가의 수가 크게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

혹자는 말한다. 이제 적법화에 성공한 농가들의 앞날은 탄탄대로라고…. 농가수가 줄어듦에 따라 누군가의 고통이 ‘희망’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온갖 가축들의 가격이 올라간다고 정말 그러한 농가들이 ‘표정관리’를 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걷힐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한우·돼지의 가격이 높으면 이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유통업체나 외식업체들은 그 만큼의 비용 상승을 겪는다.

수입육 홍보로 반전

수입육이 국내 축산물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해 갈 것이고(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국내산 축산물을 원재료로 한 외식업체들은 수입육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외국산 축산물을 취급하던 식당들은 그렇다고 치자.

국내산을 취급해오던 식당들의 외국산 전환은, 국내 축산업계에게는 치명적인 일이다. 왜냐, 국내산의 우수성을 일선에서 소비자에게 알리던 그 호의적인 태도가, 완전히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축산물의 자급률이 왜 중요한지는 21세기의 식량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말 때문이 아니다. 최근 우리가 몸소 경험했고, 또 현재 식량 확보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형 농축산업이 자리 잡고 전 세계 농축산물의 무역장벽이 낮아지면서 우리는 돈만 있으면 값이 싼 농축산물을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농축산물에 대한 자급률의 중요성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인식 아래 농축산물의 생산방식이 잘못됐다고 무차별적으로 지적하는 것이고, 무시하는 것이고, 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량을 담당하는 정부의 책임자 그 누구도 우리가 현재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음은 지적하지 않는다.

정부가 자급률을 무시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의 예로, 필리핀의 쌀 산업이 자주 등장한다. 쌀의 삼모작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농업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농민들의 2/3는 벼농사를 1년에 한 번밖에 할 수 없었다. 또 높은 수확량을 보장하는 개량종자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생산량 저하까지 왔다.

“빵을 달라”에서 시작

한때 세계 최대의 쌀을 생산해 오던 필리핀은 이제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쌀 생산에 관한 모든 것들이 엉망이 됐다. 이 때문에 필리핀은 큰 불행을 겪었다. 2008년 상반기에 쌀 가격이 폭등하자 필리핀은 쌀 사재기를 금지했다. 베트남과 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1인당 쌀 구매를 하루 4kg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2010년 말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의 시작으로 중동에서 민주화 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 민주화 운동은 ‘자유를 달라’라든지 ‘독재정권 물러나라’와 같은 정치적 문제에서 발동된 것이 아니다. ‘빵을 달라’에서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발 ‘나비효과’에서 비롯됐다. 2010년 8월 푸틴 총리가 자국의 곡물생산량 급감을 이유로, 밀 수출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하반기부터 국제 밀 가격이 폭등했다. 자급률이 저조했던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자 농산물 가격 상승이 물가 상승을 촉발시키는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이다. 밀 가격이 오르면 밀가루로 만든 과자·라면·국수 등 식품 가격이 올라 전반적으로 물가를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그 해 한국 경제도 곡물과 식품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크게 올라 서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7%로 전체곡물 수요의 66%를 수입에 의존한다. 쌀을 제외하면 밀과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기상이변과 투기자본의 유입 등 식량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급률을 무시하는 것은 농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육류는 다르다고?

아! 이게 모두 농산물의 문제라고? 가축은 농산물을 먹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먹거나, 완전 풀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일본 NHK 시사보도 분야의 베테랑 프로듀서인 이노우에 교스케(井上介)는 슈퍼마켓에 진열된 소고기 가격이 갑자기 오른 것을 보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서민음식인 ‘소고기 덮밥’을 못 먹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기획프로를 구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책으로 옮겼다. 「소고기 자본주의」다.

그는 소고기 가격이 크게 오르게 된 계기를, 중국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차원이 다른 폭식’의 실태에서 찾았다. 경제성장에 힘입어 먹을거리의 서구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중국에서, 최근 몇 년 전부터 소고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했다.

1년에 6000만톤이나 생산되는 데도 소고기가 부족하고, 그 바람에 소비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주요 고객으로 덮밥 재료인 쇼트 플레이트(short plate, 양지 부문의 업진살)만 수입했던 일본이, 이젠 더 이상 주고객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가격 인상만 그저 지켜볼 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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